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만에 있는 오다이바에서 바라보이는 도쿄의 야경은 절경이다. 작은 ‘자유의 여신상’이 세워져 있는 이곳은 미국과 인연이 깊은 곳이다. 1853년 7월 도쿄 앞바다에 검은 배 4척이 나타났다. 페리 제독이 이끄는 소위 ‘구로후네’(흑선이라는 뜻) 선단이었다. 페리는 그 때까지 외국에 대해 굳게 문을 닫고 있던 일본에게 문호를 열 것을 요구하면서 이를 거부할 경우 함포 사격으로 에도(지금의 도쿄)를 박살내겠다고 협박했다.
쇼군은 오다이바에 포대를 설치하고 맞서 보려 했지만 결국 미 군함과 대포의 위세에 눌려 페리의 요구에 굴복하고 만다. 백인 오랑캐에 무릎을 꿇은 쇼군은 권위를 일시에 잃고 1868년 개혁파의 정변으로 물러난다. 이것이 명치유신이다. 천황의 개혁은 아시아에서는 유일하게 일본을 근대화에 성공한 국가로 만든다. 불행하게도 이렇게 해서 얻은 힘을 이웃나라를 침략하는데 쓰고 말았지만 일본이 그 때 끝내 개방과 개혁을 거부했더라면 서방 식민지로 전락하는 것 외에 다른 길은 없었을 것이다.
일본의 두 번째 개방과 개혁도 강제로 이뤄졌다. 태평양 전쟁에서 이긴 맥아더는 일본 점령 후 ‘평화 헌법’을 제정, 군사적으로 외국을 침공하는 길을 봉쇄하고 군부와 재벌을 해체했다. 일본의 전후 세대는 경제 성장에만 일로매진, 최근까지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을 만들었으며 한때 ‘Japan Inc.’는 전세계를 집어삼킬 태세로 맹렬하게 팽창했다.
그 일본이 지난 주 ‘제3의 개국’을 선언했다. 노다 총리는 미국을 포함 10개 태평양 연안국과 무역 장벽을 없애는 ‘환태평양 파트너십’(TPP) 회담을 개시하겠다고 밝혔다. 이것이 성사되면 세계 경제의 35%를 차지하는 최대의 자유 무역 지대가 탄생한다.
일본은 지난 20년간 길고 긴 불황에 시달려왔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자국 산업 보호를 이유로 한 경제의 폐쇄성에 있다. 쌀의 경우 일본은 778%의 수입 관세를 부과하고 있어 외국 쌀이 국내에 들어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일본 농촌도 젊은이들은 모두 떠나고 60대 노인이 작은 밭 뙤기를 일구며 근근이 살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농법으로 수만 에이커를 트랙터로 경작하는 미국이나 캐나다와 경쟁이 될 수 없다. 그럼에도 농촌을 지역구로 갖고 있는 국회의원들은 농민 보호를 이유로 개방을 한사코 거부, 그 결과 일본 근로자들은 국제 시세의 몇 배 되는 돈을 주고 쌀 같은 생필품을 구입해야 한다.
노다 총리가 야당은 물론 여당 국회의원 상당수의 결사반대에도 불구, TPP 협상 참여를 결정한 것은 지금 상태로는 무너져 가는 일본을 살릴 수 없다는 판단에서일 것이다. 농업을 비롯, 외국과의 경쟁에서 취약한 업체들의 반대로 이 협상이 타결될 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만에 하나 일본과 미국이 관세 없는 자유무역을 하고 한국이 야당의 무력 저지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에 실패할 경우 한국 기업과 한국 경제는 치명타를 맞게 될 것이다.
지난 수년 간 자동차, 스마트 폰을 비롯한 한국 제품이 미국에서 일본을 제치고 선두에 올라선 것은 물건을 잘 만든 탓도 있지만 엔고로 일본 제품이 가격 경쟁력을 잃었기 때문이다. 관세 부담을 안은 한국 제품이 무관세 일본 물건과 경쟁에서 밀려나게 되면 노동자들이 자자손손 일자리를 물려주고 싶어 하는 현대차나 세계 제1의 전자제품을 만드는 삼성전자 모두 도요타와 소니를 하늘처럼 우러러보던 옛날 그 시절로 돌아가지 말란 법이 없다.
그럼에도 우물 안의 개구리 같은 일부 야당 의원들은 ‘민주’와 ‘진보’를 개굴거리며 FTA 반대 결사항전을 외치고 있다. 이들이 보기에는 다수결을 부정하는 것이 ‘민주’고 역사의 시계바늘을 뒤로 돌리는 것이 ‘진보’인 모양이다.
한 뼘만한 독도를 지킬 줄은 알면서 세계 최대의 경제 영토인 미국 시장을 일본에 갖다 바치는 데는 전혀 개념이 없는 이들 중 손학규, 유시민, 문재인 등은 원래 FTA 지지자들이었다. 한 때 반미를 외치기도 했던 노무현은 그래도 당리보다 국가의 이익이 크다는 것은 알았다. 노무현 추종자를 자처하며 대권을 노리는 이들은 그만 훨씬 못한 인간들이다. 지금이라도 즉각 친일 매국 행위를 중단하라.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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