훼어팩스 카운티 교육위원회는 최근 내년부터 새로 도입해야 할 교사평가제도에 대해 논의를 가졌다. 연방정부가 경기부양책의 일환으로 주 정부들에게 지원금을 보내면서 각 주에서 시행하는 교사평가제도를 연방정부가 제시하는 방향과 기준에 따라 개정하는 것을 조건으로 내세웠고, 연방정부의 지원금을 받은 버지니아 주 정부도 그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각 지역 학군에 교사평가제도의 개정을 요구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사평가제도의 근본적 취지가 좋은 교사들과 그렇지 않은 교사들을 가려내고 수준 미달의 교사는 추가 훈련이나 교육을 통해 부족한 점을 보완시키거나, 아니면 경우에 따라 정당한 절차에 따라 퇴출시키는 데에 있다고 할 때, 현재 논의되고 있는 개정 방향에 적잖은 우려를 표명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의 초중고 시절부터 시작해 미국에서 고등학교와 대학, 대학원을 마칠 때까지 나도 여러 선생님들을 거쳤다. 모든 선생님들을 다 기억하지 못 하지만 그 중 좋은 선생님들도 있었고 그렇지 않았던 분들도 있었다. 나에게 좋았던 선생님들 중 몇을 꼽으라면, 우선 초등학교 2학년 때의 담임 선생님을 들을 수 있을 것 같다. 그 선생님은 어린 내게 발표력이 좋다는 칭찬을 해주시며 거의 매일 급우들 앞에 서서 옛날 이야기를 소개하도록 하셨다. 덕분에 동화책도 많이 읽었어야 했고, 표현력과 발표력을 더욱 향상시킬 수 있게 되었다. 이 때 받은 훈련이 나로 하여금 후일 변호사와 선출직 공직자로서의 길을 걷는데 크게 도움이 되었다고 믿는다.
그 다음으로 기억되는 선생님은 미국에 이민 온 직후 고등학교 다닐 때의 영어 선생님과 물리 선생님이다. 영어 선생님은 영어공부, 특히 발음에 힘들어 하던 나에게 격려를 아끼지 않으셨다. 알아 두어야 할 단어들을 추가로 챙겨주시고, 이 단어들의 발음을 손수 녹음해 주시곤 하셨다. 물리 선생님은 대학지원 때 과분한 추천서를 써주시는 등 나를 굉장히 아끼고 챙겨 주셨지만, 또한 잘못하는 일에 대해서는 가차 없이 지적을 해주곤 하셨다.
고등학교 졸업반 때였다. 자기 자랑 같아 쑥스럽지만 당시 급우의 투표를 통해 ‘최우수 인텔리 남학생’로 선정된 적이 있었다. 학교 신문에 게재될 사진을 하필이면 화학 실험실에서 찍게 되었다. 실험실 규칙에 따라 실험실에서는 가운을 걸치고 보안경을 썼어야 했는데 보안경을 쓰면 누군지 알아 볼 수 없을 것 같아 벗은 채로 사진을 찍었다. 그 사진을 학교 신문에서 보신 물리 선생님은 사진을 오려 모두가 볼 수 있도록 실험실 입구에 붙여 놓으시고 그 밑에 빨간색 펜으로 ‘최우수 인텔리’가 어떻게 이렇게 학교 규정을 어길 수 있느냐며 따끔한 지적을 적어 놓으시는 것을 주저하지 않으셨다. 나는 그 때의 지적으로 원칙을 지키는 일의 중요함을 배울 수 있었던 것에 아직도 감사한다.
법과대학원 일학년 때의 교수님도 한 분 기억난다. 일학년 때 불법행위법을 가르친 교수님은 1년간 방문교수로 오신 분이셨는데 연세가 제법 많이 드신 저명한 학자셨다. 그런데 학년말 시험에 나온 문제 중 모르는 단어가 하나 있었다. 당황스러웠다. 앞뒤 문맥을 잘 살펴 대충 뜻을 짐작해 볼 수도 있었으나 학년말 시험이 갖는 비중을 생각할 때 그렇게 하기에는 너무 부담이 되었다. 교수님께 죄송하지만 그 단어 뜻을 잘 모르겠다고 힘들게 말씀드렸는데 교수님의 대답이 뜻밖이었다. 교수님은 문제를 이해하기 쉽게 출제하지 못한 당신의 잘못이라며 오히려 나에게 미안하다고 하셨던 것이다. 제자의 부끄러움을 이해하고 감싸주시려는 노 교수님의 배려가 가슴 속 깊이 자리잡게 해 주던 순간이었다.
나에게 좋은 선생님들로 기억나는 선생님들은 대충 이러한 분들이다. 그 중 어느 누구도 성적 향상이나 소위 명문학교 진학에 도움을 주셨다는 이유로 기억되는 분은 없다. 그런데 요즘 미국 전역서 논의되고 있는 교사평가제도의 개정은 학력성취 향상에 대한 기여도가 거의 가장 중요한 평가요소로 자리잡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학력성취 향상을 재는 잣대로 주 단위로 실시하는 학력평가시험결과를 사용하자는 것이다. 선생님에 대한 평가가 학생들의 시험결과로 평가되는 제도가 도입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교사평가가 이루어질 경우, 교육의 근본목적과 방향이 결국은 시험결과와 동일시되는 우를 범하게 될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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