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82살 삶 속에서 내가 맞부딪혔던 여러 차례의 위기(危機)! 그리고 그 위기에서의 탈출(脫出), 멀게는 지금으로 부터 60년 전, 6.25 사변이 일어 났던 그 해 8월! 내 동급생과 서울로 유학 온 고향의 동기, 그리고 후배들이 인민군 의용군(義勇軍)으로 끌려가, 새파란 목숨을 빼앗겼을 때, 나는 기지(機智)로 폐병 말기의 X-lay 필름 한 장을 구해 들고, 폐병 요양차 고향으로 내려간다는 핑계로, 인민군 치하(治下)를 뚫고, 고향길 천릿길을 걸어감으로써, 죽음의 위기에서 벗어났던, 전설 같은 사연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로부터 39년이 지난 초봄, 봄철의 시작과 함께, 계절풍(季節風)처럼 찾아오는 나의 지병(持病)인 천식과 폐렴의 합병증으로, 3분만 늦게 병원에 실려 갔더라면, 나는 이미 이 세상의 사람이 아니었을, 그 때의 악몽(惡夢)같은 사연과 그 위기에서의 또 한 번의 탈출이 떠오른다.
그로부터 22년이 흐른 지난 7월19일, 내 입에 산소호흡기가 물린 채, 나는 앰뷸런스에 실려 오후의 거리를 달려가고 있었다. 앰뷸런스가 내지르는 얼시연한 사이렌 소리가, 내가 본 연극, 러시아의 극작가 ‘안돈 체홉’의 자매(姉妹)에서의 은은하게 들려오는, 나무 찍는 초부(樵夫)의 도끼 소리 같이 불길하게 들려 왔다.
드디어 나의 몸뚱이는 O’connor 병원 중환자실 널따란 독방 병상에 누워졌다. 내 병상 맡에서 분명히 나를 지켜보고 있어야 할 할멈이 거기에 없었다. 그 까닭은 사경(死境)을 헤매고 있는 큰놈 세현이 곁에 제 어미가 지키고 있어야 했기 때문에서 였다.
큰놈의 시한부 삶에 겹쳐 일어 난, 나의 갑작스런 발병(發病)! 이는 우리 가정에 한꺼번에 몰아친 토네이도와 뇌성병력, 감당하기 어려운 폭우의 쏟아짐 바로 그것이었다. 내가 잠깐의 잠에서 깨어났을 때, 제 어미와 함께 동생의 간병으로 인해 몸이 지칠 대로 지친 딸 민아가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의 눈에서 눈물이 흘려 내리는 것을 보았다. 나는 반사적(反射的)으로 링거 꽂인 몸을 돌아 뉘었다. 애비의 눈물을 보이기 싫어서 였다. 돌아누운 내 머리 속에 내 주치의인 DR. L 씨가 나에게 말한, “잘 못하면 영구적인 하반신 마비가 올지 모른다” 라는 말이 나의 가슴을 짓눌렀다. 게다가 어쩌면 50살 나이에 이 애비 앞서 가야 할지도 모를 큰놈에 대한 애절한 마음이, 두 겹의 무게로 나를 짓누르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의 나의 발병은, 내가 구급차로 실려 가기 한 달 전, X-Lay 검사로 나타 난, 목의 퇴행성 디스크로 인하여 서서히 퍼져가고 있는 팔, 다리의 마비와 체육관에 갔다 오는 길에 갑작스레 일어난 양팔의 마비증세로 인해 운전대를 잡은 팔의 컨트롤 불가능으로 전신주를 들이받은 2중의 충격 때문이었다. 내가 오코노 병원으로 실려 갔던 그날 저녁 늦게, 나의 몸뚱이는 인간도크인 MRA 연통(煙筒)속으로 디밀려졌다. 검사 결과 뇌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진단 결과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의 호롱불 불빛 같은 희망의 불씨였다. 왜냐하면 DR. L 씨가 염려한 하반신 불구에서 벗어났다는 신호였기 때문이었다. 이어 그날 밤 11시30분, 또 한 번의 탈출 작전인 내 목 디스크 수술이 전문의(專門醫)인 DR. Andrew씨의 집도(執刀)로 전격적으로 이루어 졌다. 그 다음 날 아침 늦게, 내가 마취에서 깨어났을 때, 딸애는 내 곁에 없었다. 순환열차가 돌아가듯, 동생 곁으로 달려 가 있어야 했기 때문에서 였다. 나 혼자 멍하니 병실 천장을 쳐다보고 있을 때, 수술을 맡았던 의사 안디리우씨가 병실로 들어왔다. 그리고는 미소 뛴 얼굴로 “수술이 잘 된 것 같다!” 라는 말을 전해주었다. 안디리우씨의 말은 또 한 번의 밝은 불빛 같은 희망의 빛이었다. 또 오후 늦게 내 병실을 찾아 온 주치의 L씨의 희망적인 말은, 그가 애초에 개인차를 타고 가지 말고, 구급차를 불러 타고 가라고 한 그의 결단만큼, 나에게 고맙게 들려 왔다.
이렇게 일 단계 위기에서의 탈출 작전은 끝나고, 다음 단계로 나의 Rehabilitation(재활치료)병원 결정을 위해 수술의와 주치의가 머리를 맞대고 의논하고 있었다. 그 결과, 이 지역에서 그 방면의 시설과 인적구성이 잘 되어 있다는 Valley Medical Center로 결정이 나, 수술 한 지 4일 만인 7월23일 오전 10시, 오코노 병원을 떠나, 올적과는 달리, 목에는 Liner(목 고정태)를 감고, 휠체어를 옆에 끼고는 환자 수송용 차에 실려, 밸리 메디컬 병원으로 향하여 사이렌 소리도 없이 조용히 가고 있었다. (계속)
(아동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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