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 ‘파티 맘’ 케이시 앤서니로 인해 미 전국이 들끓었다. 자신이 열아홉 살 때 낳은 두 살배기 딸을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케이시에게 무죄 판결이 난 것이다. 심증은 변함없었지만 확실한 물증이 없는 까닭에 배심원들이 결국 무죄평결을 내리고 말았다. 심지어 배심원들조차도 케이시가 죄가 없다는 게 아니라 그녀를 감옥에 집어넣을 만한 확실한 증거가 없다고 말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은 아무 죄 없는 어린 생명을 앗아간 것은 바로 그의 엄마라고 확실하게 믿고 있는 것이다.
이 사건으로 여러 주에서 추진 중인 법이 있는데, 바로 ‘케이리 법’이다.
플로리다에서 처음 발의된 이 법안은 현재 16개 주에서 호응을 받고 있다. 주마다 세부적인 사항에서는 약간 차이가 있지만, 법안의 핵심은 부모가 아이의 실종이나 사망을 신고하지 않으면 중범죄로 처벌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케이리 법’ 제정을 비롯한 이 사건과 관련된 크고 작은 소문들이 줄줄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예를 들면, 케이시가 어디에서 살 것인가? 부모와 함께 살 것인가? 일자리는 구할 수 있는가? 살해의 위협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가? 등등.
그러나, 이 사건을 보도한 여러 미디어들을 접하면서 정작 필자의 관심을 끈 것은 마이크 폴이라고 하는 위기관리 상담가의 지적이다. 그는 “케이시에겐 돌아갈 가족이 있는가? 그것이 큰 문제”라고 말한 신문기사의 내용이었다(본보 7월 11일자 A16면 참조). 마이크가 이러한 언급을 한 이유는 케이시가 어릴 적에 자신의 아버지인 조지 앤서니와 친오빠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는 것을 비롯해서 그녀의 가정 전체가 총체적으로 정상적인 가족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가족 전체가 상담을 받아야 한다고 그는 조언한다.
돌아갈 가족이 있는가? 지엽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매우 중요한 질문이 아닐 수 없기에 독자들과 함께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케이시 사건을 지켜보면서 필자는 과연 한국 이민자들이 돌아갈 가정이 있는가라고 반문해 보았다. 거의 매일매일 신문지상에 보도되는 한인 가정폭력에 관한 기사들을 읽고, 필자가 직접 학생들과 이민자들을 상담하고 또 교회에서 이런저런 일로 교인들을 만나 이야기를 하다보면 우리 한인 이민가정이 더 이상 폭력으로부터 안전한 장소가 아니라는 생각이 자주 들곤 하는 것이다. 다만 그 동안 한인사회나 교회에서 쉬쉬하고 덮어두고 그저 무덤덤하게 지나갔을 뿐, 그 동안 한인들의 부부, 자녀, 고부관계 등은 지뢰와 같은 건드리면 금방 폭발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곪고 곪아왔던 것이다.
최근에, 뉴욕가정문제 연구소에서 발표한 상담 통계는 이와 같은 우려를 확인해 주고 있으며, 매우 큰 위험 수위까지 오른 한인 이민가정의 문제들을 적나라하게 시사해 주고 있다. 전형적인 가정문제인 부부간의 이혼, 정신적 학대, 청소년과 노인 문제들의 통계치는 그다지 새로울 것이 없지만,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문제의 심각성이 매우 위험할 정도로 드러나고 있다. 양아버지나 친아버지의 딸 성폭행, 어머니의 친아들 추행, 학원 선생이나 친구 오빠 등 아는 사람으로부터 당하는 성폭행 등 과거에는 상상하지도 못할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외에도 아버지가 아들을 때리는 경우는 오히려 너무 흔한 일이 되어 버렸고 아들이 아버지나 어머니를 구타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위의 사례가 단지 뉴욕의 한인 가정에만 국한되는 일은 아닐 것이다. 요즘 신문들을 보면 워싱턴과 버지니아 일원의 한인 가정에서도 육체적, 정신적 폭행과 아울러 자살, 살인, 성폭행 등의 사례가 매우 위험한 수위를 넘어서고 있는 현상을 볼 수 있다.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 아내와 남편들이 많이 있음을 깊이 인식 할 필요가 있다. 집보다 게임룸이나 당구장이나 카페에서 더 안락한 편안함을 느끼는 아들과 딸들이 우리 주위에 너무도 많이 있는 것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에게는 정말 돌아갈 수 있는 그리고 돌아가고 싶은 가정이 존재하는가. 하루 종일 일하고 공부하고 돌아오는 우리의 남편과 아내 아들과 딸들이 지치고 피곤한 몸이지만 기쁘게 웃으며 돌아갈 수 있는 곳, 그런 가정 말이다.
<문의 703-981-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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