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구세군 자선냄비에 1억1,000만원 짜리 수표가 기부돼 큰 화제가 되고 있다. 지난 4일 명동에서 60대로 보이는 단정한 정장 차림의 남성이 자선냄비에 봉투를 넣고 갔는데 나중에 모금액을 합산하는 과정에서 이 예사롭지 않은 액수가 확인되었다. 남성은 구세군 봉사자에게 정중하게 인사한 뒤 “좋은 곳에 써 달라”는 말만 남겼다고 한다.
힌두교 경전 우파니샤드는 “인간의 욕망이 바로 그의 운명”이라고 말한다. 욕망이 의지를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의지가 곧 그의 행위이며, 그의 행위가 곧 그가 받게 될 결과물” 바로 운명이라는 것이다.
명예, 돈, 지위, 학벌, 사랑 …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내 손에 움켜쥐고 싶은 소유의 욕망이 대부분 우리의 삶을 이끌고 있다. 저마다의 이익에 눈먼 욕망이라는 열차들이 서로 부딪치고 부셔지면서 세상은 아수라장이고, 그 속에서 삶은 고통의 연속이다.
“그럼 거기서 나오면 되잖아”라고, 욕망이라는 열차에서 내리면 된다고 일러주는 사람들이 있다. 숨 막히는 열차에서 내려 들판의 향기로운 한 줄기 바람에 자신을 맡기는 경험, 아무도 모르게 1억짜리 수표를 자선냄비에 넣는 것은 그런 신선한 경험이 아닐까.
연말은 그들 얼굴 없는 천사, 이름 없는 산타가 나타나서 우리의 얼어붙은 마음을 녹여주고 눈먼 욕망을 돌아보게 하는 복된 계절이다. 그들은 어떤 계기로 소유라는 욕망의 열차에서 과감히 내려섰을까.
‘이름 없는 산타’로 대표적인 사람은 래리 스튜어트이다. 크리스마스 시즌이면 어김없이 나타나 거리에서 100달러짜리 지폐를 나눠주던 인물이다. 2007년 1월 암으로 사망하기 직전에야 이름이 알려진 그는 미주리, 리스 서밋의 사업가였다.
26년 동안 그가 나눠준 지폐는 총 130만 달러. 그 엄청난 액수에 대해 그는 충분히 보상을 받았다고 생전에 술회했다. 절망에 차있던 표정이 한순간에 희망의 표정으로 바뀌고, 암울했던 얼굴에 밝은 미소가 떠오르는 그 기적 같은 변화를 보는 것이 그가 받은 보상이었다.
그가 ‘산타’로 나선 데는 어떤 잊지 못할 고마움이 계기가 되었다. 배고프고, 춥고, 절망에 차있는 것이 어떤 건지, 그때 받는 도움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를 그는 알고 있었다.
1971년 겨울 그는 미시시피에서 외판원으로 일하던 회사가 망하면서 동전 한푼 없는 알거지가 되었다. 이틀을 꼬박 굶고 나니 달리 방도가 없었다. 무작정 식당에 들어가 아침식사를 잔뜩 시켜 먹은 후 지갑을 잃어버린 척 연기를 했다.
그때였다. 식당 주인이 그가 앉은 자리 곁으로 오더니 바닥에서 20달러짜리 지폐를 집어 들며 “자네가 이걸 떨어트린 모양이네”라고 했다. 스튜어트는 ‘하늘의 도우심’이라고 생각했다. 그 돈으로 음식 값을 내고, 팁을 내고, 자동차에 기름을 넣고 그 마을을 떠났다.
그런데 얼마 후 문득 깨달아지는 게 있었다. 돈을 흘린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는 사실이었다. 식당 주인이 그가 무안하지 않도록 배려하며 도움을 준 것이었다. 그 순간 그는 “형편만 되면 반드시 남을 돕겠다”는 맹세를 했고 1979년부터 실천을 했다. 아울러 그는 1990년 물어물어 그 식당 주인을 찾아가 20달러의 고마움을 1만 달러로 갚았다.
선행은 선행을 낳는다. 그가 사망한 후 이름 없는 산타들은 더 많아졌다. 그의 뜻을 따르는 사람들이 협회를 만들어 그가 하던 일을 계승하고 있다. 아무리 부자라도 자선을 행하지 않으면 맛있는 요리가 즐비한 식탁에 소금이 없는 것과 같다고 탈무드는 말한다. 양념이 안 돼서 맛없는 인생이라는 말이다.
올 연말 한국 전주에서는 어느 맛깔스런 인생을 주제로 한 연극이 공연되고 있다. 제목은 ‘노송동 앤젤’ - 해마다 연말이면 아무도 모르게 노송동 동사무소에 성금을 전달하는 ‘얼굴 없는 천사’를 소재로 한 연극이다.
이 선행의 주인공은 2000년부터 11년 간 총 1억9,720만원을 몰래 기부했다. 2년 전 그가 남긴 편지에는 “어머님의 유지를 받들어 어려운 이웃을 위해 쓰여졌으면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아마도 그는 어머니에 대한 사랑 혹은 회한 때문에 ‘천사’가 된 것 같다.
“곳간에서 인심 난다”고 하지만 ‘인심’의 근본은 마음이다. 내 곳간에 쌓아두고 싶은 유혹을 뛰어넘게 하는 것은 그 보다 더 강한 주고 싶은 마음. 이웃의 굶주림과 헐벗음이 나의 배고픔, 나의 추위로 느껴질 때 곳간 문은 열리고 내어주는 기쁨을 체험하게 된다.
그래서 그 기쁨에 겉옷을 달라 하는 데 속옷까지 주고, 5리 대신 10리를 같이 가게 되는 기적이 일어난다. 내어줌의 극한을 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는 시즌이다.
권정희 논설위원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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