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에 발표한, 이 수필산책 란(欄)에 실렸던 ‘하늘나라로 먼저 간 큰놈’ 이란 나의 글을 읽고, 여러 독자들이 자식을 먼저 보낸 나를 위로 하는 말과 함께, 글 서두(序頭)에 고추잠자리를 도입(導入)한 시도가 좋았었다는 공명(共鳴)을 덧붙여 주기도 했다. 한편, 고령(高齡)이신 H 박사께서 전화로 “그 글 속에 아버지와 자식 간의 애정이 짙게 깔려 있었다” 라는 말을 해 주었을 때, 그날 하관예배 때, “이 애비를 사랑했던 세현아, 부디 잘 가거라!” 라고 울부짖었던 나의 통곡이 다시 한 번 메아리 되어 울려 왔다. 그리고 내가 본 그 날의 고추잠자리를 글 첫머리에 색다르게 도입한 나의 시도가, 빗나가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을 갖기도 했다.
세현이가 간지도 벌써 석 달! 세월은 모든 걸 잊게 하는 약(藥)이자, 세월의 강물은 모든 걸 안고 흘러간다지만, 오늘도 제 에미는 식탁에 멍하게 앉아, 세현이가 병상에 누워 있으면서 입버릇처럼, “아버지와 엄마랑 고등학교 때처럼, 단 몇 년 만이라도 함께 살아 봤으면…” 했던 큰놈의 소원을 되뇌며, 내프킨으로 눈물을 훔치고 있음은 세월의 강물도 모든 아픔을 쓸어안고 흘러가지는 못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한편 세현이의 세월과는 달리 이 애비의 세월은 많은 것을 안고 흘러가 주었다. 내가 베리 메디칼 재활치료실에서 집으로 돌아 온지 열흘만에 치루어 진 세현이의 장례식 때, 내 목에 투박하고 볼장 사나운 Liner(목 보호태)를 감고, 휠체어에 앉아 조문객들을 맞이했을 때 그들로부터 2중의 애도(哀掉)의 말을 받았던 그 참담한 모습과는 달리, 그로부터 석 달이 지난 오늘, 내가 탔던 휠체어는 접어져 벽 쪽으로 치워지고, Walker(걸음걸이 보조기) 마저 소용없게 되었고, 이제는 지팡이 하나로 바깥출입까지 가능할 뿐 아니라, 참새걸음 같이 가볍지는 못 하지만, 지팡이의 도움 없이도 돌 지난 아이의 짜박 걸음 마냥, 아장아장 걸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손의 마비가 풀리지 않아 9월 달의 ‘하늘나라로 먼저 간 큰놈’에서는 내가 구술(口述,입으로 말함)하는 내용을 후배인 N군이 받아 컴퓨터에 입력했지만, 지난 10월의 ‘병상일기’ 부터는 내 손으로 원고지 칸을 매울 수 있게 된 사실은, 내 나름의 재활을 위한 노력과, 세월의 흐름이란 약이 내 손등에 발라 주고 간 효력인가 싶다.
그런데 9월의 고추잠자리를 도입부로 한 내 글을 읽고, 깜짝 놀란, 둘째 놈 동현이가 이 애비에게 전한 말이, “형이 수년 전 연문으로 쓴, 어릴 적에 고추잠자리 잡던 회상(回想)의 글이 아직도 그의 컴퓨터에 그대로 담겨 있다” 는 말이었다. 둘째 놈의 말을 듣고 내 머리에 직감적(直感的)으로 스친 생각은, 생명공학(生命工學) 분야에 몸담은 그였지만, 작가인 이 애비와의 Telepasy(交感)가 서로의 혈관 속에서 흐르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하였다. 여기에 형이 남기고 간 글을 동현이가 번역하고, 이 애비가 약간 손질한 글 고추잠자리를 요약해서 옮겨본다.
고추잠자리/잠자리 잠자리 고추잠자리/구슬 같은 두 눈의 고추잠자리/날라라 날라라 들판 저 멀리/잠자리 잠자리 고추잠자리/빨간 꼬리 길다란 고추잠자리/날라라 날라라 하늘 저 멀리/잠자리 잠자리 고추잠자리/꼬리에다 파란 풀잎 달아 줄테니/내년 가을 이맘 때 다시 오너라/. 나는 이렇게 고추잠자리 노래를 부르며 시골에서 올라오신 외할머니가 만들어 주신 잠자리채를 어깨에 메고, 할머니와 함께 내가 살던 수유리 집 뒷산으로 고추잠자리를 잡으러 갔습니다. 그 때가 내가 서울 우이초등학교 3학년쯤의 일로 기억 됩니다. 그날, 서쪽 산마루에 붉은 노을이 뉘엿뉘엿 깔릴 무렵, 할머니와 나는 잡은 고추잠자리 두 마리를 헌 모기장으로 만든 잠자리 초롱에 넣고 집으로 돌아 왔습니다. 그날 밤 나는 할머니 방에서 같이 잤습니다. 할머니는 나에게 들려 주셨습니다. 잠자리 채 말고도 잠자리를 잡는 방법은, 사뿐사뿐 잠자리 쪽으로 걸어가서 동그랗게 원(圓)을 그려서 잠자리의 혼을 빼 놓고 잡는 방법을 말입니다. 그리고 잠자리가 연못이나 물이 고인 듬붕 위를 나르면서 꼬리로 물을 서치는 까닭은, 물에다 알을 낳기 위해서란 사실도 말입니다.
가을이 깊어 갈 무렵, 외할머니는 시골로 다시 내려 가셨습니다. 할머니께서 떠나가신 뒤, 나는 고추잠자리를 잡으러 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할머니가 시골로 떠나가시던 날, 할머니는 우리 집 앞뜰 꽃밭 언저리 담가에 서 있는 키다리 해바라기가 쓰러질까봐, 잠자리채로 고여 놓고 가셨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해바라기 꽃에 고추잠자리 한 마리가 외롭게 앉아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나는 그 외로운 고추잠자리를 잡지 않고, 물끄러미 바라만 보고 있을 때, 그 고추잠자리는 멀리 또 멀리 날아가고 있었습니다.
세현이가 살아생전 쓴 단 한편의 글이자 또 그의 마지막 글인 고추잠자리를 읽으면서 그가 바라보았던 해바라기 꽃에 앉았던 그 외로운 고추잠자리가 시공(時空)을 초월하여 그의 하관예배 때, 날아와 세현이와 함께 하늘나라로 날라 간, 바로 그 고추잠자리가 아니었던가 하는 이 애비의 작가적인 상상을 덧붙여 보는 것이다. 어쨌든 큰놈 세현이가 살아생전 추억으로 간직했던 고추잠자리와 나의 동극작품 속에서 수 없이 날고 있는 이 애비의 고추잠자리는, 나의 머릿속 상념(想念)의 창공(蒼空)에서, 언제까지나 언제까지나 날고 있을 것이다.
(아동극작가)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