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에 있었던 버지니아주의 훼어팩스 카운티 교육위원 선거에서 큰 쟁점으로 부각된 것 중에 하나가 ‘소통의 문제’였다. 12명의 현역 교육위원 중 6명이 은퇴를 결심하고 6명만 재선에 도전했는데, 현역 후보자들은 도전자들로부터 선거기간 내내 현 교육위원들이 주민들의 의견수렴을 소홀히 하거나 아예 의견을 무시한 채 정책결정을 한다는 공격을 받았다.
지난 몇 년간 훼어팩스 카운티에서는 몇몇 특정 교육 사안별로 시민단체가 형성되어 왔다. 그 중 대표적인 것으로 오래된 성적평가제도의 개편을 주장하며 조직된 ‘훼어그레이드 (Fairgrade)’와 학칙위반 학생 처벌제도의 개편을 주장하는 ‘제로탈러런스개혁(Zero Tolerance Reform)’이라는 학부모 단체가 있다. 두 단체들은 이번 선거과정에서 단순한 의제설정이나 주장관철 차원을 넘어 아예 선거 자체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기에 이르렀다.
훼어그레이드는 이 단체의 설립자 둘이 선거에 직접 후보로 출마했다. 그리고 그 중 한 명은 실제로 당선되었다. 제로탈러런스개혁은 교육위원 후보자들 모두에게 설문지를 보내어 답을 받아 그 단체가 운영하는 웹사이트에 올렸다. 또한, 후보자들을 모두 인터뷰해 이 단체가 지지할 후보들을 선정해 발표했다.
나는 비록 워싱턴 포스트와 훼어팩스 교육협회 등 언론과 유력단체의 공식지지를 받았지만 이 단체의 지지만은 끝내 얻어 내지 못했다. 그러나 그것은 충분히 예견된 일이기도 했다. 총 7명의 광역구 후보자들 중 유일한 현역이었던 내가 평소 기존 교육위원회의 여러 가지 결정사항에 못마땅해 했던 이 단체로부터 지지를 얻어낸다는 것은 처음부터 무리였을 것이다. 이 단체가 지지하기로 결정한 후보자들은 충분히 예견된 대로였고 사실 설문지 조사나 인터뷰 과정은 단지 요식행위에 불과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기존의 교육위원회가 주민들과 제대로 소통하지 않았다는 일부 시민단체들의 일방적인 주장에는 나름대로 불합리한 점이 많이 있었다. 결과적으로 현직 교육위원들이 자신들이 주장하는 바를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점이 문제였는데, 사실 이것은 ‘소통의 문제’가 아니고 단지 사안에 대한 ‘정책적 판단의 차이’일 뿐이다.
교육감이나 교육위원회가 이 단체들에게 의견을 제시할 기회를 제공하지 않았다거나, 주민들의 의견을 고려하지 않은 채 일방적인 결정을 내린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았다는 사실 자체를 마치 기존의 교육위원회가 주민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소통하지 않으려 했다는 식으로 매도하는 것은 합리적인 자세가 아니다. 이러한 행태를 접하면서 느낀 것은 교육위원회가 독선적이라고 주장하는 일부 시민단체들의 독선이 오히려 상당하다는 것이다.
시민단체들로부터 정책 결정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의견을 듣는다는 것은 상당히 중요하다. 그러나 교육청에는 교육감을 위시해 그 밑에 교육문제를 수십 년씩 연구해 온 교육 전문가들이 포진해 있다. 그들이 교육위원회에 제출하는 정책안은 그저 아무렇게나 만들어져 나오는 것이 아니다. 물론 그들의 건의안이 항상 옳은 것도 아니고, 때에 따라 적절성이 결여되는 적도 있다.
그렇지만 일부 시민단체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이러한 정책들이 주민들의 의사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제시되는 것은 아니다. 교육청 내부의 복잡한 입안과정을 거쳐 제시되는 정책들은 다시 일반 주민들과 시민단체 모두에게 공개적인 의사표현의 기회를 제공하고, 주민의 대표로 선출된 교육위원들의 철저한 견제와 감시 아래 다각적인 최종 검토를 마친다.
대부분 일반 학부모들로 구성된 시민단체 대표자들 자신이 교육 전문가인 것처럼 행세를 하기 시작할 때 위험해 질 수 있다. 사실 그러한 모습이 이번 교육위원 선거과정 중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그러나 유권자들의 선택은 달랐다. 이러한 시민단체들이 적극 지지한 후보들이 대부분 선거에서 참패하는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소통’, 참 소중한 단어다. 선출직 공직자에게는 더욱 그러하다. 선출직에 있는 자가 그들을 선출한 주민들과 터놓고 얘기하는 것만큼 더 중요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주민들과의 소통이 일부 시민단체들과 그 리더들만의 전유물일 순 없다.
진정한 소통이란 자신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관철시키는 것이 아니라 함께 머리를 맞대고 대화하며 모두를 위한 최선을 찾아가는 과정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변호사
훼어팩스 카운티
교육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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