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풍부한 상상력. 미적 감각 현대인 능가
▶ 앙코르 제국 영광과 킬링필드 비극 펼쳐진 크메르족의 입헌군주국
12세기 초부터 30년에 걸쳐 건설한 앙코르 와트 앞에서.
윤 봉춘 (수필가)
앙코르의 추억
캄보디아라는 나라는 뉴스나 영화에서 많이 듣던 가난과 내전과 학살로 기억되는 나라이다. 인도차이나 반도의 베트남, 라오스, 태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다. 앙코르제국의 영광과 얼마 전 까지 킬링필드라는 비극이 펼쳐진 크메르족이 살고 있는 입헌군주국가로 1400만의 인구의 95%가 불교를 숭상하는 소승불교 국가로 크기는 한국의 두 배 정도가 되지만 세계 최 빈국중 하나인 나라이다.
앙코르와트에서 멀지않은 씨엠리업 국제공항에 내려 초라한 공항 사무실 간이 책상위서 입국서류와 함께 현찰 25불 맞돈을 내고 입국수속을 마치니 여권은 본인에게 돌려주지 않고 호텔에서 안내인에게 일괄 전하여 준단다. 시내 변두리에 있는 로얄 드래곤 호텔. 이름 만큼이나 호텔건물외양은 그럴 듯하였으나 이웃 태국에서 전기를 공급받아 쓰는 형편이라 실내는 어둡고 객실조명도 밝은 석유램프 정도로 어두운 편이다. 한국도 6..25 사변 후 호롱불도 켜지 못하고 지난 때를 생각하니 그 나라의 어려운 사정에 공감이 간다.
짐을 풀고 창밖을 내려다보니 대로 건너편에 한국의 XX여행사 선전 대형 한글 간판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옆에 숙박업소 부설 식당에는 한국의 김 아무개 청국장 요리 배너가 나부끼고 거리에 나서니 상황버섯 선전 노래방등 수많은 한글간판이 서울의 어느 외각 지역을 들어선 느낌이다. 넓은 도로에는 현지인들의 자전거와 오토바이를 탄 인파가 몰려 지나간다. 얼마나 많은 한국인들이 이곳을 찾아왔으면 이토록 한국화(?) 되었을까! 머나먼 동남아 밀림속의 작은 도시에서 수 없는 한글 간판을 보니 한국의 국력을 간접적으로 짐작 할 것 같다.
앙코르 사원
고고학자도 아니고 인류 역사학자도 아닌 관광객이 이곳에 오는 이유는 세상에 알려진 경이로운 고대 건축물과 따 프롬(Ta Prohm) 사원에 내려진 뽕나무 과에 속한 스포안 나무가 천년의 석조사원을 감싸고 내려온 기괴한 뿌리의 그로테스크한 모습들을 눈으로 확인하고 싶은 호기심을 자극한 탓이다.
9세기부터 시작한 앙코르 왕조의 개막은 당시 자야바르만 2세가 즉위 하면서 번성하기 시작하여 10세기에 앙코르로 천도하여 영화를 누리다가 고대의 수많은 권력싸움에 쇠약한 국력은 태국의 아유타 왕조와의 전투에서 참패한 후 버려진 왕도가 19세기 프랑스인 탐험가에게 발견 될 때가지 밀림에 버려진 잊혀 진 곳이었다. 앙코르는 지명이고 와트는 사원이라는 뜻이다.
앙코르 와트는 12세기 초부터 수리야바르만 2세가 30년에 걸쳐 건설한 거대한 사원이다. 힌두교의 우주관을 실현한 건축물들이 중앙 사당을 중심으로 5개의 첨탑이 자리 잡고 있다. 사원 주위를 폭 190m의 해자가 둘러싸고 있어 물이 고인 해자는 인공호수가 되어 수면에 반사된 사원의 첨탑을 담고 있어 신문이나 TV에서 보던 그 풍경이 아름답게 물위에 일렁이고 있다.
