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대통령의 ‘부자 증세’는 실현될 수 있을까. 공화당의 결사반대 기세로 보아 2012년 11월 대선 전까지는 불가능할 것이다. 영원히? 그건 아니다.
지금 예상할 수 있는 최선의 시나리오는 만약 내년 표밭에서 부자 증세가 핫 이슈로 부각되고, 오바마가 재선에 성공한다면, 민주당이 상원 다수를 유지하고, 하원 의석을 늘일 수 있다면, 그 여파로 새 의회에서 중도파 공화의원 몇 명을 설득·회유할 수 있다면, 아마도 2013년 오바마 2기엔 부자 증세가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건전한 재정을 다지고, 보다 공정한 사회로 가는 한 걸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주 발표한 오바마의 적자감축안은 현 워싱턴의 정치 환경으로 보면 비현실적이다. 공화당 하원을 통과하여 입법화될 가능성이 거의 제로에 가깝기 때문이다.
내용 자체는 무난하다. 향후 10년간 3조6천만 달러의 적자감축 대책이다. 60%의 지출삭감과 40%의 증세로 균형을 잡았다. 메디케어에서 농업 보조금에 이르기까지 각종 부분에서 예산을 깎아냈고 그동안 세제혜택의 최대 수혜자였던 대기업과 백만장자들에 대한 세금인상을 제안하고 있다. 합리적이고 상식적이다.
여론의 지지율만으로 평가한다면 오바마의 제안은 성공적이다. 어제 발표된 갤럽의 여론조사 결과에 의하면 66%가 부자 증세를 지지했으며 기업에 대한 증세는 이보다 지지율이 더 높아 71%를 기록했다. 지난 주 발표한 일자리법안도 응답자의 65%가 지지를 표했다.
그러나 이런 여론은 외면한 채 ‘계급 전쟁’이라고 아우성치며 무조건 반대로 일관하는 공화당이 하원을 장악하고 있는 한 ‘초당적 합의’에 의한 대타협은 먼 나라 이야기다. 그러므로 오바마의 부자 증세안은 현 시점에선 적자해소를 위한 대안의 하나라기 보다는 유권자의 감성을 자극하는 캠페인 이슈로 부각될 가능성이 훨씬 크다.
민주당으로선 그다지 나쁠 게 없다 : 경제 활성화를 위해, 일자리 창출을 위해 예산은 확보해야 하는데, 불황에 치여 힘들게 고전하는 중산층에게 그 부담을 지울 것인가, 이미 깎인 노인과 빈민층의 복지예산을 더 깎아내리고, 교육과 도로 등 필수 서비스를 희생시킬 것인가? 우린 공화당처럼 부자들의 대변자가 될 수는 없다, 90%를 위해 상위 10%에게 보다 공평한 세금 부담을 요구하는 것은 ‘계급 전쟁’이 아니다…
공화당만 펄펄 뛰는 게 아니다. 타협의 자세를 버린 오바마에 실망한 일부 미디어의 비판도 신랄하다. 그러나 누구도 오바마의 입장변경을 오바마의 탓으로 돌리지는 않는다. 그동안 요즘 워싱턴에선 신기루 같은 ‘초당적 합의’를 위해 끝없이 양보하며 타협해온 오바마의 노력을 보아왔기 때문이다.
지난여름 부채상한 협상에서 오바마는 ‘초당적 타협’을 이루기 위해 공화당에게 거의 모든 걸 내주었다. 소셜 시큐리티 혜택 삭감까지. 리버럴 진영은 ‘굴욕’이라며 반발했지만 오바마는 자신의 2008년 선거공약인 ‘초당적 단합자’의 이미지도 실현시킬 겸 이른바 ‘그랜드 바겐’을 제안하며 양보했지만 공화당의 존 베이너 하원의장은 거부했고 타협은 실패했다.
워싱턴 소식통들은 그때 백악관은 두 가지 교훈을 얻었다고 전한다 : 첫째, 공화당은 결코 오바마와 협조하지 않는다는 것(이미 1년 전 공화당 지도부는 오바마 재선 막기가 공화당의 궁극적 목표라고 공개 선언한 바 있다) 둘째, 여론은 결과 없는 타협엔 냉담하며 ‘나이스 가이’보다는 강력한 리더를 원한다는 것.
백악관은 전략을 바꿨다. 이번 주 부자 증세를 촉구하는 오바마의 태도도 달라졌다. 그동안 실망시켜온 리버럴 진영 달래기만은 아닌 듯 했다. 신중하고 이성적인 그로서는 드물게 ‘최후통첩’도 보냈다. “최고의 부자와 최대의 기업에 공정한 부담을 요구하는 증세를 하지 않은 채 메디케어에 의존하는 사람들의 혜택을 깎는 법안에는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다!”
계급 전쟁이라는 공화당의 비난도 피하지 않고 받아쳤다 : “5천만 달러를 버는 헤지펀드 매니저가 5만 달러를 버는 교사보다 낮은 세율의 세금을 내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니다”라고 19일 로즈가든에서 선언했던 오바마는 20일 뉴욕의 한 행사에서 “억만장자에게 교사와 같은 세율의 세금을 내라고 하는 것이 나를 중산층의 전사로 만든다면 영광으로 받아 들이겠다”고 말했다.
미국의 세제가 너무 복잡해서인지 현재 부자 세율의 공평 여부는 해석하는 사람의 이념에 따라 제각각이다. 보수진영에선 이미 충분한 세금을 내고 있으며 증세는 일자리를 죽인다고 주장하고 진보진영에선 “억만장자가 비서보다 낮은 세율을 적용받고 있다”는 워런 버핏의 지적을 내세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현재 미국의 빈부격차는 그 어느 때보다 극심하며 세금정책이 이같은 부의 편중현상을 가속화 시켰다는 사실이다. 노스이스턴 대학의 연구결과에 의하면 2009년부터 2010년 사이 미 전체의 소득증가 5,280억 달러 중 기업의 이익은 88%인 반면 근로자의 몫은 1%에 불과했다. 1990년대 초 경기회복 당시엔 소득증가 중 근로자의 몫이 50%를 차지했었다.
이런 현실에서 고전하는 수백수천만 근로자의 필요보다 소수의 부자와 대기업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것은 철학이나 이념의 문제가 아니다. 사회정의의 문제다. 당쟁에 몰두한 정치가들이 그것을 잊었다면 다시 깨닫게 해주는 것은 유권자의 의무다.
박 록 주 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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