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는 미국인들만의 돈이 아니다. 전 세계 어느 나라 사람에게나 통하는 지구촌 화폐이다. 미국이라는 말만 들어도 앨러지 반응을 일으키며 “미 제국주의의 각을 뜨겠다”고 벼르는 북한에서조차 달러는 너무나 ‘귀하신 몸’이다. 미주한인들 가운데 주가변동보다 달러환율 변동에 더 촉각을 곤두세우는 사람이 많아진 것도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달러는 1785년 7월6일 미국의 공식화폐로 지정됐다. 200년 후인 1995년 약 3,800억 달러가량이 유통(67%는 미국 밖에서)중인 것으로 집계됐고, 다시 10년 후인 2005년엔 그 두 배인 7,600억 달러로 훌쩍 늘어났다. 캐나다, 호주, 홍콩,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도 달러를 화폐단위로 쓰지만 그 가치는 원조인 미국달러에 족탈불급이다.
달러에 역대 대통령의 초상이 들어 있는 건 누구나 다 안다. 조지 워싱턴(1달러), 토마스 제퍼슨(2달러), 에이브러험 링컨(5달러), 알렉산더 해밀턴(10달러), 앤드루 잭슨(20달러), 율리시스 그랜트(50달러), 벤자민 프랭클린(100달러)이 그 주인공이다. 동전에 초상이 담겨진 대통령들도 있다. 링컨(1센트), 제퍼슨(5센트), 프랭클린 루즈벨트(10센트), 워싱턴(25센트), 존 F. 케네디(50센트) 등이다.
그러나 외국 화폐들이 흉내 내지 못하는, 달러만 갖고 있는 특징을 간과하는 사람이 많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In God We Trust)”라는 표어이다. ‘만악(萬惡)의 근원’인 돈에, 더구나 하나님보다 더 무소불위의 위력을 지녔다는 자본주의 왕국 미국의 돈에 이런 표어가 있다는 건 생뚱맞다. 관공서에서 십계명 비문이 철거되고, 학교에서 기도가 금지되고, 크리스마스카드가 ‘계절 인사’(Seasonal Greetings)카드로 둔갑했는데도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접하는 돈에 하나님이라는 단어가 150년 이상 존속하고 있으니 신기하다.
‘In God We Trust’는 1956년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미국의 공식 표어(모토)로 채택한 후 1957년부터 10년간 각종 지폐에 인쇄됐다. 하지만 이 모토가 처음 2센트짜리 동전에 삽입된 것은 그보다 거의 100년 전인 1864년 링컨 행정부 때였다. 당시 재무장관 새먼 체이스는 남북전쟁으로 나라가 피폐해지자 “하나님의 힘 없이 강한 나라 없고, 하나님의 가호 없이 안전한 나라 없다”며 이 모토를 동전에 삽입하기 시작했다.
이 모토의 실제 작가는 체이스 보다 반세기 전 사람인 프란시스 스캇 키이다. 아마추어 시인이었던 키는 1814년 영국해군의 함포공격 속에 힘차게 휘날리는 독립군 깃발을 칭송하며 ‘별이 반짝이는 깃발’(Star-Spangled Banner)이라는 시를 썼다. 그 마지막 구절이 “우리의 표어는 이것이니, 곧 우리의 믿음은 하나님께 있도다(And this be our motto: In God is our trust)”로 돼 있다. 이 애국시는 1931년 미국 국가로 채택됐다.
물론 모든 달러 지폐와 동전에서 이 모토를 삭제하려는 움직임은 무신론자들을 중심으로 여러 차례 있었다. 이들은 정부가 발행하는 화폐에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는 문구를 넣는 것은 수정헌법에 규정된 정교분리의 원칙에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1970년 첫 소송이 제기된 후 1984년, 2005년, 2009년 등에도 되풀이됐지만 그때마다 법원은 이 모토가 정부의 특정종교 옹립과는 무관한 애국적 또는 의식적 용도라며 소송을 기각했다.
지난 1일 연방하원은 이 모토가 미국의 공식 표어임을 재확인하는 결의안을 396대 9의 압도적 표결로 통과시키고 전국 각급학교와 관공서에 이 모토를 공시하도록 권장키로 했다. 연방상원은 이미 2006년 비슷한 내용의 결의안을 의결한 바 있다.
대부분의 한인들은 이 모토가 달러에 들어 있든, 없든 관심이 없다. 많이 쓸 수만 있으면 좋다. 하지만 기왕 돈을 쓸 바에는 ‘하나님을 믿는’ 방향으로 쓰는 것이 좋다. 11월은 감사의 달일 뿐 아니라 연말연시 불우이웃 돕기 캠페인이 시작되는 달이기도 하다.
윤여춘 / 시애틀 지사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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