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월은 감이 익는 계절이다. 어릴적 시골에서 산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시골집 마당에 한두그루 감나무가 있어서 가을이 무르익는 계절이 되면 감나무에 주홍빛 감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광경들을 기억할 것이다.이 기억들은 우리에게 고향과 고향집에 대한 그리움과 이미 저세상으로 가신 부모님에 대한 추억으로 우리 가슴을 찡하게 만든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에서 아침마다 산책을 하는 도중 얼마전 감나무 한그루를 발견했는데 가지가 휘어지도록 감들이
많이 열려 있는 것을 발견하고 나도 모르게 아!하는 탄성이 절로 나왔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 푸르던 감들은 점점 주홍빛으로 변해 갔고 약 열흘전에 얕은 가지에 있는 감 두어개를 따와서 바구니에 넣어 두었더니 어느새 말랑말랑한 연시로 변했다.한번 맛을 보았더니 그 연시의 맛은 달고 훌륭했고 옛날 고향집에서 먹던 연시 맛과 거의 비슷했다.
어느덧 미국에서 산지도 사십년이 넘었는데,이제는 고국보다 이국에서 산 세월이 더 길고 미국밥을 한국밥 보다 더 많이 먹었는데도 역시 입맛은 변하지 않고 이 한개의 감 맛에 감탄하고 거기 얽힌 추억에 목말라 하는 내 자신을 돌아보며
역시 한국인은 아무리 오랜 세월을 이국에서 살았다 해도 하나도 변한게 없다는 것을 발견하고 놀라게 된다.
뿌리는 역시 깊고 질기며 입맛과 취향도 한번 길들인 것을 바뀐다는것도 힘든다는 사실을 재확인 하는 계기가 되었다.
내가 어릴때 우리집은 과수원을 가지고 있어서 배나무 사과나무와 함께 감나무도 수백그루가 있었기 때문에 해마다 가을이 깊어지면 나는 사촌들과 함께 감나무에 올라가서 단감을 따고, 연시는 주홍색으로 색깔이 바뀌면 단단한 것들을 따다가 시렁에 올려 놓고 그것들이 말랑말랑한 연시로 바뀌어 질때 까지 기다리곤 했다.감들을 따는것도 재미가 있었지만 단단한 감들이 시간이 지나며 말랑해지고 달콤하게 변하는 것을 기다리는 재미 또한 각별한 것이었다.
나는 사남매의 막내여서 자랄때 우리 친 언니들과는 별로 재미있게 지낸 기억이 없지만 나이가 비슷했던 사촌들과는 각별하게 지내서 그들과의 추억이 더 많은게 사실이다.
나와 동갑내기였던 현숙이는 십대에 벌써 저 세상으로 가버려서 나는 오랫동안 그애에 대한 꿈을 꾸고 그애를 잊지못해 힘들었던 시절도 있었다.결국 그애는 한줌 재가 되어 우리들이 다니던 과수원의 한 한적한 길가에 묻쳤다.나는 십팔세의 소녀 시절 매일처럼 들꽃을 한 아름 꺾어다 그애의 작은 무덤앞에 놓아주곤 했다.그리고 또 그애가 좋아하던 아!목동아!를 목청껏 부르며 그애의 대한 그리움을 달래곤 했다.
그애의 죽음은 나를 활달한 성격에서 생각하는 아이로 만들어 주었다.오십년이 훨씬 더 지난 지금도 그애의 죽음은 의문으로 남아서 가끔 나를 혼란하게 만들곤 한다.더구나 가을이 오고 시월이 되어서 감들이 익어가는 계절이 오면 해마다 나는 내 죽은 사촌 현숙이를 생각하고 그애와 함께 즐겁게 감을 따던 시절을 회상하곤 한다.파아란 하늘과 주홍빛의 감들이 눈부시던 날 우리들은 아무 걱정도 근심도 없이 마냥 즐겁고 행복했다.투명한 가을날 주변은 우리들의 행복한 웃음으로 가득차고 미래는 가슴 벅차던 희망으로 설레었다.아마 이렇듯 순수하고 깨끗했던 마음을 가졌던 때는 내 생애 그때가 유일한 때가 아니었나싶다.
한 일주일전 나와 내 친구와 그녀의 남편 봅은 감 서리에 나서기로 했다.마침 봅이 과일을 따는 긴 작대기가 있어서 작은 사다리를 가지고 그가 브라운 백에 거의 가득찰 만큼 감들을 땄다.우리들은 오랫만에 감을 따는 재미를 만끽했다.봅도 남부인 미시시피 출신에다 농촌에서 자라서 연시감을 몹씨 좋아했다.내가 알기로 미국인들 거의가 감을 좋아하지 않는데 그는 드믈게 예외다.
오늘 아침 감나무가 있는 그 길을 지나가면서 올려다 보았더니 이제는 나무 꼭대기 가지에만 감 몇개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게 보였다.문득 오 헨리의 마지막 입새가 생각났다.이제 바람이 불고 날이 추워지면 저 몇개의 감들도 땅으로 떨어질 것이다.조금 쓸쓸하지만 나는 또 내년을 기다리고 새로운 희망을 기다리듯 다시 열리는 주홍빛 감들을 기다릴 것이다.
감 한개 따고 내 꿈을 따고
또 감 한개 따고 내 꿈을 담고
감 한개 먹고 추억을 먹고
감 한개에 옛날을 그린다.
감들이 익던 고향집
엄마가 기다리던 고향집
그 고향집을 향해 나는 밤마다 꿈속에서 어린애가 되어 달려간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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