펄펄 날던 릭 페리의 상승세가 주춤하고 있다. 자칫 곤두박질, 추락의 위기감마저 나돈다. 공화당 대선 경선의 선두주자 페리의 발목을 잡은 이슈는 ‘불법이민’이다.
강경 보수 페리가 강경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수세에 몰리는 것은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 아니다. 지난주 플로리다에서 열린 공화당 대선후보 공개토론에서 페리는 라이벌들의 집단 공격에 두들겨 맞으며 휘청댔고, 확실한 ‘내편’으로 믿었던 티파티 청중들에게 야유당하며 상처 입었다.
페리를 곤경에 빠트린 게 그의 불법이민정책이라는 사실은 아이러닉하다. 불법이민에 관한한 공화당 후보 중 실상을 제대로 파악하고 현실적 대응책을 제시한 것은 페리뿐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페리는 멕시코와 1,200마일 국경을 공유한 텍사스를 통치하며 복합적인 이민 현실과 날마다 씨름중인 주지사다. 그러므로 그가 제시하는 대책은 신뢰할 만하다. 무조건 강경론을 주장하며 탁상공론을 펴는 다른 후보들과는 다르다.
미셸 바크먼은 2천마일이나 되는 미국과 멕시코 국경 전체 “1마일, 1야드, 1인치까지도 장벽을 설치해야한다”고 외쳤다. 페리는 그건 어리석은 예산 낭비라면서 밀입국자가 많은 지역의 경비를 집중 강화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페리에게 선두주자 자리를 빼앗긴 미트 롬니도 이 기회를 놓칠세라 맹공에 나섰다. 불법체류자녀 대학생에게 거주민 학비혜택을 허용한 텍사스판 드림법안을 겨냥했다. 페리가 2001년 서명한 법안이다 : 불법체류 학생 1인당 매년 2만2천 달러씩이나 지원하다니, 그래서 불법이민들이 몰려드는 것 아니냐, 미국시민인 타주 학생에겐 그런 혜택 안 주면서…
“재능 있는 젊은이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주어 사회에 공헌토록 하는 게 텍사스의 미래를 위한 것이다, 안 그러면 하류층으로 전락할 그들은 사회의 부담으로 남을 것이다”라고 페리는 해명했다.
국경경비에 대해서도, 학비혜택에 대해서도 페리의 입장은 합리적이고 실용적이다. 그러나 극우보수 청중들에겐 먹히지 않았다.
페리가 좀 더 노련했더라면, 토론 능력이 뛰어났더라면 큰 문제가 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이민의 나라’ 미국이 지향해야할 서류미비학생 정책이나 히스패닉 인구가 38%인 국경지대 텍사스의 특수상황을 설명해주며 다른 후보들의 무지와 무책임을 질책하는 ‘어른’의 역할을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사실 텍사스의 불체자녀 거주민학비 혜택법안은 기업계가 앞장서서 로비하여 공화당이 우세한 주 의회를 거의 만장일치로 통과한 초당적 법안이었다.
페리의 대응은 서툴렀다. 불체학생 학비혜택의 타당성을 논리적으로 설득하는 대신 반대하는 사람은 ‘하트(heart)’가 없다며 동정심 없는 냉혈한으로 매도했다. 인도적 측면에선 틀린 말이 아니지만 토론에선 설득력 있는 주장이 못된다. 게다가 그것은 보통 민주당이 공화당 반이민 정서를 비난할 때 동원하는 표현이어서 보수진영의 반발을 한층 부추긴 셈이 되었다.
‘불법이민’이 발목을 잡긴 했지만 페리의 전반적 토론 성적표는 기대이하다. 9월 들어 열린 3번의 토론에서 정치평론가들로부터 혹평을 받았다 : “첫 번짼 그저 그랬고, 두 번짼 첫 번 보다 약했고, 세 번짼 그보다 더 형편없었다…관심의 집중대상이었는데 준비도 안 되고, 불안해 보였고, 논리도 부족했다”
기대가 컸던 만큼 거품 빠지는 페리에 대한 불안감이 증폭되면서 공화당 일각에선 고사하는 크리스 크리스티 뉴저지 주지사에게 계속 러브콜을 보내는 등 또 다른 구세주 찾기가 본격화되고 있다.
페리의 부음을 쓰기는 너무 이르다. 아직은 롬니를 28% 대 21%로 누르고 있는 선두주자다. 게다가 이민은 공화당의 가치관을 상징하는 ‘앗 뜨거’ 이슈이긴 하지만 경제가 압도할 내년 대선에선 주요 과제가 아니다. 페리의 전국 최고 일자리 창출 실적으로 얼마든지 잠재울 수 있는 이슈이기도 하다.
경선을 무사히 넘길 수 있다면 페리의 친 히스패닉 정책은 본선에선 막강한 자산이 될 수도 있다. 내년 대선에서 공화후보가 오바마를 누르려면 히스패닉 표의 40%를 얻어야한다고 정치해설가들은 전망한다. 극우보수의 반발에 흔들리지 않고 페리가 자신의 이민정책을 고수하며 본선에 진출한다면 공화당은 2004년 부시가 받았던 40% 히스패닉 지지를 되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민커뮤니티의 시각에서 보는 페리는 확실한 ‘친이민’은 아니다. 텍사스 내
불법체류 자녀들에게 학비혜택은 허용하지만 신분합법화는 안된다며 연방 드림법안은 반대한다. 그런 페리가 그나마 ‘반이민’이 아닌 유일한 공화당 대선후보라는 사실이 공화당을 바라보는 우리의 심정을 착잡하게 한다.
박 록
주 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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