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이삼십 년 전만 해도 경건하게 산다는 신앙인들은 맘 놓고 유행가 듣고 부를 형편이 못되었다. 특별한 자리를 깔아주지 않는 한 좋아하는 유행가 흥얼거리며 지낸다는 게 쉽지 않았다. 학교 소풍이나 수학여행 때, 대학 시절 카니발 자리, 흥나면 무조건 노래시키는 술좌석(물론 이런 자리도 겨우 끌려가는 자리였지만), 이런 데서나 겨우 부를 수 있었던 게 유행가였다.
그러다가 노래방이 등장하고서 사뭇 달라졌다. 노래방 어둔 밀실에서, 아예 노래방 기계까지 들여놓은 친구 집 응접실에서는 맘놓고 불러대기 시작했다. 숨었던 끼 부담 없이 드러내면서 말이다.
팝송을 좋아했던 나로서도 그래왔다. 경건한 기독교 가정에서 자란 관계로 장소 가려가며 팝송을 부르던 중 신학교 입학하고 미국까지 와 목사가 되었다. 그런 식으로 모든 상황이 급작스럽게 전개되었기에 유행가니 팝송이니 이런 데에 몰두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민 오면서 하나 챙겨온 유행가 카세트 테이프가 하나 있었는데 그게 바로 남성 듀엣 “해바라기” 노래 모음집이었다.
그들이 내 나이 근처 사람들이어서도 그랬겠지만 하여튼 그들의 노래는 내 심금을 울렸다. 경건하다는 그리스도인들이 유행가를 기피하는 이유는 아무래도 가사들의 경박함 때문일 텐데, 이들의 노래는 곡조만이 아니라 가사까지도 상당히 운치 있고 품위 있어 보였다. <내 마음의 보석상자>, <사랑이에요>, <내게 행복을 주는 사람>, <사랑으로> 등등, 거의 모든 노래들이 기독교적 가치와 문화를 담고 있었다. 그랬으니, 잠재적으로나마 팝송 끼를 갖고 있던 나로서는 그들의 곡을 좋아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아직도 기억난다. 펜실배니아 주 턴 파이크(유료 고속도로)를 달릴 때마다 초기 이민자의 우울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그들의 노래들을 자주 들었다. 위로 받고, 감상에 젖기도 하고, 때론 가사에 동조도 하며, 또 조국의 가족들을 그리워하며 눈가에 촉촉한 이슬이 맺히기도 했다. 내게 해바라기는 그런 존재였다.
그러다가 이민생활 자리 잡힌 한참 후, 바로 지금, 그들이 내게 다시 다가왔다. 그리스도인이 되어서다. 그들의 명곡들에다 이젠 은혜 받고 부르는 찬양 곡을 추가해서. 2주 전 내가 사는 새크라멘토에서 교회협의회 주최로 해바라기 초청 간증집회를 했다. 찬양도, 간증도 좋았지만, 난 솔직히 그들의 노래를 라이브로 들을 수 있어서 더 좋았다(물론 원 멤버는 아니지만).
유행가든 클래식이든, 아니면 찬양곡이든, 음악이 인생에 기여하는 바는 크다. 특히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더 그렇다. 음악 없는 교회, 음악 없는 기독교인의 삶은 상상하기 힘들다. 난 가끔 그런 생각을 해본다. 특별히 아름다운 음악을 들을 때다. 이렇게 좋은 음악을 만든 그 사람 마음은 얼마나 아름다울까, 하는 생각이다.
한번은 차 속에서 쇼팽의 즉흥환상곡을 듣게 되었다. 곡이 너무 아름다웠다. 같은 인간인데, 어쩜 이 사람 마음에서는 이런 선율이 떠오를까. 그러면서 상상하기를, “쇼팽의 마음은 참 아름다웠나 보다!”
겉만 봐서 판단하기는 그렇지만, 해바라기 콘서트에서 비친 그들의 모습 역시 아름다웠다. 특히 그들의 성공 이면에 있었던 지난날의 아픔과 상처를 딛게 해준 그리스도의 자유의 복음이 돋보여서 더 아름다웠다. 그 시각으로 봐설까? 그들의 명곡들도 한층 더 아름답게 느껴졌다. 좋은 노래도 역시 더 좋을 때 불러야 된다는 생각이 그들을 보면서 들었다.
해바라기 콘서트/집회에 참석한 다음날 온종일 내 입에서 한 노래가 맴돌았다. 그만 흥얼거리고 싶은데도 계속 노래는 입안에 머물렀다. 내게 행복을 주는 사람, 내게 행복은 주는 사람… 아름다운 노래이길 망정이지 아닌 노랜데 계속 그랬으면 좀 그럴 뻔 했다. 내게 행복을 주는 사람, 내게 행복을 주는 사람… 해바라기 한 멤버는 이 노래를 부르며 그렇게 고백했다. 이젠 내게 행복을 주는 분은 그리스도십니다!
(새크라멘토 수도장로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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