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경제가 캄캄한 터널을 지나고 있어 교인들의 헌금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교회들의 재정 상황이 녹록하지 않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래서인지 최근 들어 한인 교회의 통합이 부쩍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말 다운타운 인근서 셋방살이를 하던 세계로교회와 자체 성전을 가진 한인타운의 헤브론교회가 한 몸이 되어 ‘한길교회’라는 새 이름으로 출항했다. 헤브론교회 자리에 둥지를 튼 이 교회는 1.5세 노진준 목사의 리더십 아래 다른 컬러의 두 교회가 뭉친 데 따른 이질감을 극복하고 젊은 부부와 청년들이 늘어나는 견실한 목회를 하고 있다.
또 지난 2월 부에나팍 옥합교회와 사이프러스 가주주님의교회가 ‘그리스도연합교회’로 재탄생했으며, 10월에는 글렌데일 나누리교회와 버뱅크 사랑의빛선교교회가 버뱅크 쪽으로 합치면서 ‘은혜선교교회’가 됐다. 은혜선교교회는 동부에서 합류한 목사를 포함 3명이 풀타임으로 섬기지만 아무도 담임목사 타이틀을 쓰지 않는 가운데 설교와 찬양인도를 번갈아서 맡고 있다. 같은 교회 출신의 20년지기인 세 사람은 “생존형 통합은 반드시 실패할 것”이라고 확신하며 많은 고민을 거쳐 결정을 내렸다. 이 과정에서 ‘인간적 계산’이 틈타지 못하도록 과거 교회의 이름과 은행계좌를 다 없애고 아예 새로운 교회를 시작했다.
35년 역사의 위티어 영은장로교회와 담임목사가 없는 사이프러스 성신장로교회
는 내년 초 하나 되어 도약을 꿈꾼다. 두 차례 서로의 성전을 방문해 예배와 사귐의 시간을 함께한 100여 교인들은 성탄절을 더불어 축하하고 12월31일과 내년 1월1일에 걸쳐 열리는 송구영신 예배를 기점으로 ‘새찬양교회’로 역사의 새 장을 연다. 예배장소는 사이프러스로 정해졌고 위티어 예배당은 세를 놓아 재정난을 덜 계획이다.
모두가 성공하기를 바라지만, 앞서 언급한 교회들의 장래를 예단하기는 어렵다. 시간의 테스트를 통과해야 되기 때문이다.
한인 교계에서는 약 4년 전 비슷한 규모의 교회 둘이 합병, 타운의 대표적인 중형 공동체로 성장한 교회가 무려 7년이 흐른 뒤 다시 둘로 쪼개져 교계를 놀라게 한 일이 있다. 공동담임 중 한 사람이 새 교회를 개척하자 100여 교인들이 따라 나갔다. 그후 통합으로 생겨났던 교회는 젊은이 중심의 교회를 흡수 합병해 교세를 회복했으나 교인들의 가슴에는 상처가 남았다. 작년 가을 ‘중형교회 운동’이라는 거창한 기치 아래 두 작은 교회가 이룩했던 연합 역시 사전 약속이 지켜지지 않으면서 불과 몇 달만에 없던 일이 됐다.
교회합병에는 크게 ‘존속 합병’ ‘재생 합병’ ‘흡수 합병’ 등 모델이 있다. 미 복음주의루터교의 자료에 따르면 과거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는 존속 합병은 실패 확률이 가장 높고, 양쪽 다 예전의 모습을 없애고 새롭게 태어나는 재생 합병은 교회 문을 닫지는 않지만 퇴보하는 경우가 많다. 건강한 교회가 자신의 시스템을 유지한 채 연약한 교회를 입양하는 형식의 흡수 합병의 경우, 대부분 성장하고 소수만 현상유지에 그치는 것으로 조사됐다.
불황의 무서운 파괴력을 피해 가기가 쉽지 않은 시대다. 1,350여개로 추산되는 남가주 한인교회들 중 많은 곳이 깊은 고뇌의 밤을 보내고 있다. 이런 환경에서 통합을 모색하는 공동체는 앞으로 계속 늘어날 것이다.
하지만 절대 섣불리 결정해서는 안 될 문제다. 통합이 ‘백년가약’이 되도록
충분한 연구와 단단한 준비가 선행되어야 한다.
공동목회라는 멋진 이름의 체제는 자칫 교인들이 ‘마음의 줄서기’를 하도록 만드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겉으로는 두 목사를 리더로 인정하지만 속으로는 ‘나의 담임은 이분’이라고 생각하게 된다는 말이다. 더욱이 예수는 “내 양을 먹이라”고 명령했음에도 불구하고 ‘내 교회’ 의식으로 충만한 한인 목회자들 아닌가. 반면 성공 가능성이 높다는 흡수 합병은 한 쪽이 기득권, 건물, 정체성 등을 포기해야 하는 ‘십자가의 길’이다. 하나 같이 2인자 자리를 거부하고 ‘사공’ 되기 원하는 한인들에게는 더욱 어렵다.
바람이 분다. ‘바람이 분다. 그래도 살아야 겠다’는 어느 시 구절처럼 차가운 바람이 분다. 마음까지 시리게 하는 바람은 인간의 힘으로 어찌 할 수 없지만 그것에 대처하는 바람직한 자세는 기도 중에 잘 결정할 수 있다. 만 갈래 바람 속에서 통합을 생각하는 교회가 있다면, 지혜로운 판단을 내려 훗날 성숙한 믿음을 세상에 보이게 되기를 바란다.
김장섭 종교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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