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를 점령하자는 젊은이들의 시끌시끌한 시위가 미디어의 조명을 받던 어제, 워싱턴에선 다른 한 무리의 시위대가 의사당에 집결했다. 전 국서 모여든 수백명의 노인들, 이들의 메시지는 조용하나 명확했다 :“ 우린 예산 항목의 숫자가 아니다, 우린 사람이다. 우리의 생계가 걸린 메디 케어와 소셜시큐리티를 함부로 깎지 말라” - 재 정적자 감축방안을 마련 중인 연방의회 수퍼위 원회를 향한 경고다.
3,700만 회원을 가진 미고령자협회 각 지역대 표들로 이들의 작전은 다양하다. 수백만 달러의 TV광고도 시작되었고 끊임없는 전화와 편지로 연방의원들을 압박 중이다. 진보사이트 ‘데일리 코스’가 이들의 풀뿌리 작전 구호를 한마디로 정리했다 :
“수퍼위원회를 점령하라!” 요즘 워싱턴 인사이더들의 관심은 수퍼위원회 에 쏠리고 있다. 특히 정부 예산정책에 따라 거 액의 손익이 좌우되는 대기업과 특수이해그룹을 위해 뛰는 로비스트들은 위원들의 일거수일 투족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지난 8월 미국을 국가 디폴트 위기까지로 몰고 갔던 연방정부 부채상한 증액합의안의 일부 로 탄생한 수퍼위원회의 기본임무는 향후 10년 간 1조2천억 달러의 적자감축안 마련이다. 공식명칭은 적자감축 합동특별위원회이지만 보통 ‘수퍼위원회’로 불린다.
어떤 분야 예산을 얼마나 깎을 것인가, 어떤 감세 혜택을 폐지하고 어떤 세금을 신설하면 합 리적인 세수증가를 가져올 수 있을까…지출삭감에서 세제개혁까지를 아우르는 해결책을 제시하는 막중한 권한, 수퍼 파워를 가진 위원회다. 퍼위가 합의한 감축안은 아무 수정 없이 필리버 스터의 방해도 받지 않고 상하원 본회의에서 단순과반수만 찬성하면 그대로 가결된다.
6명의 민주당 의원과 6명의 공화당 의원으로 구성된 12인 위원회다. 6명은 상원, 6명은 하원 이며 이들의 의원경력을 모두 합하면 214년이나 되는 중진급‘ 수퍼’ 위원들이다. 이런 ‘막강’ 위원회가 요즘엔 심심찮게 조롱 섞인 코미디의 소재가 되고 있다. “super인가, stupor(인사불성)인가” 야유 당하기도 하고 “불 쌍한 수퍼위…” 동정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출범 2개월이 되어 가는데 아무런 진전이 없 어서다. 민주·공화 양당이 팽팽하게 맞선 채 출범당시 그 자리에서 아직도 제자리걸음이다. 감 축안 합의 전망도 어둡다. 로비스트이건, 경제학 자이건 대부분이 회의적이거나 비관적이다.
왜? 수퍼위의 임무 완성이 현실적으로 불가 능해 보이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미션 임파서 블’이다.
일정부터 숨이 차다. 수퍼위의 적자감축안은 12월 중 상하원 본회의에서 표결에 부칠 예정으로 수퍼위의 합의안 완성 마감일은 추수감사절 연휴 전날인 11월23일이다. 마감에 맞추려면 11 월초까지는 내용상의 합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상하원 각 위원회를 비롯한 관계자들의 감축 아이디어 제출 마감일이 14일, 내일이다.
초당적으로 협력하면서 전속력으로 추진해도 시간이 빠듯하다. 그러나 의회의 고질병인 양극 화 대립의 측면에서 보면 12명 위원회는 535명 연방의회의 축소판일 뿐이다. 9월 수퍼위 청문회에 출두한 덕 엘먼도프 의회예산국장을 향한 양당 위원들의 질문이 단적으로 보여준다 :
지난 40년간 미국의 세수는 국민총생산의 평균 18%였으나 현재는 15.3%로 하락했다. 소셜 시큐리티와 메디케어 지출 증가율은 지난 40년 평균 7.2%에서 현재는 10.4%로 급증세를 기록했다.
공화 위원이 물었다“. 복지예산 지출이 폭발적 으로 증가했지요?” 엘먼도프가 대답했다“. 예, 맞 습니다” 민주 위원이 물었다. “현재의 세수입은 역사상 평균보다 훨씬 낮지요?” 엘먼도프가 대 답했다 “예, 맞습니다” 다른 공화위원이 물었다. “이 위원회가 집중할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엘먼도프가 반격을 가했다.“ 그건 제 소관 이 아닙니다”
수퍼위 내에서도 민주당은 계속 증세를 요구 하고 공화당은 계속 증세를 거부하니 초당적 합 의는 점점 멀어질 수밖에…
수퍼위가 합의안을 못 내놓거나 혹 내놓더라 도 12월 의회표결에서 부결되면 플랜 B로 들어 간다. 국방과 복지 등 국내예산에 대한 자동 삭감이다. 상당한 타격이 예상되지만 아무도 겁내 지 않는다. 의회의 꼼수가 거기에도 숨어있다. 자 동 삭감 시행을 2013년으로 미뤄 놓았다. 내년 선거가 끝난 후 재편된 세력판도에서 결정해도 나쁠 것 없다는 계산이 엿보인다.
한편 수퍼위에 대한 낙관론이 없지는 않다. 낙관론의 근거는 두려움이다. 당쟁에 몰두한 의회 를 불신하는 여론의 분노가 두렵고, 타협안 도출 실패로 또다시 국가신용등급 하락을 초래할까 봐, 그 책임이 몽땅 수퍼위로 떨어질까봐, 겁나는 것이다.
전 미국이,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으니 서로 갈라져 맞서고는 있지만‘ 합의안’에 대한 필요성 도 절감은 한다. 아직 너무 늦지도 않았다. 게다가 수퍼위에 대한 기대치가 낮다는 것도 다행이 다. 감축안의 규모가 예상보다 축소된다 해도 비 난보다는 찬사를 받을 수 있으니까.
적자감축만이 아니라 의회와 미국의 이미지 를 쇄신할 수 있는 기회다. 양극화로 교착상태에 빠진 수퍼위가 정신을 차려야 할 때다. 재깍, 재 깍, 재깍…데드라인을 향해 시간은 빠르게 흐르고 있다.
<박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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