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거의 사라졌지만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직장인들의 중요한 연락수단 은 ‘삐삐’라고 불리는 ‘비퍼’ (Beeper)였다. 그 당시 셀폰 은 지금 것과 비교할 수 없 을 정도로 덩치가 컸고, 값도 비쌌기 때문에 감히 구입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기자들은 항상 삐삐를 옆구 리에 취재를 다녔다. 긴급 상 황이 발생할 때마다 울려대는 그 소리에 신경이 곤두서곤 했고, 번호에 ‘8282’ (빨리빨 리)란 숫자라도 찍히면 공중 전화를 찾느라 헤매기 일쑤였 다. 시도 때도 없이 울려대는 비퍼는 그 자체가 ‘족쇄’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그런데 불과 몇 년 만에 셀 폰이 대중화되더니, 이제는 셀 폰에 PC기능까지 더해져 손 안에서 업무를 처리할 수 있 는 정말 편리한 세상이 되었 다. 전화는 물론, 이메일, 인터 넷, TV, 영화감상 등 사무실 책상 앞이나 집에서 하던 일 들이 이제 한 손에 쥐어지는 스마트폰으로 가능해졌다.
이 같은 생활의 변화 중 심에는 ‘아이폰’이란 혁신적 제품을 내놓은 애플의 창업 주 스티브 잡스란 인물이 자리 잡고 있음은 두말할 필요 가 없다.
얼마 전 그가 췌장암으로 타계했다. IT업계의 거물이 었던 그의 죽음 이후 세상은 온통 그의 경영철학과 삶 등 다양한 것들에 대해 깊은 관 심과 분석을 내놓았다. 그리 고 그 중 새롭게 주목받고 있 는 것들 가운데 하나가 ‘인 문학’이다. 그가 세상에 내놓 은 첨단 제품들 속에는 인간 을 생각하는 인문학이 녹아 들어 있다는 얘기다.
‘하이텍’은 현대산업의 핵 심이다. 그리고 경쟁업체들은 기술력 차이를 시간 단위로 쪼갤 정도로 치열한 소리 없 는 전쟁을 벌여왔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남보다 앞서지 않으면 생존이 보장되지 않 는다는 절박한 시장의 흐름 때문에 새로운 기술 및 기능의 개발과 진화는 불가피한 선택인 셈이다.
그러나 잡스가 아이폰에 이어 아이패드를 잇달아 내 놓으면서 인간의 상상이 실 제 기술과 결합했을 때 만 들어내는 위력에 놀란 기업 들은 인간의 마음을 읽고, 그 기대에 부응하는 히트 상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유 연하고, 창의적인 아이디어 가 필요하며, 그 바탕이 인 문학에서 비롯된다는 평범 한 진리를 다시 기억해내기 시작했다.
‘기초학문’을 총칭하는 인 문학은 사실 IT라는 거대한 물결에 밀려 빛을 잃고 있었 다. 그리고 이는 학생들의 대 학과 전공 선택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취업과 수 입, 장래성 때문이다. 얼마 전 US뉴스 앤 월드 리포트가 대 학입학 수험생들을 위해 발 표한 장래 전망이 밝은 9개 전공분야 중 절반 이상이 첨 단산업 분야였던 것을 봐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지금 고등학교 12학년 학 생들과 학부모들은 머릿속 이 온통 입시로 가득하다. 어느 대학에, 무슨 전공을 선택할 것인지를 놓고 하루 에도 여러 번 마음이 바뀐 다. 남들이 알아주는 대학에 합격해 장래가 밝은 전공을 공부한 뒤, 사회에서 윤택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어야 한 다는 본능적인 전제를 바탕 으로 말이다. 문제는 핏(fit)의 기준이다. 내 아이가 어떤 성격이고, 무 엇에 관심이 있는지, 그리고 어디에 잘 어울리는지를 따 져봐야 한다는 뜻이다. 앞서 잡스와 인문학을 언급한 것 은 세상의 변화를 알려주기 위할 것일 뿐, 꼭 이것을 택 하라는 것은 아니다.
잡스의 성공신화는 다양 성의 접목이라고 볼 수 있 다. 마찬가지로 수험생들 역 시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공부하고, 대학생활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 부모에 떠밀 려, 아니면 남들이 특정 분 야에 몰리니까 그것이 대세 라고 착각해 그쪽으로 결정 한다면 자기의 존재가치를 상실할 가능성이 높다. 당연 히 대학생활 4년이 쉽지 않 을 수 있다.
모든 길은 항상 열려있다. 대학 4년이 교육의 끝이 아 니다. 무엇이든 자신이 즐겁 게 할 수 있는 대학과 전공 을 선택한다면, 그들은 대학 원에서, 아니면 다른 길에서 훨씬 발전적인 방향으로 스 스로를 안내할 것이다.
스티브 잡스가 스탠포드 대학에서의 졸업연설 중“ 갈망하고 우직하게 나아가라 (Stay Hungry, Stay Foolish)” 는 명언의 의미를 되짚어 볼 때가 지금이다.
<황성락 부국장 대우·특집2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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