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타크루즈 산 속에 아름다운 기도의 집이 있다. 쭉쭉 뻗은 레드우드와 봄이면 백합꽃 향기가 온 산에 그윽하고 각양각색의 꽃들이 사철 아름다운 그 곳에 가면 자그만 캐빈에 누워 있기만 해도 저절로 영성이 충만해 지는 것 같다. 지금은 70이 넘으신 아름다운 한 여인의 생애가 그곳에서 밀알처럼 썩어졌기에 수많은 사람들의 쉼터가 있을 수 있었다. 3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이민와 몇 달 후 남편을 암으로 잃었다. 어린 두 딸의 엄마로 기막힌 청상 과부가 되어 주님을 믿게 되었단다. 중년에 소명을 받아 산속 작은 집에 기거하며 기도의 집을 하고 있던 시절, 대통령 영부인이 된 친구가 샌프란시스코에 온다고 모임에 참석하라는 연락을 받았단다. 고교 시절부터 대학까지 동기동창인 친구는 영부인이 되었는데 자신은 과부가 되어 처량하게 사는 모습이 싫어서 새벽 기도시간에 “나는 그 모임에 안가요” 하며 하나님께 투정 부리며 울었단다. 그 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다. 이사야 54장 4-5절의 말씀이었다.“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젊었을 때의 수치를 잊겠고 과부 때의 치욕을 다시 기억함이 없으리니 이는 너를 지으신 이가 네 남편이시라 그의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시며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시라 그는 온땅의 하나님이라 일컬음을 받으실 것이라” 그 말씀이 얼마나 위로가 되었는지 모른단다.
남편을 잃고 마음이 상심한 분들이 있을 때 나는 그 녀들을 데리고 그 산에 오른다. 그리고 지금은 예수님의 신부로 아름답게 나이들어 전직 영부인과 비교도 안될 만큼 우아하고 품위있게 나이드신 그 할머니께 그 때 그 이야기 좀 다시 들려 달라고 부탁한다.나이들고 보니 세상 최고 권력자의 아내라는 자리가 부질없어 보이더란다. 상처받은 수 많은 여인들 그리고 이민자들의 어머니로 그 산속 아름다운 집에서 섬기는 노년의 그 분 모습은 너무나 귀하고 아름답다. 젊은 날 과부된 그 녀의 애통함을 보시고 “네 과부 때의 치욕을 다시 기억함이 없을 것이라 내가 네 남편이라”고 위로하신 그 하나님의 음성이 교리공부나 백번의 설교보다 더 낫지 않은가! 얼마전 아침 식사 자리에서 만난 H가 평안한 미소로 웃으며 “세번째 손님이 찾아 왔어요” 했다. “네? 암이 또 재발했어요? “하고 묻는 내게 그렇다고 한다. 그 녀는 작년에 암으로 세상을 떠난 내 교우의 언니이다. 수술을 며칠 앞 둔 어느 아침 성경을 펴들고 아무데나 눈에 띄는 귀절을 읽었는데 예레미야 31장 4절 이었단다. “처녀 이스라엘아 내가 다시 너를 세우리니 네가 세움을 입을 것이요 네가 다시 소고를 들고 즐거워 하는 자들과 함께 나오리라” 그 녀는 다시 세움을 입는다는 회복에 대한 말씀이 위로가 되었다고 했지만 나는 “처녀 이스라엘아” 라는 단어에 웃음이 나왔다. 하나님의 유모어 감각을 보는듯 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61세의 처녀로 현직 간호사이다. 세번째 재발한 암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 녀는 잘 안다. 그래도 말씀에 의지하여 평안한 그 녀의 모습이 참으로 아름다운 처녀의 모습이다.성경은 점장이가 그 날의 운수를 점을 치듯 아무데나 펴서 운수를 맞추는 책이 아니다. 객관적으로 역사와 시대적 배경을 연구하며 의미를 공부하는 것도 필요하고, 주관적으로 말씀을 묵상하며 큐티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러나 간혹 마음이 절박한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구체적으로 성경귀절을 주시기도 하시고 무조건 펴서 읽은 말씀이 내 상황과 너무 절묘하게 일치해 예언적인 계시로 다가 오기도 한다.
30년 전 겨울, 6살짜리 어린 큰 딸이 불의의 사고로 전신화상을 입고 응급실에 실려 갔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온몸이 다 타고 파괴된 조직들이 소변으로도 붉은 피처럼 되어 링겔 병에 받아졌다. 의사들은 고개를 흔들었다. 3도 이상의 화상이 40% 이상이라 생명을 보장할 수 없다고 했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진다는 옛 어른들의 표현이 무엇인지 나는 그 때 느꼈다. 내가 믿는 하나님! 알고 계세요? 모르고 계세요? 내 인생에 가장 큰 아픔이 된 이 불의의 사고가 하나님의 무관심 속의 일인지 나는 그것이 묻고 싶었다.온 몸이 불에 타 마치 바베큐를 해 놓은 짐승처럼 처참한 딸의 병상에서 나는 미친 에미처럼 두꺼운 성경책을 아무데나 펼쳤다. 예레미야 31장 15절이 그냥 눈에 확 들어왔다. “라마에서 슬퍼하며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 그 자식때문에 애곡하는 것이라 …..네 울음과 네 눈물을 멈추어라 …..너의 장래에 소망이 있을 것이라 너의 자녀가 자기들의 지경으로 돌아 오리라…. 에브라임은 나의 사랑하는 아들 기뻐하는 자식이 아니냐 내가 그를 책망하여 말할 때마다 깊이 생각하노라 그러므로 그를 위하여 내 창자가 들끓으리니 내가 반드시 그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나님이 깊이 생각하셨다는 말이 내게 큰 의지가 되었다. 어느 누구의 위로의 말도 내게 의미가 없던 그 시간 , 그 말씀은 나를 울렸고 소망을 갖게 했다. 30년 전 그 딸은 지금 귀여운 딸의 엄마가 되었고 신실한 하나님의 일군이 되었다.하나님은 마음이 상한 여인들을 그 모습 그대로의 이름으로 부르신다. 과부로, 처녀로, 애통하는 엄마의 이름으로…
(목사/알마덴 한국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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