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말부터 미 전국은 땡스기빙을 향한 카운트다운에 돌입한다. 이미 각 가정은 풍요로운 식탁 준비로 술렁거리고 상가는 연말대목을 위한 다양한 판촉 작전으로 북적대고 있다. 워싱턴 정가의 이번 주도 상당히 분주하다. 수퍼위원회의 카운트다운이 시작된 것이다.
땡스기빙 전날인 23일이 수퍼위의 성공과 실패를 판가름할 데드라인이다. 민주·공화 양당이 합의해 향후 10년간 최소 1조2천억 달러 규모의 연방적자 감축안을 이날까지 마련해내야 한다. 표면적으로는 대통령으로부터 양당 지도부가 한 목소리로 “실패는 옵션일 수 없다”며 성공을 강조하지만 백악관과 의회 내부의 기류는 전혀 맑음이 아니다. 실패를 각오한 비관론이 역력하다.
‘수퍼위원회’는 지난여름 국가 디폴트 위기까지 몰고 갔던 연방정부 부채상한 증액협상 결과 통과된 합의안에 의해 만들어졌다. 양당에서 6명씩 12명의 연방 상하의원으로 구성된 적자해결 특별위원회다. 지난 석 달 얼마나 열심히 일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제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만은 확실하다.
일정부터 타이트하다 : 11월23일까지 적자해결의 묘책이 담긴 합의안을 수퍼위에서 통과시켜야 한다. 12명 중 7명만 찬성하면 되지만 6명씩 팽팽히 맞서고 있으니 그게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통과되면 12월2일까지 백악관과 의회에 합의안을 제출해 12월23일 전에 상하 양원 본회의에서 각각 표결에 붙여져야 한다. 하원은 물론 상원에서도 과반수만 찬성하면 통과되지만 가결 전망은 상당히 어둡다. 만약 여기서도 통과되면 1월15일까지 대통령의 서명을 받아야 한다.
수퍼위를 못 믿는 것은 워싱턴 정가만이 아니다. 어제 발표된 CNN 여론조사에 의하면 “수퍼위가 데드라인을 성공적으로 지킬까”라는 질문에 무려 78%가 “못 지킬 것”이라고 단언했다. “누구 탓인가”에는 42%가 공화당을, 32%가 민주당을 지목했다.
성공의 여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사실 지난 몇 년 사이 처음으로 희망의 빛줄기가 보이기 시작했다. 공화당이 완강하게 고수해온 ‘증세 결사반대’에서 한발 물러선 것이다.
연방예산 통제 노력의 가장 큰 장애는 공화당의 증세 반대다. 약간이라도 세금인상이 포함되면 어떤 대규모 지출삭감 패키지도 거부해왔다. 모든 세금인상안에 반대하겠다는 서약서에 서명한 공화당 연방의원이 280명에 이른다. 이 정도면 공화당의 증세반대는 ‘정책’이라기보다는 ‘집착’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지난 주 수퍼위 소속 공화당의 패트릭 투미 상원의원이 ‘새로운 세금’이 포함된 적자감축안을 제안한 것이다. 민주당 측이 즉각 거부했을 정도로 채택되기 힘든 플랜이긴 하다. 우선 1조2천억 달러의 적자를 감축하면서 세금인상은 불과 3천억 달러로 증세규모가 너무 적다. 또 절세혜택을 폐지해 세수를 늘리는 대신 소득세율을 전면 낮추는 조세개혁을 제안했는데 그럴 경우 내년 연말로 끝나는 부시의 감세안이 영구화될 뿐 아니라 부유층의 소득세율은 현행 35%에서 28%로 낮아진다. 장기적으로 보면 적자감축이 아니라 부유층을 위한 또 하나의 감세안이 될 수도 있고 공화당의 극단적 이념주의 이미지를 희석시키기 위한 홍보용 작전일 수도 있다.
USA투데이는 그러나 공화당의 증세에 대한 태도 변화를 ‘말하는 개’에 비유했다 : “개가 말한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것이지 무슨 말을 하느냐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민주당의 감축안은 2조 달러 규모다. 메디케어까지 포함 지출삭감 폭을 대폭 키웠으나 삭감과 증세를 각각 1조 달러씩 공정하게 배분하자는 조건을 내걸었다. 이미 소규모 증세 제안으로도 당 내부에서 강한 반발을 받고 있는 공화당 수퍼위원들로서는 소화하기 힘든 조건이다.
모두가 ‘실패’를 예언하지만 실패의 결과는 예상만으로도 암담하다. 우선 1조2천억 달러를 2013년부터 자동적으로 삭감해야 한다. 절반인 6천억 달러는 국방예산에서 깎아야 하는데 국방장관은 벌써부터 국가안보에 심각한 타격 줄 것이라고 경고하고 나섰다.
수퍼위가 부분 합의도 못한 채 완전 실패로 끝날 경우 미국의 국가신용등급이 다시 하향 조정될 수도 있고 주식시장이 폭락할 수도 있으며 대목을 노리는 연말 경기에 찬물을 끼얹을 수도 있다. 9%라는 사상 최저의 의회 지지도는 바닥을 뚫고 지하실로 추락할 것이고 워싱턴 정가를 바라보는 미국민의 신뢰와 미국을 바라보는 국제사회의 신뢰도 동시에 곤두박질 칠 것이다.
16일 워싱턴에선 이례적인 기자회견이 열렸다. 초당적 연방 상하의원 연합이 각기 당론을 이탈해 보다 큰 규모의 적자감축을 촉구하고 나선 것이다. 공화의원들은 증세반대 서약을 파기하고 민주의원들은 사회복지 지출 삭감을 지지하면서 ‘역사적 과제’ 실현에 동참하자고 역설했다.
지난해 적자해소위원회 공동위원장을 역임한 전 공화당 상원의원 앨런 심슨도 “미국에 지금 필요한 것은 당익이나 특수이해집단의 이익이 아닌 전체 국익을 우선시하는 용기와 의지를 가진 정치가”라면서 “수퍼위원들, 연방의원들, 그리고 대통령이 그런 리더가 되어 주어야 한다”고 호소했다.
수퍼위원회의 데드라인은 이제 딱 6일 남았다. 실패 아닌 성공을 향한 카운트다운으로 바꾸기에 아직 늦지 않은 시간이다. 그리고 이 계절엔 때로 기적이 일어나기도 하니까.
<박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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