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교직경력 40년의 경력 중에 학급담임을 한 횟수는 몇 번 없었다.
학교를 옮겨 다니면서 초등, 중등학교 교직의 꽃인 담임 시절이 지금도 그립다.
정년퇴직을 했던 고등학교에 전근 온 해는 1980년. 와 보니 3학년 10학급 중 지역 실정을 감안하여 야간이 두 반이 편성되어 있었다. 이 학급은 정규학급이라기보다 배움의 기회를 놓친 청소년반이라면 더 이해가 잘 될 것이다.
오던 해에 그 야간반 3학년 담임을 맡았는데 그 해가 마지막 담임이 될 줄은 몰랐다. 연령층은 고입 적령도 있지만 그 나이를 넘은 학생도 많았고, 낮에 직장에서 돈 벌이를 하다가 오후 5시에 시작되는 야간반 수업을 듣기 위해 단정한 교복으로 바꿔 입고 등교를 하는 대부분 경제적으로 곤란을 겪는 불우한 남녀학생들이었다.
막상 담임을 하고 보니 난감(難堪)했다. 학생 거주지가 대부분 지방이라, 학교 인근에서 자취를 하거나 친척집에 와 있는 학생들로 심지어는 제주도에서 경기도 하남시까지 원정(遠征) 온 학생들도 여러 명이 있었다.
수업료를 마감해야 하는 분기 말에는 애간장이 탄다. 월급을 석 달째 아직 못 받았다는 아이들, 고향에서 송금이 안 된다는 아이들은 그래도 희망은 있어서 기다릴 수 있지만 납부기한을 약속 못하고 눈물만 흘리는 아이들을 볼 때는 내 가슴까지 미어지는 것 같아 차마 말을 더 이을 수가 없었다.
수업료뿐만이 아니었다. 장기 결석에 가정방문을 해 보면 집에도 며칠씩 안 들어 왔다는 아이. 영양실조로 입원하여 나의 마음을 뜯어놓은 일. 폭행사건으로 연루되어 경찰서로 면회를 다니던 일. 그렇지만 나는 그들의 등대 역할을 하기로 결심을 하고, 1차로 내 월급을 반 만 집으로 가져가기로 아내에게 양해를 구했다.
우선 급한 대로 아주 어려운 아이들 수업료부터 해결하고 그들의 집을 방문하여 연탄을 비롯해 생활필수품을 약간씩 조달했다. 조그만 상처부터 치유하려고 갖은 애를 다 썼다.
아이들은 사소한 신변의 일이라도 상담을 요청해 왔다. 이젠 스승과 제자의 입장에서 아버지와 아들딸의 입장으로 서서히 바뀌고 있는 것을 느꼈다. 그 사이에서 마음과 마음의 연결 고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나는 더 이상의 피곤도 낙망도 모르고 무조건 앞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졸업식 날이 다가왔다. 이들에게는 졸업장이 아니라 피와 눈물 그리고 땀으로 얼룩진 승전(勝戰)의 장(狀)이었다.
마지막 종례시간에 교탁에서 일어선 나는 한 사람 한 사람 앞으로 불러내 졸업장을 주며 눈물어린 투쟁에 대한 노고를 진정한 마음으로 치하했다. 나도 마음이 들먹였고, 아이들도 곧 터질 듯 목구멍까지 울음이 기어 올라와 있었다. 아니 어떤 아이는 어깨를 들먹이며 나오는 아이도 있었다.
긴 침묵이 훑고 지나간 1시간 동안 48매의 졸업장은 주인의 손으로 옮겨 들어갔다. 반장은 일어서서 마지막 경례를 하고, 나는 억지로 웃으면서 잘 들 가라고 손을 저으며 그들을 보내고 내 자리에 앉았다.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 소리 없이 흐느끼기 시작했다. 내가 속으로 웅얼거리는 것은 흐느낌이요, 애절한 간구요, 기도였다.
‘하나님 저들을 지켜주시옵소서. 이제 저는 더 저들과 함께 있을 수 없습니다.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지 저들과 늘 함께하심으로 실족치 않게 하시고 방황치 않게 하시고 피곤치 않게 붙들어주시옵소서......’
얼마 후 난 조용한 분위기를 느끼고 아이들이 다 교실을 나갔으리라 생각하고 고개를 가만히 들었다. 그런데 아이들은 한 명도 가지 않고 책상에 머리를 댄 채 어깨를 들먹이며 흐느끼고 있지 않은가. 참으려고 마음을 당차게 먹었던 내 울음이 화산이 폭발되듯 그예 터지고 말았다. 아이들도 따라서 통곡을 하기 시작했다. 교실은 별안간 통곡의 장(場)으로 변해 버렸다.
지금도 이때의 아이들과 가끔 만나는 시간이 있다. 지금은 시집, 장가를 가서 자식들을 몇 명씩 가진 그런 성인으로 변해 있었다. 대부분 자식들을 함께 모임에 데리고 와서 나를 소개하며 ‘그 때 그 선생님’이라고 소개를 한다.
몇 번 안 되는 학급담임 생활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고 보람을 주었던 담임 생활로 내 기억에 오래오래 아주 소중하게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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