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노동절이 생긴 것은 생각보다 훨씬 오래전이다. 어머니날이나 아버지날보다 앞서부터 지켜온 할러데이다. 1882년 9월5일 8시간 근무제를 요구하는 뉴욕 이민 근로자들의 퍼레이드에서 시작된 노동절이 연방공휴일로 제정된 것은 1894년이었다. 일리노이 주의 소도시 풀먼에서 발생한 종업원 파업이 계기가 되었다.
종업원 대량해고에서 불거진 풀먼팰리스 객차제조회사의 노사갈등은 남은 종업원들에 대한 임금 대폭삭감이 단행되자 3천명 파업 돌입으로 치달았다. 사태가 전국적으로 확산된 것은 미 최초의 전국노조인 철도노조가 동조하면서였다. 풀만에서 만든 객차의 운행을 거부한 것. 철도망이 마비되면서 물류와 우편 수송이 중단됐다. 연방정부가 철도운행 방해 전면금지령을 내렸으나 노동자들이 법령을 무시하자 당시 그로버 클리브랜드 대통령은 군대를 파견했다. 그리고, 유혈 진압의 와중에서 시위 노동자 13명이 사망하고 57명이 부상당했다.
파업은 끝났지만 가라앉지 않는 노동자들의 분노를 달래기 위한 정책의 일환으
로 클리브랜드 대통령이 제안한 노동절 연방공휴일 제정안은 6일 만에 일사천리로 의회를 통과했다.
시작은 이렇게 비극적이었으나 100여년이 지나면서 미국의 노동절은 즐거운 축제로 자리 잡았다. 방학이 지나고 개학을 맞는 여름의 끝, 가을의 시작을 알리는 9월의 첫 주말은 피크닉과 바비큐, 물놀이와 불꽃놀이, 콘서트와 가족여행이 전국 곳곳에서 펼쳐지는 부담 없고 편안한 ‘행복한 연휴’로 지켜져 왔다.
그러나 벌써 몇 해째 ‘우울한 노동절’이 계속되고 있다. 일하고 싶어도 일하지 못하는 실업인구가 너무나 많아서다. 실업률은 아직도 9.1%로 높다. 거기에 풀타임으로 일해야 하는데 일자리가 없어 파트타임으로 전전하는 840만명과 구직을 포기한 200만명을 더하면 사실상의 실업자는 2,500만명, 16.1%에 이른다.
경기침체가 공식적으로 끝났다는 게 벌써 2년이 지났지만 서민이 체감하는 경기회복의 속도는 고통스러울 정도로 느리기만 하다. 더 느린 것은 고용회복이다. 의회예산국 보고서의 고용회복 전망도 어둡고 우울하다. 애써 장밋빛으로 보아도 내년 가을쯤 8.5%로 조금 낮아지고, 실업률 5%의 이른바 ‘완전고용’은 아무리 빨라도 5년은 지나야 한다(아예 불가능할 수도 있다)
재선을 앞둔 오바마 대통령의 최대약점이 바로 ‘일자리’다. 취임초기엔 헬스케어 개혁에 몰두하느라, 지난 1년은 티파티 공화당에 휘둘리며 예산삭감·적자해소에 집중하느라 실업률을 낮추지 못한 것이다.
미적대던 오바마가 ‘마침내’ 일자리창출을 위한 전면전을 선언하고 나섰다.
노동절 직후인 다음 주 양원합동회의 스피치를 통해 일자리를 핵심으로 한 경제대책을 제안하겠다고 밝혔다. 경제를 살려야 하는 정책적 측면에서도, 재선에 성공해야하는 정치적 측면에서도 일자리 해결이 최우선 과제임을 절감한 듯, 결연한 의지도 보이고 공화당 반대에 맞설 전의도 조금은 느껴진다.
다음 주 발표될 오바마의 경제대책 내용은 이곳저곳을 통해 대충 흘러나왔다. 페이롤 택스감면 및 실업수당 연장에서 신규고용기업에 대한 세제혜택, 기간시설 재건위한 인프라은행 설립까지 다양한 방안들이 거론된다. 현상유지를 위한 것도 있고 새롭지만 장기적 기다림이 필요한 것도 있다. 문제는 이 방안들을 ‘진부한 재탕’이 아니라 ‘획기적 해결책’으로 끌어올리는 데 필요한 리더십이다.
그동안 타협하고 양보해온 오바마를 보며 인내심이 거의 바닥난 리버럴 진영에선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고 거의 협박수준에서 경고한다. 아우성치는 그들의 요구는 한마디로 “Be Bold!(과감하라)”다.
어차피 반대할 공화당과의 ‘초당적 합의’에 미련두지 말고 진정으로 실업률을 낮출 수 있는 강력하고 규모 큰 대책을 내놓으라는 압박이다. 일리가 있다. 지난 2년 반 동안 정착한 워싱턴의 관행은 “오바마가 제안하면 공화당은 반대한다”라니까. 또 실제로 공화당 하원지도부는 지출을 늘리는 대책은 절대 안된다면서 세금삭감과 규제완화에 집중하는 자신들의 일자리 플랜을 공격적으로 밀고나가겠다고 천명했다.
현 정치기류를 보면 오바마가 아무리 획기적 대책을 내놓아도 실현은 낙관보다는 비관에 가깝다. 그러나 ‘일자리’는 정치적으로 가장 민감한 경제지수다. 공화당이 무조건 반대만 할 수는 없는 이슈 중 하나가 바로 일자리다. 유권자들이 ‘경제적 안보’를 측정하는 잣대는 연방적자나 예산 삭감이 아니라 ‘일자리’이기 때문이다. 내가 실직 위협을 받지 않고, 내 임금이 깎이지 않고, 내 베네핏이 사라지지 않도록 지켜주는 리더를 원하는 것은 민주당 뿐 아니라 공화당 유권자도 마찬가지다.
공화당 반대로 ‘과감한 일자리 대책’이 의회에서 죽어버린다면 표밭으로 끌고 가 유권자의 심판을 받자는 리버럴 진영의 압박과 조금이라도 빨리 실업률을 낮추려면 공화당의 협조하에 의회통과를 얻어내야 하는 현실사이에서 깊은 고민 끝에 완성할 오바마의 대책이 기대된다.
언제쯤이면 우리도 다시 “Happy Labor Day!”를 실감할 수 있을 것인가.
박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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