둥,둥,둥… 울리는 북소리는 세상에서 가장 오래되고 기본적인 악기에 속한다. 큰북, 작은 북, 팀파니와 장고, 베이스 드럼, 탐탐 드럼… 북의 종류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러나 북(팀파니)은 오케스트라 악기 중에서 크게 두각을 나타내는 악기는 아니다. 아름다운 소리는 바이올린이나 첼로 등에 빼앗기고 있고 멋진 행진곡도 트럼펫이나 다른 관악기들이 차지하고 있다. 북은 그저 보조 역할에 그치고 마는데, 그럼에도 북은 오케스트라에서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악기 중의 하나이다. 북이 빠진 오케스트라는 김빠진 맥주나 다름없다. 즉 음악의 드라마틱한 요소가 사라져 버리고 마는 것인데, 북이 없는 음악처럼 활기없는 음악도 없을 것이다. 북은 간결하고 리듬만을 보조하고 있지만, 둥둥둥 울리는 북소리 만큼 또한 사람의 마음을 기분 좋게 만드는 것도 없다할 것이다. 한마디로 단순함의 극치라고나할까….
12월이 되면 널리 불려지는 캐롤송 중에 ‘북치는 소년(The Little Drummer Boy)’이라는 곡이 있다. Katherine K. Davis라는 사람이 작곡했는데(1941년), 아기 예수 탄생을 목격한 양치기들을 연상하며 작곡한 듯, 작품의 내용도 참 흐뭇하다. 예수 탄생 당시 한 가난한 소년이 있었는데, 예수께 드릴 선물이 없어 고민하고 있었다. 마침내 그 소년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전재산 북을 아기 예수께 드렸고, 아기예수는 그의 북소리를 듣고 미소를 지었다는 내용이다.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에서 가장 초라한 말구유에서 탄생했다는 것도 아이러니지만 이를 처음 목격한 사람들도 다름아닌 목동들이었다는 것도 어떤 신의 섭리를 느끼게 한다. 북치는 소년은 이러한 단순함의 철학,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임한 신의 모습, 구세주의 탄생과 사람들의 기쁨을 간결하게 표현하고 있는 아름다운 작품이다. 음악은 사람의 감정을 이어주고, 친구 맺어주는 특별한 요소가 있는 예술이다. 북치는 소년을 작곡한 K는 유명한 찬송가 Amazing Grace(나같은 죄인 살리신)라는 작품을 편곡하기도 했는데, 음악 속에 깃든 신앙심이라고나할까, 가슴에 느껴지는 감동이 찡하게 와 닿곤한다.
연말연시가 되면 더욱 우울해 질 때가 있다. 연말의 들뜬 분위기… 여기저기서 선물이 오가고 파티가 열리곤 하는데 왜일까? 이는 우리 마음이 본래부터 텅비고, 외롭기때문일 것이다. 캐롤송 ‘The Little Drummer Boy’를 처음 흥얼거려 본 것은 초등학교 4학년 때였던 것 같다. 좀 Sad(슬픈)한 추억이라고나할까, 같은 반 철이를 떠나 보내고 들었던 노래였다. 철이는 공부도 잘했고 늘 윤기나는 상고머리를 하고 다니던, 부티나는 아이였다. 반에서 유일하게 외자를 쓰는 특별성(?) 때문에 나는 그와 친하게 지내곤 했다. 어느날 철이는 겨울방학을 며칠 앞두고 갑자기 나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했다. 비밀이지만 자신이 곧 이민을 가게 되었으니 마지막 만찬(?)을 함께 하자는 것이었다. 철이의 집은 이태원에 있었는데 그의 집을 방문한 나는 조금 충격을 먹었다. 철이는 2 명이 자기에도 좁은 단칸방에서 엄마와 함께 단촐하게 살고 있었다. 그의 어머니도 그러한 자신들의 모습을 보여주기 싫은 듯 휑하니 밖으로 나가버리셨고 그 초라한 방에서 나와 철이는 미군부대에서 얻어온(듯한) 핫 초코렛, 햄 등을 먹으며 마지막 석별의 정을 나누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눈이 올듯 찌푸렸고, 찬바람이 꽤 매서웠다. 거리에선 캐롤송이 울려 퍼지고 있었고 나는 철이의 일을 잊고 금세 기분이 좋아졌다. 왜 사람들은 크리스마스가 되면 노래를 부르는 것일까? 왜 연말연시가 되면 하늘에서 내리는 눈처럼 캐롤송들이 공중에 가득할까? 아마도 이때만큼은 세상의 모든 근심을 잊으라는 신의 은총때문일까? 왜 나는 당시 갑자기 기분이 좋아졌을까? 지금도 나는 연말연시가 되면 가끔 그 때일을 생각하며 북치는 소년을 듣곤한다. 그 북소리를 듣고 있으면 노래 속에서 북이 되고 소리가 되어 마치 눈처럼 마구 희날리는, 소년이 되고 마는 것이었다. 돌이켜 보면 산다는 것이 모두 철이처럼 내면은 늘 텅비고, 가난하고 외로운 삶은 아니었는지 모르겠다. 눈이 내리고, 크리스마스가 다가 오면 사람들은 유난히 텅비고 쓸쓸한 마음으로 한 해를 보내곤한다. 그 외로운 마음을 들뜬 캐롤송 따위가 잊게 해 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유일하게, 사람은 누구든 마음 속에 하나쯤은 가시처럼 박혀 잊지못하는 노래가 있는 법인 것 같다.
크리스마스와 캐롤 송… 그것은 아마도 산다는 것… 땅위의 순례가 아픔에 그치지 않고, 저 먼 곳… 희망을 바라보라는 신의 섭리는 아닌지 모르겠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