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냉장고 밖에 내놓은 음식보다 더 빨리 쉬는 게 골프스윙이다. 최근 PGA와 LPGA 투어 퀄리파잉 대회(Q스쿨) 결과를 보니 더욱 그렇다는 생각이 든다. 탈락한 메이저 대회 우승 경력자가 데이빗 듀발(40), 리 잰슨(47), 리치 빔(41), 숀 미킬(42), 김주연(30·버디 김) 등 5명이나 되기 때문.
나이 탓을 하자니 이들이 최근 들어 갑자기 시든 것도 아니고, 또 그 중 3명은 올해 커리어 최고 시즌을 작성한 최경주(41) 또래 선수들이다. 2005년 US여자오픈 챔피언 김주연도 30세에 불과하고, 기록을 보면 그녀가 하향곡선을 그리기 시작한 건 창창한 25살 때부터다.
한때 타이거 우즈의 라이벌로 여겨졌던 듀발은 30세였던 2001년 브리티시오픈 우승 후 완전히 망가져버렸다. 부상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11년이 지나도 예전의 스윙은 나오지 않고 있다.
메이저 타이틀을 3개나 따낸 잰슨도 ‘수리’가 안 되는 스윙이다. 1998년 US오픈에서 마지막으로 정상에 오른 후 13년째 우승이 없고, 풀타임 출전권마저 잃은 지 3년째에 접어든다. 또 2002, 2003년에 차례로 PGA 챔피언십 우승의 감격을 안았던 빔과 미킬도 결국에는 투어카드까지 잃은 초라한 신세로 추락하고 말았는데, 왜들 그렇게 되는지 파악이 쉬운 문제라면 이미 해결책이 나오지 않았을까.
그만큼 ‘유지’가 어렵기에 “위대함은 세월로 재는 것(Greatness is measured by time)”이란 말이 있고, 그러기에 지난 주말 2년여 만에 다시 우승한 타이거 우즈가 더욱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LPGA 코리아’의 통산 101승 중 혼자서 25승을 책임진 박세리에 아직은 다른 한국여자골퍼가 비교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머지 한국여자골퍼 중에는 두 자리 회수 우승자 없이 1회 우승자만 18명, 2회 우승자가 9명이란 점에서 박세리의 ‘위대함’을 실감할 수 있다.
우즈는 1996년부터 15년에 걸쳐 14개 메이저 타이틀(역대 2위)을 포함해 PGA투어에서만 71승(역대 3위)을 쓸어담았기에 ‘황제’로 불리는데, 올해의 로리 맥킬로이(22^북아일랜드)와 청야니(22^대만)처럼 그때그때 ‘차세대 황제’ 또는 ‘새로운 여제’로 주목받는 ‘영건’들은 그 정도의 업적을 쌓아올릴 때까지 그 실력과 열정을 이어나간다는 보장이 없다. 그 정도로 골프에 전념할 수 있도록 깨끗한 사생활과 건강을 유지하는 것도 ‘세월이 주는 테스트’의 일부라고 할 수 있겠다.
송아리-송나리 한국계 쌍둥이 자매, 미셸 위, 타이 트라이언 등 어렸을 때부터 이름을 날렸던 ‘골프신동’들이 모두 실패한 일이다. 그저 오래 치면 경험이 쌓이면서 점점 잘 하게 되는 게 골프인 듯 김칫국부터 마신 사람들이 많았지만, 그들이 순진하게 예언한 ‘박세리는 저리가라 하는 여자골퍼’와 ‘넥스트 타이거 우즈’는 아직까지도 나오지 않고 있다.
13살 때부터 나비스코 챔피언십 타이틀을 위협했던 송아리와 나리는 25세가 된 12년 후에도 우승이 없다. 22세가 된 미셸 위는 2승을 거뒀지만 남자대회를 넘나들며 부풀린 기대에는 턱없이 못 미친 게 현실이다.
PGA투어 역대 최연소 Q스쿨 통과자로 캘러웨이와 대형 스폰서 계약을 맺고 화려하게 프로전향했던 트라이언은 더 초라한 신세다. 27세가 돼서 17살 때 거뜬히 통과했던 Q스쿨로 돌아가 또 떨어졌기 때문이다.
이들이 ‘잠재력’ 하나로 엄청난 대우를 받을 때 “‘잠재력’이란 ‘입증한 게 없다’는 뜻”이라며 못마땅하게 여기던 베테랑 선수들의 말이 틀리지 않은 셈이다.
이처럼 잘 망가지는 골프선수를 키우는 건 참 ‘위험부담 큰 투자’라는 생각이 들다보니 언젠가 한 한국인 LPGA골퍼와 그 부모가 티격태격하면서 주고받았던 말이 떠오른다.
“잔소리 듣기 싫지? 나도 너 따라다니면서 잔소리하기 싫어. 지금까지 들어간 돈만 돌려주면 안 따라다닐 테니까 연습이나 더 해!”
“그게 얼만데.”(울면서) “12억(원)!”
그녀도 잘 안 보이기 시작한지 오래됐는데, 통산 상금을 보니 그 전에 최소한 본전은 뽑은 것 같아 다행이다.
<이규태 스포츠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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