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포니아 재정난의 주범으로 지목받아 온 공무원 연금제도에 개혁의 시동이 걸렸다.
제리 브라운 주지사가 마침내 자신의 연금 개혁안을 공개한 것이다. 1)연금비용의 동등한 부담 2)‘하이브리드’ 위험분담 연금 플랜 3)은퇴연령 높이기…에서 12)은퇴자 의료비 감축에 이르기까지 논쟁적 이슈들을 12개항으로 압축한 과감하고 포괄적인 야심작이다.
극심한 재정난 타개를 위해 반드시 넘어야 할 장벽이며 자신의 선거공약이긴 하지만 노련한 브라운에게도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민주당 주지사가 민주당의 표밭이며 돈줄인 막강 공무원 노조와 맞서는 것이다. 정치적 위험부담을 감수해야 한다. 노조만 반대하는 게 아니라 주 의회 민주당의 반응도 시큰둥하다. 2주 전 개혁안을 발표하는 자리에 민주당 지도부는 참석조차 하지 않았다.
브라운의 개혁안은 오히려 공화당의원들이 공개적으로 지지를 표명할 만큼 실질적인 구조적 변화를 모색하고 있지만 위스콘신처럼 ‘반 공무원 노조’ 전쟁 선포와는 거리가 멀다.
사실 개혁안의 내용은 민간 근로자의 시각으로 보면 너무나 당연한 ‘상식’의 수준이다.
우선 현재 55세인 은퇴연령을 67세로 높였다.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조금 더 오래 일을 해야 풀 베니핏을 누리게 될 것이다. 현재 50세인 경찰과 소방관 등 공공안전 담당 공무원의 경우는 67세보다 낮출 것으로만 언급했다. 만약 시행된다면 50세에 은퇴하여 연금을 받는 한편 정부에 새로 취업하여 봉급을 받는 이른바 ‘더블 딥핑’의 혜택 남용은 힘들어 질 것이다. 개혁안은 현재 관행으로 눈감아주는 갖가지 남용사례를 지적하며 금지하고 있다.
가장 야심찬 항목은 ‘하이브리드’ 연금제 도입이다. 현행 지급보증 확정연금의 비율을 50%로 줄이고 25%의 401K와 25%의 소셜시큐리티를 혼합한 플랜으로 기금투자의 위험을 정부와 공무원 개인이 공동부담하게 된다. 이것이 ‘좋은 회사에 근무하는 운 좋은’ 민간 근로자들의 연금형태인데 노조는 주식시장의 등락에 의존하는 연금은 불안정하다며 불평한다.
은퇴연령과 하이브리드 제도가 신규채용 공무원들에게만 적용되는 사항인데 비해 연금부담 증액은 현직과 신규 전체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 연금비용을 정부와 공무원 개인이 절반씩 부담하라는 것이다. 교도관과 고속순찰대, 소방관을 제외한 주 공무원들은 이미 봉급에서 공제하며 절반씩 부담하고 있지만 상당수 지역정부 공무원들은 전혀 안내거나 극히 일부만 내면서 무임승차 연금혜택을 누리고 있다.
연금비용을 고용주인 정부와 종업원인 공무원이 50대50으로 부담하자는 공정한 플랜이지만 소송당할 위험이 다분하다. 현직 공무원의 혜택은 현행법의 보호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브라운의 개혁안이 완벽한 건 아니다. 설사 전면 시행된다 해도 현 연금제도의 문제를 해결하기에 충분치 않고 그나마 당장 재정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현직 공무원의 혜택 축소는 위헌의 소지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그래도 대다수의 미디어들은 균형 잡힌 플랜이라고 긍정적 평가를 내렸으며, 비당파적인 캘리포니아 입법 분석관실도 연금개혁을 향한 ‘과감한 첫 걸음’이라고 일단 합격점을 주었다. 공무원 연금의 과도한 부분을 정리하고 주 재정을 정상궤도로 올려놓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도 받고 있다.
그러나 실현 가능성은? 한마디로 어둡다.
브라운의 개혁안은 앞으로 몇 달간 의회와 절충 협상을 거칠 것이다. 개혁안 중 일부는 의회 통과만으로 입법화시킬 수 있지만 주요 사항 대부분은 주민투표 통해 유권자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브라운은 2012년 11월 선거에 회부될 수 있도록 의회를 압박하겠지만 노조의 입김이 강한 민주당 의회의 반대는 만만치 않을 것이다. 12월1일 소위원회에서 검토한 후 청문회가 열릴 예정인데 개혁안을 지지하는 일부 공화당 의원들이 주지사에게 특별회기 소집을 요구하고 있어 앞으로 어떤 개혁 드라마가 전개될 지 흥미롭다.
당장은 완강하게 버티고 있지만 노조의 입장도 편안치만은 않다. 좋든 싫든, 어떤 형태로든, 공무원 연금개혁은 이제 불가피하다. 파산지경에 이른 각급 정부의 재정난 실정이 그렇고 그 원인을 짚어가며 유권자들의 분노가 깊어지는 분위기가 그렇다. 여론은 연금개혁을 압도적으로 지지한다. 현 공무원 연금제도를 폐지하고 401K식의 연금제를 도입하라는 의견이 74%나 된다.
분위기만 그런 게 아니다. 브라운 플랜보다 훨씬 과격한 연금개혁 주민발의안들이 보수그룹에 의해 추진되고 있다. 노조의 단체교섭권 박탈을 내용으로 한 것도 있고 경찰과 소방관의 혜택을 삭감하고 전체 공무원의 연금부담을 대폭 늘리려 한다. 12월1일부터 서명을 받아 내년 11월 주민투표 회부를 벼르고 있다. 요즘 같은 분위기라면 통과도 어렵지 않을 것이다.
50대 초반에 은퇴하여 봉급의 90%이상을 평생 받아가는 일부 공무원들의 과도한 혜택 현실을 계속 부인해온 노조가 과격한 발의안 드라이브를 자초한 셈이다.
브라운의 개혁안 발표로 본격적인 개혁 드라이브의 시동은 걸렸다. 상대적인 박탈감에 분노한 유권자들과 힘겨운 전쟁을 치를 것인가, 아니면 합리적 대책을 제시한 주지사와 절충하며 최선의 대안을 찾을 것인가 -이젠 노조와 민주당 의회가 진지하게 고민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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