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월 4일. 한 이름 없는 청년이 숨을 거두었다. 수 주 전 당국의 무자비한 단속에 저항해 이 청년은 몸을 불살랐다. 그 청년이 결국 불귀의 객이 되고 만 것이다.
북아프리카의 튀니지에서 발생한 이 사건은 이후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었다. 민주화 외침이 열풍으로 변하면서 독재체제가 하나 둘 무너져 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 첫 번째는 23년간 철권통치를 휘둘렀던 튀니지의 벤 알리 정권 붕괴다. 그 다음이 이집트의 무바라크 체제. 뒤이어 리비아의 카다피도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그 열풍은 계속 아랍 권을 휩쓸면서 시리아의 아사드 정권도 몰락 직전의 상황을 맞고 있는 것이다.
재스민 혁명의 열풍이 몰아친 2011년이 그 끝자락을 드러내고 있는 시점에 한 화려한 커밍아웃 쇼가 전개됐다. 독재국가 중의 독재국가라고 해야 할까. 그런 미얀마가 극적인 변신의 모습을 선보인 것이다.
이걸 국가라고 부를 수가 있을까. 민주화 시위가 발생한다. 그러자 기관총으로 난사를 한다. 그렇게 숨진 학생만 수만 명이 넘는다. 독재에 저항해 온 몸을 불사른 불교 승려만 몇 명인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그러나 전혀 미동도 않는다. 아니 탄압만 가중된다.
엄청난 천재지변이 엄습했다. 거대한 사이클론이 덮쳐 10만 이상의 목숨을 앗아간 것이다. 이재민만 수백만이다. 그런데도 외부의 지원을 거부한다. 미군이 구호활동을 펼칠 경우 체제붕괴의 위험이 따른다는 판단에서다.
그 미얀마가 변신을 꾀했다. 수 십 년 고립의 빗장을 열고 서방에 손을 내민 것이다. 오랜 군사독재가 형식에 있어서는 종식됐다. 그리고 새로 들어선 대통령은 ‘버마의 고르바초프’로 불리는 테인 세인이다.
일부지만 정치범을 석방했다. 노조도 인정하고 부분적으로 언론에 물렸던 자갈도 풀었다. 미얀마 민주화의 상징인 아웅산 수치여사의 가택연금을 해제하고 그녀가 이끄는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의 활동도 허용했다.
그 정치개혁에 대한 보상으로 미 국무장관으로서는 1955년 이후 처음 힐러리 클린턴이 미얀마를 공식 방문했다. 힐러리는 세인 대통령을 만나고 아웅산 수치여사와도 회견을 가졌다. 그리고 미국과의 대사 교환 약속 등 선물 보따리를 풀었다.
무엇이 이런 변화를 가져왔나. 끊임없는 민주화 요구가 그 한 요인으로 지목된다. 군사독재 통치에 스스로 한계를 느꼈다. 그래서 자신도 군 출신이지만 올 3월 정권출범과 함께 세인 대통령은 아웅산 수치에게 손을 내밀었고 대대적인 정치 타협이 이루어 진 것이다.
모든 변화는 그러나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30년 이상 철권통치를 해왔다. 그 군부에도 ‘중국 피로감’이 확산됐다. 이것도 변화의 한 주요 요인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미얀마의 비극은 1988년 신군부 쿠데타에서 비롯됐다. 1990년 민정이양을 위
한 총선에서 아웅산 수치가 이끄는 NLD가 압승을 거두자 군사평의회가 투표결
과를 무효화하고 철권통치를 해왔다.
그 군사독재체제를 전적으로 지원해온 것은 중국이다. 국제사회로부터 고립된
미얀마에 무기를 대주었다. 차관을 공여하고, 자원을 개발했다. 그러면서 중국이 세운 전략은 미얀마란 육로를 통해 인도양 일대를 제패한다는 것이었다.
중국인들이 몰려들었다. 미얀마의 환경파괴 따위는 아랑곳 하지 않는다. 미얀마 인민의 안녕도 관심 밖이다. 총만 안 들었을 뿐인 중국 특유의 ‘인해전술’에 미얀마 군부조차 당혹감을 감출 수 없게 된 것이다.
그 피로감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2000년도 들어서부터다. 그러면서 중국의 저의에 미얀마 군부는 경계의 눈초리를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국민정서도 마찬가지다. 마침내 올 것이 왔다, 중국이 자본을 대고 생산 된 전력의 90%를 중국에 수출하는 조건으로 미얀마 북부지역에 세우기로 한 수력발전소 건립계획을 백지화 한 것이다.
동시에 미얀마는 동남아연합국가(ASEAN)의 일원으로서 이웃한 베트남에, 일본에 또 대한민국에 우호의 시그널을 보냈다. 북한과의 전략적 파트너 관계를 청산할 수도 있다는 강력한 시사를 흘리면서.
그리고 마침내 전개된 것이 친서방국가로의 변신 가능성을 알린 커밍아웃 쇼다. 오바마 대통령의 ‘아시아를 축으로 한 외교전략’ 발표에 타이밍을 맞춘 미 국무장관의 공식방문과 함께.
불현듯 겹쳐지는 그림이 북한이란 고립된 체제의 경직된 얼굴이다. 재스민 열풍과 함께 북아프리카와 중동에 민주화 도미노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거기다가 북한과 함께 중국의 유이(有二)한 동맹국이었던 미얀마까지 변하고 있다.
2011년이란 시간 속에 일어난 그 변화의 물줄기를 김정일 체제는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혹시 체념의 심정은 아닐까. 다가오는 2012년은 뭔가 불길한 해가 될 것이라는 불안감을 떨치지 못하면서.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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