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학교로, 직장으로 집을 떠난 지 벌써 10여년이 훌쩍 넘었다. 약간 허전한 마음으로, 동시에 얼마간의 해방감에서 우리 부부가 시작한 것이 아케디아에 있는 LA카운티 수목원(Arboretum)에 가는 것이었다. 127 에이커 수목원 내의 한적한 산책로를 따라 걷다가 힘들면 나무그늘 밑의 의자에 앉아 평화로운 경치를 즐기며 쉬다보면 자연히 몸과 마음에 평온함과 건강을 덤으로 얻는 것 같아 시간이 있을 때마다 즐겨 찾는 곳이 되었다.
수년전 어느 날, 아시아 정원의 한 켠에 한국 전통정원 부지를 알리는 화강암 표지석을 처음 보고 상당히 반가웠다. 그 후로 지나가며 어떤 진전이 있나 하며 유심히 지켜보는 게 일상이 되었고, 가끔은 부지 내를 돌아보며 어떤 형태의 정원이 들어올까 상상해 보기도 하였다.
그러던 차에 2009 년 중반 경에, 수목원 입구 건물 로비에 한국정원계획 모형을 전시해주어서 궁금증을 풀 수 있게 되었다. 첫눈에 느낀 것은 서울에 있는 비원의 일부를 옮겨 놓은 것 같다는 느낌이었다. 전체적으로 상당한 규모의 비용이 소요되는 큰 사업임을 알 수 있었다. 계획안이 나온 지 벌써 2년이 넘은 것 같은데, 현장에서는 아직 아무런 움직임이 보이질 않는다.
수목원을 자주 찾는 이용자이자 오랫동안 수목원의 사시사철을 지켜본 입장에서, 한국 전통정원의 계획안을 보고 느낀 점을 몇 자 적으면 다음과 같다. 우선 수목원은 세계 여러 지역의 정원으로 구분 및 특화되어 있으며 자연 친화적이다. 하지만 제시된 한국 전통정원 설계안에 이르게 되면, 수 채의 크고 작은 기와지붕 건물군을 접하게 되어 수목원 전체적인 흐름과 부조화를 이루는 것 같은 인상이다. 캐주얼 드레스코드의 모임에 혼자 화려한 정장 차림인 것처럼 보인다고 하면 적절한 표현이 될지 모르겠다.
두 번째로, 한국정원부지는 남쪽의 3분의1 정도가 높이 80피트 정도 되는 낮은 동산의 급경사면으로 되어 있어 남쪽으로는 시야가 막힌 지형이다. 풍수지리에 문외한이 봐도 계획안에 제시한 바와 같이 양반이나 사대부일가의 고대광실 기와집들이 들어서기에 이상적인 조건은 아니라고 본다. 한국적인 정서로 보면 남쪽으로 시야가 훤히 트인 배산임수형이 제 격일 것이다.
셋째로, 계획안을 보면 한손으로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대소 규모의 기와지붕 한식 건물 및 정자와 같은 부속 구조물들이 5.5 메이커 부지를 채우고 있다. 수목으로 된 조경과 어우러져 한국 전통 주거정원의 진수를 보여 주는 것으로 기대되지만, 수목원의 주인인 수목의 유지 관리보다는 건축물의 건립에 대부분의 비용이 소요 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은 몇 가지 이유로, 아직 본격적으로 건립이 시작되지 않은 시점에서, 가능 할지는 모르겠으나 한국정원의 계획을 수정해 보는 것을 소수 의견으로 제안해 본다. 이 사업을 주도하신 분들의 노력으로 어렵게 얻은 기회를 충분한 기금모금이 끝날 때까지 하염없이 기다리기 보다는 우선 차선책으로 저 비용으로 한국 정원을 조성해 보는 것도 고려해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미 비용을 들여서 마련한 계획안을 일부 수정하여 향후 충분한 기금이 모금 될 경우 유사한 성격의 일본과 중국 전통 정원이 있는 샌 마리노의 헌팅턴 라이브러리에 설립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형태가 될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방법으로는 LA에서 한 시간 내지 두 시간 정도거리에 한국의 산하와 유사한 지형에 전통 한인 마을을 조성해 한국 정원을 건립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덴마크 민속촌인 솔뱅과 유사한 형태로 말이다.
원래 LA카운티로 기증하기 전 이곳의 주인이자 설계자인 럭키 볼드윈은 한국의 초가집과 유사한 아도브(Adobe) 흙집에서 지내기를 좋아 했다 한다. 그는 항상 흙냄새를 가까이한 자연주의자였다. 그의 원래 의도대로 자연친화적인 한국정원이 이곳 수목원에는 제격일 것으로 보인다.
이 사업을 주도하는 한국 전통 문화 재단의 기금모금 노력에 남가주 한인사회 구성원은 물론, 한국 정부 및 기업들의 적극적인 후원이 절실히 요구 된다. 이는 다인종 사회인 이곳에 한국의 전통 문화 유산의 일부를 알릴 수 있는 훌륭한 홍보 수단이며, 한인 이민자 및 후손들에게는 한인으로서 정체성과 자긍심을 높이는 장으로서 필요한 시설이라고 본다.
인신환
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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