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엔 희한한 결혼식을 구경했다. 내 아내 쪽 조카와 그의 약혼녀가 고르고 고른 결혼 장소는 멕시코 캔쿤 부근 툴룸(Tulum)의 해변가 백사장이었다. 풀레야 아줄(푸른 해변)이라는 낭만적 이름의 호텔은 이름만 호텔이지 방 하나짜리 오두막(Cabana)이 17개뿐이고 방에는 샤워장을 빼놓고는 TV, 라디오, 시계 등 문명 시설이 전무한 복고풍의 시설이었다. 거의 일직선의 해안선이 3, 4 마일 정도 되는 고운 모래 백사장 바로 부근에 위치하고 있어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신발을 신을 필요가 없이 맨발로 지낼 수 있었다. 결혼식도 모래사장에 간이 의자들을 갖다 놓고 했기 때문에 신랑 신부와 들러리들만 일본식 조리를 신었을 뿐 70여명이 넘는 대부분의 하객들은 맨발이었다. 생전 처음 맨발의 결혼식을 보게 된 것이다. 캔쿤 비행장에 내려서 택시로는 적어도 1시간, 버스로는 환승을 해야 하기 때문에 3시간 이상 걸리는 툴룸 부근에는 고층 호텔은 하나도 없는 카바나 스타일의 숙소들만 점철되어 있어 조용하고 고적한 느낌을 주는 휴양지였다.
기억에 남을 백사장에서 결혼 축하 파티 끝에 며칠을 더 있을 생각으로 예약했던 부근의 시설은 상대적으로 열악했기에 처제가 옮기기로 한 모든 비용 포함(all inclusive)이라는 바셀로(Barcelo) 호텔로 옮겼더니 상황이 확 다른 것을 발견했다. 우선 경비 초소를 거쳐 투숙객으로 등록하는 절차가 마치 병원에 입원하는 것과 흡사했다. 그곳에서 나오는 날까지 손목에 두르고 있어야 하는 신분 확인 굴레도 마찬가지였다. 아내는 재치 있게 그 호텔이 육지에 있는 크루즈 배와 흡사하다고 표현했다. 음식을 싫도록 먹을 수 있는 것이나 바깥에서의 활동을 하자면 가외로 돈을 내는 것도 비슷했지만 술도 원하면 밤새도록 공짜로 먹을 수 있다는 점이 달랐다.
3층짜리 널찍한 호텔 시설들이 5개 되는 휴양시설은 역시 많은 사람들로 붐벼서 결혼식이 있었던 첫 번 장소와는 크게 달랐다. 해변가의 바다 모래조차 결혼식이 있었던 데는 거의 밀가루처럼 부드러웠던데 비해 맨발로 걷기에는 불편할 정도였다.
그런데 시설 중 하나는 공연장으로 도착하는 날 밤에 가라오케가 있다고 해서 싫다는 아내에게 노래를 해보라고 등을 떠밀다시피 한 것이 화근이 될 줄을 어찌 짐작할 수 있었으랴. 요즘 유행되는 가사로 듣기에도 민망한 음담패설이 섞인 노래들을 악악대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엘비스 프레슬리의 ‘Love me tender’를 열창한 아내가 많은 박수를 받은 것까지는 좋았지만 끝나고 나오는데 아내가 숨이 가빠서 못 걷겠다고 주저앉을 정도였다. 등을 두드리는 등 안마를 해도 별 수가 없어 간신히 쉬엄쉬엄 하면서 우리 방에 도착했을 때는 12시경이었다. 통증이 심해서 아스피린이라도 사다주려고 호텔 로비에 갔을 때는 모든 가게들이 문을 닫은 상태였기에 외부의 약국에 연락을 해서 한 병에 18여 불을 주고 살 수밖에 없었다. 아스피린 효과인지 아내의 통증은 멎었지만 그 다음날 낮에는 식사만 빼고는 아무런 활동도 없이 지냈음에도 불구하고 저녁 먹으러 가기 전부터 등짝의 통증이 다시 심하게 아내를 괴롭혔기에 의사를 불렀다. 진찰한 다음 의사는 우선 심장마비는 아니라고 안심시킨 다음 결혼식 관계 행사 등으로 피곤이 겹친 데다가 온 힘을 다해 노래를 했다는 사실과 아울러 그 지방이 수면처럼 낮은 곳이라서 있는 공기의 압력 때문에 호흡이 힘들어 생긴 증상이지만 집으로 돌아가서는 EKG(심전도) 검사를 꼭 해보라고 권유한다. 의사에게는 128불을 현금으로 지불했다. 호텔의 메이드가 하루에 8시간 일하고 받는 돈이 5불이고 영어를 조금은 할 수 있는 벨보이가 받는 것은 10불 정도니까 역시 교육의 차이로 의사들은 엄청난 수입을 올리는 것이다. 호텔 노무직 수입으로는 자녀들의 고등교육이 어려울 것이기 때문에 빈익빈 부익부의 현상은 심화될 것이라는 답답한 느낌이 든다.
오기 전날 오후에는 돌고래와 수영하고 춤추는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다. 그 장소의 전속 사진사가 찍은 85장의 사진 디스크를 살 수 있는 돈이나 신용 카드도 없었던 터에 우리 옆에서 같이 즐기던 미네소타의 어떤 여자가 119불을 내주면서 자기 주소로 수표를 보내주면 되겠다는 친절을 베풀어서 또 기억에 남을 일이었다. 우리들의 얼굴이 꽤나 믿음직해 보였던 까닭이었을까?
70이 넘은 나이로 돌고래와의 수영이 무리였던지 어깨가 무겁고 여행 후유증이 있는 듯한데다가 아내의 협심증 비슷한 증세가 우려되어 월요일엔 심장 전문의와 약속을 해놓고 있는 상태이다. 상하의 유카탄 반도에서 낙엽이 우수수 떨어지는 만추의 고장으로 돌아온 탓인지 또는 나이 탓에 여행도 어려워진다는 결론 때문인지 서글픈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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