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다.” 이것은 아리스토텔레스가 남긴 금언이다. 아리스토텔레스(B.C. 384-322)는 소크라테스와 플라톤과 함께 인류의 지성사에 첫 번째 손꼽히는 고대 그리스의 대철학자이다.
인간이 정치적 동물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는 그의 저서 ‘정치학’에 나온다. 사회는 인간의 정치적 동기가 전제되지 않고는 그 형성 자체가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점을 인정한다면, 인간을 정치적 동물이라는 면에서 파악한 그의 안목은 확실히 탁월한 것이었다. 정치학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또한 “국가는 최고의 사회형태이다”라고 주장하고, 국가의 목적을 `최고의 선’을 실천하는 것으로 파악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2천3백여 년 전에 이미 현대 민주주의의 이상을 구상하고 있었던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다. 그의 정치이념은 다분히 플라톤이 ‘국가론’에서 밝힌 주장에 근거하고 있으며, 그것은 관념적이고 이상주의적인 요소를 많이 가지고 있다.
플라톤은 국가론에서 “인간은 법률이 없으면 동물적 범주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따라서 법률은 국가를 전제로 하여 비로소 존재한다. 국가는 상업상의 거래나 범죄의 방지를 위한 제도에 그 존재 이유가 머물지 않고, 궁극적으로 공동의 선(善)을 추구하는 데 그 의의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는 정당에 대해서도 이렇게 일가견을 피력했다. “그것은 단순히 특정 집단의 이익만을 위한 도당이 아니라, 국가의 고귀한 목적, 즉 선을 추구하기 위해 공동으로 행동하는 집단이다."
오늘의 정치 현실을 보면 고대의 철학자들이 내건 이 같이 높은 국가관을, 그리고 그 고매한 이상을 실현하는 데 수천 년을 지지부진해 왔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그래서 나폴레옹은 “정치는 현대의 숙명(宿命)이다”라는 자학적 고백을 한 것 같다. 왕정(王政)의 절대권력을 정당화하기 위해 왕권신수설(王權神授說)을 내세워 숙명을 빌미로 인민을 노예처럼 부린 ‘앙시앙 레짐(구질서)’을 깨기 위해 혁명에 나섰던 나폴레옹이 결국 엘베 섬에 갇혀 숙명론을 말할 때의 그 참담한 심정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다.
한때 우랄 산맥에서 모스크바까지 전 유럽을 석권하여 인류사에 큰 족적을 남긴 영웅 나폴레옹의 이 독백은 2천여 년 전 플라톤이 국가론에서 제창한 정치적 이상(理想)을 실현하지 못하고 좌절한 자신의 한계를 개탄한 참회인 지도 모른다. 역사의 퇴보는 이토록 아이러니컬하다.
이처럼 어려운 인류의 숙제를 푼 것이 다름 아닌 민주주의의 선거제도이다. 선거야말로 알렉산더 대왕이나 나폴레옹이 그들의 막강한 군사력으로도 성취할 수 없었던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이 주창한 국가의 이상을 성취하는 마법(魔法)을 인민의 손에 안겨주었다.
이것은 바로 민주시민으로서 우리가 향유하고 있는 투표권으로 집약된다.
어제 서울의 시장선거에서 본 ‘투표소의 반란’은 이명박 정부와 그가 대표하는 박정희 군사쿠데타 세력의 후예들이 통일과 평화를 향한 민족사의 대장정을 중단시키고 역류(逆流)한 데 대한 조종(弔鐘)이었다.
이것은 21세기의 가치가 19세기의 위선을 제압한 통쾌한 사건이다.
특히 지난 수년 간 준동(蠢動)해 온 박정희의 파시스트 수구세력의 이데올로기의 이분법적 대결과 매카시즘으로부터 우리 7천만 동포를 해방시키려는 젊은 세대의 꿈과 열정. 그리고 을사국치 이후 계속된 어둡고 굴절된 민족사에 “파시스트의 썩은 문짝”을 차고 나온 프로메테우스적 질풍노도의 반전(反轉)을 보는 희열이 크다.
우리는 민족사에 반목과 분열, 지역갈등과 남북대치 구조로 몰고 가는 수구(守舊)세력의 야만을 청산하라는 역사적 요구를 실현하고, 프레데릭 헤겔이 만한 “역사에 대한 영웅적 봉사”를 할 수 있는 새 세력의 출현을 환영한다.
플라톤의 주장처럼 정당은 국가의 공동의 선(善)을 추구하기 위한 이상이 전제되어야 한다면, 대자본에 예속된 정치, 이권에 편승한 선단(船團)식 사회구조, 중소기업 경제의 몰락, 개혁세력에 대한 이념폭력, 지역주의적 편견으로 특징되는 현 지배구조로 결집된 한나라라는 당의 도태는 역사의 당위(當爲)인 것이 분명하다.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다”라는 금언의 깊은 뜻을 우리 모두 다시 한 번 반추(反芻)해 봤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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