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찬(부국장 대우/경제팀장)
만화 개구쟁이 스머프는 공산주의를 어린이들에게 알리기 위한 선전 수단이었다. 스머프들은 자급자족하면 산다. 이들의 마을은 사유재산이 없는 공동생활체이다. 붉은 색 옷을 입은 지도자 파파 스머프의 수염은 칼 마르크스를 연상시킨다. 동그란 안경을 쓴 똘똘이 스머프는 트로츠키와 닮았고, 그가 가진 독특한 생각 때문에 마을에서 조롱받는 모습은 급진적인 이론으로 구소련에서 추방당했던 트로츠키를 떠올리게 한다. 나쁜 연금술사 가가멜은 부르주아를, 가가멜의 충실한 부하인 고양이 아즈라엘은 프롤레타리아를 상징한다.
이 음모론을 제기한 사람은 호주의 평론가 마크 슈미트다. 유럽의 금융위기를 불러온 그리스의 재정위기도 음모론의 선상에서 보는 시각이 있다. 이 음모론에 따르면 독일과 프랑스 등 주요 유럽국가들이 그리스를 당장 부도내지는 않는다. 그리스 국채에 투자한 유럽의 대형 은행들이 빠져나올 수 있는 시간을 2년정도 확보한 다음, 적당한 시간에 디폴트를 내기로 했다는 것이다. 이 기간동안 유럽의 국가들은 다양한 양적완화정책을 실시해 자국의 은행들이 원기를 회복하도록 하고, 이후 유동자금을 아시아증시로 돌려 거품경제를 만들어낸다. 마지막은 실물경제보다 과장된 거품경제로 아시아의 경제가 파탄이 난다는 것이다.
미래의 아시아 경제가 어떻게 될 지 모르지만 이번 그리스 위기에서 골드만삭스와 같은 대형 은행들이 그리스의 재정부실을 알면서도 한쪽으로 대출해주고 파생상품으로 막대한 이익을 챙기고 있다는 지적은 사실일 수도 있다. 지난 1997년 한국의 국가부도 당시 금융자본의 음모론이 파급되기도 했다. 음모론(conspiracy theory)은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킨 사건의 원인을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할 때, 배후에 거대한 권력조직이나 비밀스런 단체가 있다고 해석하는 것을 말한다. 음모론은 일반적으로 일어나기 힘든 사건을 주관적으로 이해하려 하거나 또는 부정확한 정보들이 난무할 때, 이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평소에 간과되었던 부분이 해당 대상과 관련점이나 유사점이 엿보일 때 이에 대해 과다하게 집중하면서 가정과 비약이 덧붙여져 만들어지는 것이 보통이다.
특히 음모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사건 진행 간의 개연성에 집착한다. 그 과정에서 사건의 발생을 가능하게 한 요소들 중에서 우연적이었지만 또한 결정적이었던 요소는 일체 배제하고, 반대로 사건 발생 당대에는 여러가지 이유로 간과된 가정들을 지나치게 맹신하고 근거로 삼는 부분이 많이 보인다.
문제는 이같은 음모론이 정보가 통제돼 있을수록, 사회가 어지러울수록 더 힘을 받는다는 점이다. 정부 등 공공기관의 발표로는 설명이 안되거나, 충분히 설득이 되지 않을 때 반론의 성격으로 나오면서 확산된다. 최근에는 ‘나는 꼼수다’에서 음모론 차원에서 지적했지만 일부분 사실로 드러나면서 화제가
된 디도스 공격설이 대표적이다.
디도스 공격은 지난 10·26 서울시장 재보선 당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가 오전 출근시간 2시간동안 접속이 안됐던 사건을 말한다. 이로 인해 유권자들이 바뀐 투표소 위치를 제대로 찾지 못하는 등 불편을 겪었다.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는 선거 다음날부터 ‘나는 꼼수다’에서 선관위 홈페이지 접속 장애에 대해 디도스 공격이 아닌 ‘누군가의 조작일수도 있다’는 음모론을 제기했다. 디도스 공격을 받으면 사이트 전체가 접속 불능이 된다. 하지만 당시 선관위 홈페이지는 접속되면서, 유권자가 자기 투표소를 찾으려고 주소를 넣으면 데이터베이스(DB)와 연동하는 것만 끊어졌다. 단순히 디도스로 덮으려고 하지만 실제는 다른 개입이 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 음모론은 단순한 주장으로 그치지 않고, 로그 파일 공개 여부나 디도스 공격 당시 트래픽 용량 차이에 대한 근거 등으로 상당한 설득력을 갖고 있다.
흔히 말하는 괴담은 음모론의 다른 이름이다. 하지만 사실 관계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고 설득력이 떨어지면 괴담은 언제든지 사실이 될 수 있다.
언제부터 한국이 ‘괴담 천국’이 됐는지 모르겠지만 국민들이 믿지 않는다고 푸념하기 보다는 그동안 스스로 해온 일을 돌아보는 것도 좋을 듯 싶다. 상식에서 벗어나면 음모론이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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