사원의 입구 진입로를 한참을 걸어 들어가다 보니 어디선가 한국의 아리랑이 들려온다.일곱 여덟 여명으로 이루어진 남성들이 남루한 복장으로 시각 장애자, 발목이 없는 사람들로 불구의 장애인들 악단이다. 옆의 간판에는 크메르 내전으로 부상당한 우리들을 도와 달라는 한글, 일본어 한문 여러 나라 말이 서투른 글씨로 관광객들의 동정심을 유발한다. 안내인의 말에 의하면 멀리서 한국인들의 왁작 지껄한 한국말이 들려오면 그들은 한국민요를 그들의 민속악기로 연주한다고 한다. 오랜 경험으로 그 들은 멀리서 들려오는 말소리로 관광객의 국적을 알아낸다고 한다. 강심장이 아닌 바에야 수 천리 떨어진 동남아의 밀림 속에서 울려 펴지는 자국의 민요를 듣고서 그들의 자선 바구니에 지폐 한 장을 떨구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앙크르 와트 서쪽 참배로 입구에서 보면 십 여 세기 전 옛날 사람들이 피 땀 흘려 지어놓은 세계최대의 경이로운 규모를 가진 옛 힌두 사원의 장엄한 석조건물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건물 외부를 둘러싼 긴 긴 회랑의 사암 벽에는 그들의 신앙의 전설이 정교한 솜씨로 부조되었다. 힌두교의 3대 신 시바 신(Shiva), 비슈누 신(Vishnu), 브라흐마 신(Brahma)들과 가공의 신수(神獸)들이 갖가지 모양으로 그들의 신앙세계를 후세까지 전하고 있다. 현대인들이 스마트하다고 스마트 폰까지 만든 세상이지만 그 때 당시에도 그들의 풍부한 상상력과 건축술, 사실적 추상적인 미적 감각은 현대의 미술보다 훨씬 더 스마트해 보인다.
신을 섬기는 곳은 높아야 하는지 멕시코의 치첸이차의 피라미트처럼 이곳도 첨탑의 꼭대기 까지는 그와 비슷한 가파른 각도의 계단으로 사람들의 범접이 힘들어하게 설계된 것 같다. 비잔틴 제국의 화려하였든 유산인 터키 이스탄불의 성 소피아 성당이 이슬람 사원으로 바뀌어 이슬람식으로 변조된 건축물 내부 장식을 둘러보고 안타깝게 느끼었든 생각이 난다. 세월의 풍상이 지나면 세상이 바뀌듯이 이곳 신전도 힌두 신을 모시던 사원이 불교사원로 바뀐 후 첨탑 중앙은 황금색으로 도금한 부처님의 와불이 편안히 누워 계신다. 신도들이 정성껏 기도하며 바친 향불과 양초가 켜있고 매캐한 분향이 밀림에서 불어온 가을바람에 흩날린다.
한국에서도 요즘은 거대한 와불상을 볼 수 있지만 대승불교의 한국 사찰에서는 우리가 자랄 때만 하여도 누워 계신 불상은 구경 할 수 없었다. 검은 머리장식과 온화한 미소로 명상에 잠긴 금빛좌상의 부처님만이 볼 수 있었는데 편안히 누워계신 부처님 와불상을 요즘은 흔히 볼 수 있다. 더구나 이곳 앙코르의 첨탑 방에 모셔진 부처님은 옆으로 비스듬히 누워 계시면서 죄 많은 사바세계의 중생을 말없이 내려 보고 계신다. 그런데 이 밀림의 밤이 추울까 보아 고운 색깔의 이불까지 덮어 드렸다. 저기 누워계신 이불 속의 부처님도 우리의 속인처럼 잠옷을 입고 누워 계실까 불경하고 망측한 생각이 스친다.
앙코르와트의 중앙사당과 수많은 부조가 있는 긴 회랑들을 짧은 시간에 수박 겉핥기 식 으로 관람하고 주변 사원의 여러 경지를 도보로는 이동하기 힘들어 이 나라의 명물 <톡톡이> 오토바이를 타고 경내를 둘러보아야 일정을 다 소화 할 수가 있다. 천 여 년의 세월 속에 바이온(Bayon) 사원의 석상들은 모두가 시꺼먼 이끼가 끼어있어 한 참을 들여다 보아야 불상의 윤곽이 잡힌다. 사면불의 미소는 바이온의 특별한 양식이라 한다.
경이로운 모습으로 세상에 알려진 따프롬 사원의 거대한 나무뿌리가 사원의 석벽을 움켜 잡고 하늘높이 솟아있다. 어떤 것은 거대한 문어가 건물을 집어 올린 것 같기도 하고 또 다른 곳은 대형 화물선 기중기의 커다란 그물이 내려와 석조건물을 통째로 옮길 것 같기도 하고, 어떤 나무뿌리는 직경이 몇 아름이 될 듯싶은데 십여 미터나 넘게 뻗어 내려와 마치 하늘의 청용이 내려와 건물을 감싸듯이 휘감아 돌아 뒷벽으로 들어가 몸을 감추고 있어 그 길이를 집작할 수 없다. 인간이 만든 구조물이지만 수 백 년 동안 방치된 사이 자연의 위대한 힘은 이 모든 것을 다시 자연으로 휩싸 버려 이런 불가사의 한 장면을 보여준다. 인간의 역사와 자연의 힘이 대치하는 오묘한 조화를 이 자리에서 볼 수 있다. 이런 역사의 현장을 직접 만지고 느끼고 육안으로 가까이 확인한 것만으로도 이번 여행이 값지게 생각되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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