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인(烙印)이라는 말의 사전적 의미는 ‘불에 달구어 찍는 도장’이다. 쉽게 말하면 불도장쯤으로 해석할 수 있는 낱말인데 일상적 대화 속에서는 ‘찍혔다’는 말로도 쓰인다. 말 그대로 부정적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이 말은 ‘바보’라거나 ‘멍청이’라는 말처럼 한 번 찍히면 쉽사리 지워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내가 지우려고 해도 지워지지 않고 남이 지워줄 수도 없다는 특징이 있다.
또 다른 특징은 우리 모두가 무심결에 내 아이들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수시로 낙인을 찍고 있으면서도 아무런 죄 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데 있다. 그러나 이보다 더 두려운 것은 다른 사람에게서 무시당하고 부정적인 낙인이 찍히면 행태가 점점 나쁜 쪽으로 변해가는 스티그마 효과(Stigma effect)가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낙인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개인적 또는 집단적으로 찍힐 수도 있고 자기가 스스로 자신에게 찍는 경우도 있다. 자신감이 부족하거나 열등감에 쌓여 있는 사람이 스스로 ‘나는 못난이’라고 한다면 이는 자기가 자신에게 ‘낙인’을 찍는 것이다.
또 어떤 사람이 나에게 “당신 같은 구두쇠”라고 하면 개인적으로 찍힌 낙인이지만 “수원 깍쟁이”라고 하면 수원지방 출신들에게 집단적으로 찍는 경우가 된다.
이 처럼 낙인을 찍는 사람은 상대방의 외모나 출신 지역 또는 그 사람의 특징 등을 들어서 별 생각 없이 찍어대지만 찍히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지워버리고 싶은 충동이 일어날 만큼 저주스러운 경우도 있다.
학교에서는 새 학기가 시작되어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거나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나름대로의 느낌이나 생각에 따라 이런 저런 낙인을 찍는다. 일류 대학, 지방 대학 또는 전문 대학 등은 학교에 대해서 낙인을 찍는 예가 될 수 있고 사회에서는 선거철만 되면 상대 후보에게 공개적으로 낙인 찍는 일들이 일어난다.
이 후보는 이렇고 저 후보는 어떠하며 또 아무개 후보는 이런 저런 사람이라는 등의 낙인 찍기는 선거유세가 계속되는 동안 ‘아니면 말고’ 식으로 끊임없이 이어진다.
얼마 전에 한국에서 잘 나가던 한 여성이 학력위조 문제로 법정에서 징역형을 받고 죄값을 치른 후에 자신이 수감생활을 할 때 썼다는 일기를 중심으로 책 한 권을 냈는데 그 책 속에 내로라하는 사람들의 이름이 실명으로 거론되어 있었다고 한다.
누구는 도덕불감증인 사람이고 아무개는 어떻고 하면서 이런 저런 낙인을 마구 찍어댔던 모양이다.
당연히 당사자는 ‘억울하다’는 반응을 보였겠지만 상황은 본인들의 해명과는 상관없이 이미 끝난 후여서 그 불도장은 그 말의 사실이나 진위여부를 떠나서 그 사람들을 일시에 ‘그렇고 그런 사람’이라는 낙인을 찍어 놓았고 그 순간 책에서 거론된 사람들은 모두 ‘형편없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당사자들이야 억울하고 당황스럽겠지만 이렇게 찍혀진 낙인을 지워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럴 때 “나는 아니오”라고 변명을 하고 나서면 나서는 만큼 그 낙인은 더 깊이 자리잡아 가기 때문에 그저 잠자코 입 다물고 앉아 사실이 밝혀질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마치 호돈(Hawthorne)의 소설 ‘주홍글씨(The scarlet Letter)에 나오는 여주인공 헤스터(Hester)가 옷깃에 A라는 주홍글씨를 달고 모진 고생을 견디면서 자기의 고뇌를 승화시키는 과정에서 보는 것처럼 그저 묵묵히 참고 견디는 도리밖엔 없다.
낙인, 누구나 찍을 수 있고 또 누구나 찍힐 수 있는 양 날의 칼과 같은 무서운 그림자는 늘 내 주변을 맴돌고 있다. 그런 이유 때문에 우리 모두가 마음에 새겨 두어야 할 일은 내가 재미삼아 던진 돌에 맞은 개구리가 생명을 위협 받듯이 우리가 무심코 찍은 낙인 때문에 한 사람의 마음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길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서 마구잡이로 낙인을 찍어대는 일만은 삼가 해야 할 것이다.
특히 다음 세대를 이어갈 어린이들이나 젊은이들에게 부정적인 낙인을 마구잡이로 찍어대는 일은 반드시 삼가해야 할 것이다.
이규성
프로그램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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