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1년6월부로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미국 역사상 가장 장기간의 정쟁
아프가니스탄의 집권집단인 ‘탈레반’은 사우디아라비아 사람인 ‘오사마 빈 라덴’이 이끄는 이슬람 테러집단인 ‘알카에다’에게 은신처와 테러 훈련기지(基地)를 제공하였고, ‘빈 라덴’이 아프리카에서 저지른 2건의 미국대사관 폭파사건 이라던가, 미 해군 군함에 대한 자폭사건 등에 대하여 ‘빈 라덴’을 체포해서 국제 사법기관에 인도하라는 UN측의 요청을 거부해 왔으며, 세계를 놀라게 한 미국의 9.11(2001)사건 시에도 그 주모자인 ‘빈 라덴’을 체포해서 미국 사법기관에 인도하라는 요청을 정면으로 거부하였다.
국제 법에 ‘자위권’이라는 무력 발동을 정당화 하는 법이 있다. Right of self-defense in International Law라고 하는데 개인의 ‘정당방위’와 유사한 법이다. “급박하고 부정한 침략을 자행한 국가에 대해서는 침략을 격퇴하기 위해서 무력을 사용해도 된다”는 법이다. 자기 나라에 대한 침략을 막는 행위를 ‘개별적 자위권’이라고 하며, 다른 나라에 대한 부당침략을 막는데 협조함으로서 세계평화에 이바지하려는 군사행위를 ‘집단적 자위권’이라고 한다.
반복되는 ‘알카에다’의 테러행위에 대해서 미국은 ‘개별적 자위권’을, NATO(북태서양조약기구)는 ‘집단적 자위권’을 선포, 그 근원이 되는 아프가니스탄의 지배세력인 탈레반 정권과 그 비호를 받으며 테러행위를 자행해 온 ‘빈 라덴’이 이끄는 ‘알카에다’를 무력으로 격멸하기 위해서 일제히 대 테러작전을 전개했다. 2001년 10월 7일 미군의 대거 출동으로 시작이 되었으며 영국과 ‘북부동맹’이 곧 합세를 하였다. ‘북부동맹’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소련군(1978~89)이 후퇴한 이후의 혼란 속에서 ‘탈레반’이 집권을 하게 되자 이에 반기를 든 세력이 서로 모여서 결성한 북부부족을 중심으로 하는 아프가니스탄의 정치 연합체였는데 연합국과 같이 참전을 하여 11월 13일 ‘카불’(아프가니스탄 수도)에 무혈입성 하였다. 결국 연말까지 탈레반 정권은 붕괴되었다. 탈레반 정권을 괴멸하는 주 전투는 전쟁 개시 후 약 2개월 만에 성공적으로 끝이 났다.
이어 12월 5일에는 UN아프가니스탄 지원 미션(UNAMA)이 새로 발족 하였고, 12월 12일에는 ‘카르자이(Hamid Karzai)’를 수상으로 하는 아프가니스탄 잠정 행정기구가 성립되어서 탈레반정권 붕괴 이래 공백상태였던 아프가니스탄에 새로운 정부가 들어앉게 되었다. 2004년 10월 9일에는 초대대통령 선거가 있었는데 ‘카르자이’가 당선이 되었고, 2009년 11월의 제2대 선거에서도 ‘카르자이’가 재당선이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카르자이’는 미군과 NATO국가에서 지지하는 아프가니스탄의 수령이다.
이하, 2001년의 9.11사건부터의 미국의 중요 전쟁 과정을 일별하면서 결론으로 대하겠다. 9.11사건 다음날인 12일에 부시대통령은 탈레반 정권을 위시한 테러의 괴멸을 위한 ‘대테러 전쟁’을 선포하였다. 람스델 장관(당시의 국방)은 ‘오사마 빈 라덴’이 용의자이며 단독 용의자가 아님을 밝혔다. UN에서는 안보이사회결의안 1368(14)호를 발표하였다. 9.11테러 행위를 “국제평화와 안전에 대한 위협”으로 인정하고 미국과 NATO가 ‘자위권’을 발동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선언을 한 것이다.
전쟁의 초전에서는 탈레반 정권을 붕괴하는 것과, 알카에다를 격멸하는 ‘오사마 빈 라덴’을 체포하는 것이었다. 탈레반 정권은 연합국 군대의 지원으로 북부동맹에 의해서 일단 붕괴되었지만, 알카에다는 험한 산악의 동굴인 ‘도라 보라(Tora Bora)’라는 곳에 거점을 두고 저항하였는데, 12월 12일부터 12월 17일까지 5일간의 연합군 총공격으로 200여명의 사망자를 내고 주력은 파키스탄 쪽으로 도피하였다. 이 격멸작전을 ‘도라 보라 작전’이라고 하며 알카에다의 본부를 함락한 작전으로 이름이 있는데, ‘빈 라덴’은 일직이 파키스탄 쪽으로 도망을 갔기 때문에 체포를 못하였다. 이렇게 탈레반과 알카에다는 강타를 당하였으나 그 뿌리가 아직도 남아서, 10여년이 넘는 소탕작전을 벌이고 있는데, 미군을 비롯한 연합군의 계속적인 개입은 일단 종지부를 찍고, 아프가니스탄의 경찰력과 정규군의 힘으로 아프가니스탄이 다시는 테러의 소굴이 되지 않도록 노력을 하게 되었다.
금 2011년 6월을 기해서 미국역사상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가장 장기화한 전쟁이 되었다. 월남 전쟁(1964.8.7.~1973.3.) 다음이다. 초전에 동원된 미군은 5,200명이었고, 2003년에 10,400명 선(한해의 연인원을 365로 나눈 숫자)으로, 2008년까지에 44,100명으로 상승하였고 2009년에는 84,000명 선을 돌파하였다. 당시까지의 월간 전쟁경비는 44억 달러였는데 2009년에 들어서면서 67억 달러로 증가하였으며 2010년에는 78억 달러였다는 것이다. 2011년말까지는 102,000명 선을 예상하고 있는데, 총 경비는 기하급수적일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 2011년 6월 22일에 금년 말까지 10,000명을 2012년 여름까지 23,000명을 철수할 예정이라고 발표하였다. 2011년 5월 1일 오사마 빈 라덴은 파키스탄의 은신처에서 미국 CIA와 해군 특수부대인 SEAL요원들의 합동 기습에서 사살이 되었다. 9.11사건의 원흉은 살아졌으나 남은 잔당의 소탕이 앞으로 남은 ‘대 테러 전쟁’의 일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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