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마니아 출신의 프랑스 극작가 외젠 이오네스코는 세계적인 부조리 작가이다. 이오네스코의 대표작인 ‘대머리 여가수’(La Cantatrice Chauve)는 사무엘 베케트의 대표작 ‘고도를 기다리며’(En attendant Godot)>와 함께 세계 부조리 연극의 정수로 간주되고 있다. 이오네스코는 공산주의를 ‘현대사의 가장 비극적이고도 가장 큰 실수’라고 언급하였다.
1980년대 말, 동유럽에서 민주화 바람이 불기 시작한 이후 벌써 2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으며 또 그동안 엄청난 변화가 있었다. 1990년대 동유럽 국가들은 어느 한 분야에서의 사회구조 변화가 아니라 전 국가차원에서의 ‘총체적인 구조적 변화’를 겪었다. 내용인 즉 공산주의에서 자본주의 체제로 그리고 사회주의에서 민주주의 체제로의 체제전환이 그것이다.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요건은, 공산당 일당제의 사회주의와는 달리 복수정당제이다. 또한 공산주의와 대비되는 자본주의의 기본 요건은 사유화이다. 따라
서 90년대 동유럽 국가들은 헌법을 비롯한 법률의 전면적인 개정을 통해 국가체제의 총체적인 개편을 시도함과 동시에 국가 소유의 모든 재산을 개인소유로 전환하려 하였다. 물론 이러한 과도기적 상황 속에서 커다란 혼란과 어려움이 있었으며 국민들에게는 혹독한 시련이 뒤따랐다.
나는 여기서 ‘민주주의와 공산주의’라는 무거운 주제를 논할 생각은 없다. 다만 이 두 이데올로기와 관련하여 유럽에서 실제로 있었던 역사적 사건을 이야기하려 한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연합군은 처음에 발칸반도 상륙작전을 실행하려 했으나 이후 노르망디 상륙작전으로 계획을 수정하였다. 마치 6.25전쟁 때
부산상륙작전에서 인천상륙작전으로 바뀐 것과 비슷하다.
당초 발칸반도 지역에서 상륙작전을 감행하여 구 유고슬라비아를 통해 루마니아 등 동유럽지역으로 진격하려던 것은 영국의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 계획은 1943년 1월 미국에 의해 철회되었다. 당시 미국은 발칸반도 지역에서의 전투를 소련군에게 맡기고 대신 연합국은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결국 영국은 미국의 입장을 받아들였고 그 이후 발칸반도에 인접한 루마니아는 소련이 직접 관할하게 된다. 이로써 루마니아 역사에는 머지않아 현대사의 가장 비극적이고도 가장 큰 실수인 공산주의가 시작되는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보면, 당시 미국과 영국은 노르망디 상륙작전에만 전념하기위해 소련에 ‘일시적인 군사지역 설정’이라는 것을 제안했는데, 이는 루마니아가 소련의 보호 (영향력: 소련 90%, 영국 10%) 하에 그리고 그리스는 영국의 보호 (소련 10%, 영국 90%) 하에 들어간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로 인해 루마니아와 그리스는 제2차 대전이 끝나고 난 이후 각각 공산주의와 민주주의의 길을 걷게 된다.
루마니아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정말 역사상의 ‘간발의 차이’로 인해, 즉 발칸반도 상륙작전이 노르망디 상륙작전으로 변경됨으로써 현대사의 가장 큰 실수가 자국에서 시작된 것이다.제 2차 세계대전 전후의 루마니아의 경제수준은 그리스를 훨씬 앞지르고 있었다. 실제로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세계무역에서 차지하는 루마니아의 수출 비중은 세계 10위권 내에 속해 있었다. 그랬던 루마니아가 소련의 공산주의 체제 하에 들어갔고 또 그리스는 영국의 민주주의 체제 하에 들어갔다.
1948년 루마니아에 공산주의가 도입된 후 근 40여년이 지난 1989년 루마니아에서는 유혈혁명이 일어났다. 루마니아 독재자 차우셰스쿠는 크리스마스인 12월 25일에 처형되었고 이후 루마니아에서 민주주의가 시작되었다.
그렇다면 1989년 루마니아에서 공산주의가 붕괴된 직후 루마니아와 그리스의 경제수준은 어떠했을까? 현재 그리스의 경제상황이 좋지 않지만 1990년대 초, 양국의 경제수준은 선진국과 후진국이라는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결국 소련 공산주의가 도입되기 이전에 루마니아는 그리스보다 부유한 국가였지만, 지난 40여 년 동안 공산주의의 길을 걸으면서 그리스보다 훨씬 가난한 국가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박정오
한국외대 교수
UC버클리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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