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수감사절의 주제는 역시 ‘감사’다. 미국은 감사절 뒤에 성탄절이 이어져 감사의 의미와 양이 자연스럽게 확충되는 곳이기도 하다. 매년 치르는 연례행사인 것 같지만, 그래도 이 절기에는 감사의 참 의미가 무엇인가를 되새겨봄이 필요하다.
그래서 한 국어사전을 뒤적거려보았다. 감사의 사전적 의미를 알아보기 위해서다. 풍부한 의미를 기대하며 찾아본 결과 의외로 짧은 한 마디만 적혀 있었다. ‘고마움’이라고. 이걸론 좀 부족하다 싶어 거기에 토를 달고 싶었다. ‘감사’에서 ‘감’ 자가 한문으로는 ‘느끼다(感)’이기 때문에 이건 어떤지. “고마움을 느낌.”
하지만 분명한 건, 고마움이란, 또 고마움을 느낀다는 게 혼자서 되는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고마움이란 하나의 ‘교제’의 현상이기 때문이다. 내게 어떤 상대가 존재하고, 그 상대와의 교제 속에 이뤄지는 행위가 곧 고마움이란 뜻이다. 그리고 그 상대와 나 사이에는 그런 고마움을 느낄 만한 ‘좋은’ 거래행위가 이미 오갔다. 심리적인 거든 외부적인 거든 말이다. 어쨌든 나 혼자만 존재할 때는 고마움이란 절대로 없다.
이는 이런 논리로도 가능하다. 사람은 자기가 한 것에 대해서는 고마움이 없는 편이다. 예를 들어, 내 아이가 잘나고 공부 잘하는 게 내 유전자를 이어받은 덕이고 부모 된 나의 똑부러진 교육열 덕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이로 인한 고마움을 느끼지 못한다. 반면 내 아이가 모난 길 가지 않고 부모 생각, 주변 생각하며 착하게 사는 게 내 힘 영역 밖인 다른 어떤 데서 비롯된 거라고 생각하면 고마움을 느낀다. 얘가 신앙을 가져서든지, 좋은 친구나 선배를 만나서든지, 아니면 좋은 책을 통한 인생의 멘토를 만났기 때문이든지, 이런 게 다 고마움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아무리 헬리콥터 맘(mon)이어도 거기까지 붕붕거리며 갈 수 없는 데가 있는 법이니까. 이처럼 사람은 자기가 하면 고마운 줄 모르고, 누군가의 협력을 시인하면 고마움을 느낀다.
그래서 난 추수감사절이 참 좋다. 그토록 자기중심의 독기를 가지고 사는 자여도 그래도 이때만큼은 나 아닌 ‘외부’로 인해 본능적으로 고마움을 느끼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래선지 이 시즌에 가장 안타까운 사람은 누군가에게 고마움을 느끼긴 해야겠는데, 또 고마움을 표하긴 해야겠는데 그 상대를 잘 못 찾고 있는 사람이다.
가장 썰렁한 장면은 이런 거다. 추수감사절 날 가족끼리 모였다. 식탁에 둘러앉았다. 습관처럼 곧바로 숟가락 포크 들고 입에 음식을 공수하기에는 적어도 이 날만큼은 좀 그렇다. 그래서 감사를 표하고 싶다. 기독교에서는 ‘감사기도’라는 게 있다던데 우리도 한번 해볼까? 근데 어디다 대놓고 하지? 그간 열심히 내 중심으로만 살아온 내 자신한테? 그건 아닌 것 같아 마지막으로 하는 게, 밋밋하게 “치어” 한 번 외치자며 술잔을 높이 쳐드는 것. 어떤가? 정말 썰렁하다!
어떤 분이 이런 말을 했다. “감사란 받은 것을 받았다고 표현하는 것”이란다. 단순하면서도 명쾌한 해석이다. 안 받았으면 굳이 그럴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미 받았다. 이미 받았는데도 안 받은 것처럼 태연하면 그 자는 배은망덕의 인물이다. 그런데 받은 것을 받았다고 표현하는 게 감사라면, 마땅히 그렇다고 표현하는 게 사람으로서의 정상적인 태도다.
그렇다면 생각해보라. 내가 받은 게 다 감각적으로 확연하게 드러나는 것들인가? 마치 선물 주고받는 것처럼 만질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그런 것인가? 아니다. 보이지 않아도, 느껴지지 않아도, 정말로 받은 게 너무 많다. 햇빛, 공기, 물, 들판의 수목, 그리고 무엇보다도 만남, 다들 내가 만들어낸 것들이 아닌, 누군가가 줘서 받은 것들이다. 자식은 특별히 더 그렇다. 우리 부부가 동침해서 우리가 만든 존재들이 우리 자식들인가? 그렇다면 현미경으로 봐야만 보이는 생물학적 물체가 모양과 성격까지도 닮게 만드는 그 신비는 어떻게 설명될까?
이 세상엔 지금의 나를 위한 수많은 협력자들이 있어 왔음을 기억하자. 창조주인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해, 그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자녀들, 교회 교우들, 친구들, 일가친척들, 그리고 지구촌의 수많은 인종들, 다들 나라는 존재를 위해 지금도 열심히 뛰어주고 있는 협력자들이다. 이 감사의 절기에 이런 식의 감사의 이해가 있기를 바란다. 고마움을 느낌!
(새크라멘토 수도장로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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