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거리로 젊은이들이 나섰다. 만여 명이 몰려들었다. 다음 날에도 수 천 명이 모였다. 또 그 다음날에도…. 무자비한 진압이 펼쳐진다. 수 백 명씩 무더기로 체포된 것이다. 전투경찰이 증강된다. 그도 모자라 군부대까지 동원됐다.
그 선거라는 것은 한 마디로 사기극이다. 마각은 투표 날 전부터 이미 드러났다. 인권을, 저항의 메시지를 전하는 라디오와 블로그들이 일제히 폐쇄된 데에서.
그 가운데 실시된 총선이다. 사람들을 버스로 동원해 이 투표장에서, 저 투표장 식의 무더기 투표를 감행한다. 죽은 사람이 유권자로 부활한다. 투표함 바꿔치기에서 유권자 매수에 이르기까지 온갖 부정선거가 저지러진 것이다.
부패한 체제에 대한 피로감이 날로 확산된다. 그리고 그 체제가 저지른 선거부정에 새삼 분노가 치솟는다. 사람들이 마침내 거리로 나선 것이다. 2011년 12월 둘 째 주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일어난 일이다
익숙해졌다면 익숙해진 해프닝이다. 젊은이들의 분노가 폭발한다. 그 분노는 민주 혁명으로, 선거 혁명으로 분출되면서 집권 정치세력이 잇달아 무너지고 있다. 분노의 세계화라고 할까, 그 현상이 두드러진 해가 지난 한 해이기 때문이다.
그 스타트는 튀니지다. 폭압의 통치는 계속되고 있다. 제도권 언론은 그래도 침묵만 지킬 뿐이다. 그 현실에 좌절한다. 그 좌절감은 점차 분노로 번진다. 마침내 폭발한다. 리더도 없다. 조직도 없다. 그렇지만 진실에 눈을 뜬 젊은이들이 동시다발적으로 거리로 나선다. 이렇게 아랍의 봄은 시작된 것이다.
집권당 저주의 악령이 전 세계를 덮쳤다. 치러진 선거마다 집권당 참패다. 마치 도미노 현상 같다. 유로존에서는 아일랜드, 포르투갈, 슬로베니아 등 6개국에서 이런 현상이 발생했다. 경제가 엉망이다. 거기에 분노했다. 그 분노가 확산되면서 선거혁명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 흐름 속에서 한 가지 키워드가 발견된다.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라는, 기성세대에게는 다소 낯선 용어다.
러시아의 두마(하원)총선도 그렇다. 온갖 부정 선거 기법이 동원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변이 발생했다. 여당인 통합러시아당은 50% 미만의 득표율과 함께 77석을 잃은 것이다. 트위터로 서로 독려, 시민들이 자원해 투개표 과정을 감시한 결과다.
여당이 얻은 득표율은 사실에 있어 30% 정도다. 그런데 50% 가까운 득표율과 함께 여전히 과반수 의석을 차지한 것으로 선관위는 공식발표했다. 그래서 번진 게 부정선거규탄 시위다.
푸틴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러나 엉뚱하게도 미국을 비난하고 나섰다.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이 러시아판 오렌지 혁명을 유도하기 위해 시위를 선동했다는 것이다. 개혁의 가능성은 없다는 이야기다. 강경한 탄압만이 있을 뿐이라는 시그널을 흘린 것이다.
그래도 온라인을 타고 메시지는 계속 전파된다. 다시 모여 부정선거를 규탄하자는 것이다. 서명자는 계속 늘어난다. 1만, 2만, 3만….
정치적으로 극히 수동적이다. 민주화 보다는 안정을 바라는 게 러시아인의 일반적 정서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케 됐나.
“두 개의 러시아가 존재한다. 하나는 길들여진 러시아다. 모든 정당도, 언론도, 기업도 크렘린이 통제한다. 그 현상에 기성세대는 익숙하다. 거리시위가 발생해도 기성매체는 보도하지 않는다. 이와 상반된 러시아가 존재한다. 인터넷에 친숙한 젊은 세대의 러시아다. 이들은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얻고 또 전파한다. 이 두 러시아가 충돌했다.” 한 러시아 전문가의 분석이다.
전체주의를 겪지 않았다. 자기표현이 분명하다. 대부분이 ‘신중산층’으로 분류된다. 거기다가 SNS로 네트워크화 돼있다. 러시아판 신인류라고 할까, 이 신세대들이 분노한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만연한 부정부패에다가, ‘푸틴 원맨쇼의 정치’에 신물이 난다. 그 와중에 치러진 말도 안 되는 부정선거. 참을 수 없는 분노감이 이 젊은 세대를 거리로 나서게 한 것이다. SNS를 통해 집결된 힘을 과시하면서.
여기서 하나의 공식이 도출되는 것 같다.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라는 통신수단은 억압받는 계층을 돕는, 오직 진리만 전달하는 미디어 역할을 하고 있다는 공식이다. 아마도 과히 틀리지 않는 공식일 것이다. ‘제도권 언론이 죽어 있고 정보가 차단된 권위주의체제 하에서는’이란 단서가 붙는 조건에서는.
명(明)과 암(暗)이 엇갈리듯 민주주의가 덜 성숙된 사회에서는 그러나 사정이 달라진다. SNS는 자칫 끼리끼리의 소통도구가 될 위험성이 크다. 거기서 나타나는 게 쏠림현상이다. 뭐라고 비유해야 할까. 홍수 끝에 마실 물이 귀한 현상과 비교될까. 정보의 홍수 속에 판단력을 상실한 대중에게 오직 황당무계한 괴담만 퍼 나르는 도구로 전락하기 쉬운 것이다.
2012년 선거의 해를 앞둔 한국 사회에 벌써부터 그 조짐이 확연히 드러나고 있다면 지나친 기우일까.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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