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최대의 민간 신용상담기관인 ‘전국신용상담재단’(NFCC)이 최근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 3명중 2명(64%)이 비상시에 대비한 현금 1,000달러를 갖고 있지 않다는 충격적인 내용이다. 반면 미국인 36%만이 비상 상황에 이같은 자금을 동원할 수 있다고 답했다.
결국 체킹이나 저축계좌에 1,000달러 현금도 없는 이들 64%의 미국인은 비상 상황이 발생할 때 신용카드로 미리 자금을 당겨쓰거나 친구나 가족에게 돈을 빌리고, 아니면 물건을 전당포에 잡히는 방법으로 현금을 마련해야 할 형편이다. 게일 커닝엄 NFCC 대변인은 “심히 걱정스러운 수준”이라면서 “봉급과 함께 미래의 돈을 당겨쓰는 일반 소비자들에게 비상 상황은 곧 재정적 곤경을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그렇다고 연방정부의 사정은 나은가, 결코 그렇지 않다. 연방 재무부는 2011회계연도(2010년 10월~2011년 9월)의 첫 11개월간 누적 적자액이 1조2,340억달러로 집계됐다고 최근 밝혔다. 의회예산국(CBO)은 이런 추세라면 2011회계연도의 총 재정적자가 1조2,80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면서 2009회계연도의 1조4,100억달러, 2010회계연도의 1조2,930억달러에 이어 3년 연속 적자액이 1조달러를 돌파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국제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지난 8월5일 미국의 국가신용 등급을 사상 처음으로 강등한 가장 큰 이유는 미국의 과도한 재정적자와 함께 이를 해결하기위한 정치권의 의지부족이었다. 실제로 연방정부의 지출 중 가장 빠르게 늘고 있는 항목은 국채에 대한 이자비용인데 2011회계연도 11개월간 국채이자로만 무려 2,330억달러가 지급돼 전년 동기 대비 15%나 늘었다.
결국 작게는 개인 가정이나 크게는 연방정부까지 빚이 늘면서 이자가 가파르게 증가하고 이로 인해 다시 빚의 전체 규모가 커지는 ‘빚의 악순환’ 현상이 되풀이되는 형국이다. 경제학자들은 미국 경제가 다시 활력을 되찾으려면 정부는 물론이고 미국인들도 이 같은 ‘빚의 악순환’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일본이 대표적인 ‘저축성 경제’ 국가라면 미국은 대표적인 ‘소비성 경제’ 국가로 분류된다. 소비지출은 미국 경제의 70%를 차지하고 있을 만큼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 소비자들이 지갑을 다시 열어야만 미국 경제의 회복을 기대할 수 있다. 경제학자들은 특히 미국 소비의 40%를 차지하고 있는 중산층이 급증하는 가계부채로 적극적인 소비가 이뤄지기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안정적인 경제 성장률을 유지할 확률이 그만큼 낮아졌다고 지적한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현 제로금리를 2013년 중반까지 최소 2년 반 유지하겠다고 밝힌 것은 미국 경제가 최소한 2년 반 동안은 어려운 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선포한 것과 다를 것 없다. 미국 실업률이 9%에 달하고 있는 등 많은 미국인들의 수입이 급감하면서 소비 시장에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이 같은 현상에 대해 전문가들은 스포츠 경기에서 선수가 파울아웃으로 퇴장하는 경우에 빗대 ‘파울 아웃 소비자’로 지칭하기도 한다.
아무리 강팀이라도 주전선수가 연이어 파울 퇴장을 당하면 경기에서 이길 수 없는 것처럼 미국 경제도 이같이 파울 아웃 소비자가 줄어야 다시 활력을 되찾을 수 있다. 그러자면 소비자들도 새로운 미국 경기 환경에 맞춰 적정한 수준의 건전한 수입과 지출의 밸런스를 찾아야 할 필요가 있다.
최근 기자가 만난 한 한인 올드타이머 사업가의 지적이 인상적이다. 그는 “많은 한인들이 언제 미국 경기가 예전처럼 정상으로 돌아올지 궁금해 하지만 사실은 몇 년 전 호황기 때가 ‘비정상’이고 지금이 ‘정상’적인 미국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90년대 후반부터 2008년까지 경기가 좋았을 때는 우리 모두가 조금씩은 이성을 잃었던 것 같다”며 “단기적인 일확천금을 노리는 것 보다는 자신의 경제상황에 맞는 적정한 수준의 건전한 지출과 중장기적
인 안목의 투자 마인드가 요구되는 지금이 ‘정상적인’ 미국”이라고 말했다.
사람은 어려울 때 진면목이 나온다고 했다. 현명한 소비자는 불확실한 미래의 경제 환상에 집착하지 않고 현재의 경제 상황을 현실로 냉정히 받아들이고 이에 빨리 적응할 줄 안다.
조환동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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