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늦게 돌아오는 딸과 마주친 아버지가 딸과 몇 마디 말을 주고받더니 딸의 뺨을 찰싹 친다. 여기에 질세라 딸은 듣기에도 민망한 ‘F’자로 시작하는 욕을 아버지한테 내뱉듯 소리치며 제 방으로 들어간다. 한국말로 번역된 욕이었다면 부녀의 싸움은 여기에서 끝이 나지는 않았으리라.
다행히도 아버지는 영어에 조금은 무디어서인지 멍하니 서 있다가 자기 방으로 들어간다. 사십 년의 미국 생활 중 처음 보는 장면이었으며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이런 장면은 본 기억이 없는 나로서는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이 가정은 이민 온 지 십여 년 밖에 되지 않았으며 비교적 여유 있는 생활을 하며 재미있게 살아가는 것으로 보였었다. 사실 중상층의 집에 좋은 차에 직업 없이 매일 골프로 소일을 할 정도이니 고생고생하여 여기에 이른 나로서는 부럽기까지 할 정도였다.
나도 조금 늦게 이곳에 이주를 했더라면 하는 생각도 나게 하는 형편이었다. 그러나 그들에게도 고민은 있었다. 외동딸의 앞날을 생각하고 자신들의 노후를 생각해서 이곳으로 이주를 했는데 부모는 그럭저럭 살아가는데 하나 있는 딸 아이가 자기들 마음에 들지 않게 행동하며 추할 정도의 생활을 한다는 것이다. 어느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지 않을까? 어느 부모가 자식의 앞날을 위해 기도하지 않을까? 쥐면 깨어질까, 놓으면 날아갈까, 이렇게 기가 막히게 아끼며 길러온 것이 자식이 아닌가? 몸이 고달프면, 마음이 조금 슬플 때면 사랑하는 자식의 성공한 모습을 머리 속에 그려보며 즐거운 마음으로 슬픔도 고통도 이겨내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부모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사람들이 아닌가?
그러나 조금 생각을 바꾸어 ‘성공’ 대신에 평범하면서도 행복한 생활을 하는 자녀의 미래를 바라보고 상상할 수 있다면 이 얼마나 아름다운 사랑이며 위대한 사랑인가? 훌륭한 부모는 자녀에게 성공으로의 경쟁심을 부추겨 주기보다는 폭풍이 몰아쳐도 요동하지 않을 깊은 사랑의 뿌리를 심어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평범한 생활관, 훌륭한 사랑관, 올바른 자아관을 심어준다면 이보다 더 훌륭한 부모는 없으리라.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대화를 해보자. 아이들을 내 눈높이에 올려놓고 대화를 한다면 여기에는 사랑이 없고 이해도 없는 말의 일방통행, 즉 명령 밖에 없다. 나의 자아가 생명체요, 아이들의 자아도 생명체임을 알고 언행을 한다는 것, 여기에 사랑이 있고 이해가 있다.
인내심을 가지고 대화를 해보자. 처음은 어려우나 말을 조금씩 하다 보면 공통분모를 찾게 되어 있다. 그러는 사이에 부모의 은혜를 가르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부모의 소중함을, 감사함을 알게 되겠고 신안심도 키워줄 수 있다.
바울 사도는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고 말했다. 또 예수님이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시고 또 “아비나 어미를 훼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신 말씀을 부모가 아닌 성직자의 말을 통해 배울 수 있다면 진보적인 아이들이 보수적인 진보가 될 것이다. 이렇게 만들 수 있다면 부모는 보수적인 진보의 자리에 앉게 되는 것이 아닐까?
불교의 ‘부모은중경’에 의하면 팔만사천섬의 부모의 젖과 피와 사랑을 먹고 한 생명이 자란다고 한다. 이렇게 온갖 고생과 정성을 다해 키워놓은 자식을 잘못된 길로 내칠 수는 없다. 그러기에 너무나도 억울하지 않은가!
“가엾어라, 부모님 나를 낳아서 이렇게도 고생을 하시다니” 하는 ‘시경’에 나오는 표현으로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할 어리석음을 토로는 못할지라도 부모님 덕분에 행복하게 되었다는 말을 하게 할 수 있다. 행복이란 신념과 의지의 문제이기 때문에 유산으로 넘겨줄 수도 받을 수도 있다.
조금씩 조금씩 알려주자. 성공의 열쇠를 주려는 노력 대신에 행복의 주소를 알려주자. 보수를 고집하지 말자. 진보를 질책하지도 말자. 연결되는 대화를 하자. 레모네이드 향기 같은 사랑을 주자. 너의 자아, 나의 자아가 한 뿌리에서 나온 같은 나무의 가지요, 열매요, 잎새임을 알려주자. 나의 편견이 내 눈을 어둡게 하고 있고 나의 욕심이 나를 보는 눈을 어둡게 하고 있음을 믿어보자. 여기에서 내일이 보이고 미래의 꿈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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