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병원 당직이었다. 정신 없이 바쁜 시간이 지나고 퇴근 준비를 하는데 전화가 걸려 왔다. “메리, 이제 편안해졌다. 아까 통화했을 때 전해주지 못해서 미안해. 네가 종일 일을 해야 하니까…”라고 전한다. 멍했다. 친구의 죽음을 준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정말 그녀가 떠났다니 울음 조차 소리가 되어 나오지 못했다. 한참동안 말을 하지 못하자, 전화를 걸어 온 동료는 운전해 퇴근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대답이 무엇이었던지 지금은 기억되지 않는다. 그리고 병원 앞의 마켓에서 안개꽃 한다발을 사서 다시 병원으로 돌아왔다.
그녀의 사진을 책상 가운데로 당겨 놓고 안개꽃을 화병 가득히 꼽아 그 뒤에 놓았다. 그제서야 눈물이 흘렀다. <우리는 널 정말 사랑한단다> 쪽지를 써서 사진 앞에 놓았다. 일요일 밤, 고요한 사무실에서 그녀의 사진과 마주 앉았다. ‘그녀가 갔구나’라는 한마디가 머리 속에서 망가진 테입처럼 돌고 또 돌았다.
메리는 지난 5년동안 나와 한 팀이 되어 환자들의 퇴원을 준비했던, 동료이자 병원 안에서 가장 가까운 친구! 유방암의 재발로 방사선 치료에 이어 항암 치료를 받을 때 한 순간도 희망을 놓지 않았었다. 머리가 빠지고 가발을 써야 하자 머리에 꼽는 예쁜 나비핀 두개를 사서 건네며 ‘가발이 너무 잘 어울린다…금발의 자연스런 웨이브가 네 흰 피부와 딱이네! 딱이야!’ 라며 애써 웃었다.
메리는 치료를 하면서도 근 일년동안이나 나와 함께 중환자실에서 일을 했었다. 병마와 싸우면서도 일을 놓지 못하는 그녀를 보고 있으면 안타까웠지만 일을 하는 것이 다음 날을 살 수 있는 희망이고 출근을 하는 것이 하루를 시작하는 이유라는 데는 할말이 없었다.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은 고작 유방암이나 어린 자녀를 둔 환자가 있으면 막아서며 만나지 못하게 하는 것과 오후 2시가 넘으면 빨리 퇴근을 하라고 채근을 하는 정도였다. 가끔 그녀가 물었었다. 유방암 4기 환자, 재발되고도 살아나는 것 보았느냐고. 중환자실에 오래 근무했으니 잘 알 것 아니냐고. 당혹스런 질문이었지만 내 대답은 늘 똑 같았다. ‘가끔 기적이라는 것도 있고 신의 계획에도 예외조항이라는 것은 있는 법이지.’라고. ‘그 예외조항 한번 믿어 보자’라며 그녀는 웃었지만 나는 그 뒤의 두려움과 쓸쓸함을 보았었다.
항암 치료를 다시 시작하며 그녀의 동생이 블로그를 개설했었다. 메리의 항암치료 스케줄과 인형 같은 그녀의 딸들의 학교 소식들이 올라왔다. 매일 들러 좋은 소식은 없는지 살폈다. 블로그에서 기도 체인을 열었고, 그녀와 가족들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을 해가는 스케줄도 올라왔다. 불고기와 밥, 잡채와 모듬야채볶음, 옥수수 죽과 시금치 무침 등 그녀가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을 올리며 마음 속으로는 ‘넌 꼭 살아야 한다’고 얼마나 기도했던가.
살아야 하는 이유는 명확했다. 아이들이 아직 11살과 12살로 감수성이 가장 예민한 사춘기를 막 시작할 나이이고, 동생들을 돌보아야 할 무거운 책임을 진 제일 큰딸이 이제 막 스무살이었기 때문이었다.
장례식에서는 사진 속 그녀가 환하게 웃고 있었다. 운전을 하다 문득, 그녀가 정말 갔구나 생각이 들고, 바람에 흔들리는 나목들 사이로 그녀의 얼굴이 스쳐 지나가기도 한다. 그녀의 책상 앞을 지나며 그녀가 나와 이야기 할 수 없음도 깨닫는다.
책상 위의 안개꽃은 아직 마르지 않았다. 메리의 흔적이 많은 그녀의 사무실 주변을 정리해야겠지만 그 누구도 선뜻 치우지 못하고 내 눈치만 보는 것 같다. 다음 주쯤엔 커다란 박스 몇 개를 준비해 또 다른 동료 나오미와 함께 짐 정리를 해야겠다. 또 얼마나 더 울면서 그녀의 책상을 치울까. 그리고 언제까지라고 약속은 할 수 없지만, 매주 한번씩 아이들에게 들러 저녁거리를 챙겨주고 한참을 안아주고 학교 이야기로 수다를 떨다가 돌아오는 일을 계속 해볼 모양이다.
밤 늦은 시간 오랜만에 메리의 블로그에 들러 보았다. 반들거리는 회색 돌이 뜨는 시작 창 밑에는 <그 동안 방문해 주셔서 감사 합니다. 언젠간 다시 만나겠지요. 이제 문을 닫습니다.> 라고 쓰여 있다. 부드럽고 가는 목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리는듯한 이 서늘함의 의미를 하늘나라의 그녀는 알고나 있을까.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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