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오래 기다림에 비하면 너무 작은 한 걸음이긴 하지만 그래도 좋은 소식인 것은 확실하다.
지난 주 오바마 행정부가 불법체류자 무차별 추방에 대한 중단조치를 내렸다.
이민사회의 압도적 지지를 받으며 당선된 오바마 대통령이 취임 2년 반이 지나서야 마침내 이민개혁 ‘공약’ 실현을 향한 긍정적 첫 걸음을 내딛은 것이다.
앞으로는 전과가 없고 국가안보와 공공안전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면, 그렇게 성실하게 살아 왔다면, 불법체류자라 해도 추방의 공포에선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이번 조치는 총괄적인 정책은 아니다. 일단 59개 연방이민법원에 현재 계류 중인 추방케이스 30만명을 대상으로 한다. 한 건씩 재심사하여 마약딜러와 갱멤버 등 범법자로 이 사회에 위협이 되는 사람들과 드림법안 수혜대상 학생들처럼 이 사회에 공헌할 사람들로 구분해놓은 다음 전자는 가능한 빨리 추방시키고 후자에겐 추방을 유예시켜 준다는 것이다.
모든 서류미비 이민자가 다 똑같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마구잡이였던 추방정책의 방향을 보다 합리적으로 변경하는 조치라 할 수 있다. 인도주의를 지향하는 ‘이민의 나라’ 미국이 벌써 오래전에 택했어야 할 정책이다.
그동안 오바마 행정부의 불법이민 단속은 상당히 강경했다. 부쩍 강화된 불법고용 감사로 인력난에 부딪친 업계가 비명을 지를 정도였고 오바마 취임이후 추방된 불체자가 역대 어느 행정부보다 많아 100만명에 이르고 있다. 인내심이 바닥난 이민커뮤니티는 분개하며 항의했으나 오바마에게도 이유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국경수비에 솔선수범을 보여 포괄적 이민개혁안에 찬성해 줄 의회 내 지지자를 확보하려는 ‘전략’이었다. 헛수고였다. 반이민 보수진영은 양보하지 않았고 포괄적 개혁안은커녕 훨씬 소규모의 드림법안 조차 통과에 실패했다.
이번 조치에 대해서도 반이민 보수진영은 거센 비난을 쏟아내고 있다 : “도둑 사면이다”, 사면을 부결시킨 의회에 대한 행정부의 “월권행위다”, “모범인 준법국민에 대한 모욕이다”…
연방하원을 장악한 공화당의 강경입장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불법은
불법”을 외치며 1,100만 불체자 전원추방을 고집하는 한 드림법안을 포함한 이민개혁의 희망은 당분간 가지기 힘들다. 추방정책을 조심스럽게 조율한 지난주 발표는 어찌보면 오바마의 이번 임기 중엔 이민개혁 약속을 실행할 수 없음을 알리는 무언의 인정인지도 모른다.
지난해 받은 한 아버지의 편지는 아직도 나의 드림법안 파일 속에 들어 있다. 그는 1살 때 미국에 데리고 와 불법체류자로 만들어버린 아들 때문에 가슴이 “천 갈래 만 갈래로 찢어지고 있는” 아버지였다. 지난주의 굿 뉴스가 “숨죽이며 하루하루를 지내는” 그들에게 희망이 되지 않을까 싶어 그 편지를 다시 읽어보았다.
“…내년이면 아들이 대학을 졸업합니다. 여름방학 때 좋은 회사에서 인턴십도 무사히 마쳤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공부한 아이가 애비 따라 잔디 깎기에 나서야 하나요? 운전면허를 받을 수 없어 일일이 라이드를 얻어야 했던 고통스런 일상을 종교에 의지하여 꿋꿋이 버티어온 아이입니다. 이 아이가 합법화되어 자유롭게 운전할 수 있고 직업다운 직업을 가질 수 있고 그래서 보통 사람으로 살아갈 수만 있다면 부모는 자국으로 추방된다 해도, 지금 죽는다 해도, 기꺼이 감수하겠습니다…”
이번 조치는 ‘사면’은 물론 아니고, 신분보장도 아니며, 운전면허를 받을 길을 열어준 것도 아니다. 그러니 지금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가져야 할 그 아들에게 지난주의 굿 뉴스는 실질적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다 - 새 정책의 확실한 수혜자가 되려면 먼저 불법체류로 체포당해야 한다. 체포된 후 심사에서 추방유예 판정을 받아야 일할 수 있는 ‘워크 퍼밋’ 신청이 가능해지고 워크 퍼밋을 받아야 합법적으로 취업할 수 있게 되니까.
새 정책엔 이처럼 불확실한 요소가 다분하다 : 체포를 마치 ‘복권 당첨’처럼 꿈꿔야 하나? 추방유예는 언제까지인가? 공화당 행정부가 들어서면 추방중단은 번복될 것인가? 개별적 재심사는 과연 공정하게 이루어질 수 있을까? 실적 올리기에 급급한 수사관들이 범죄자 보다 다루기 만만한 단순 불체자들을 희생물로 삼지는 않을까…
그래서 이민그룹들은 환영하면서도 박수를 아끼며 신중하게 반응한다. “건배는 하자, 그러나 아직 마셔버리지는 말자(Let’s make a toast, but don’t drink yet)”- 한 이민법 블로그에 실린 댓글이다.
이번 조치는 망가진 이민제도가 초래한 불필요한 고통을 완화시켜주는 필요한 단계이긴 하지만 미국이 안고 있는 이민문제의 장기적 해결책은 아니다. ‘추방유예’를 둘러싸고 정치적 이해관계로 뜨겁게 맞서더라도 이번 조치가 의회에서 이민개혁 논쟁을 새로 불붙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기존불체자의 신분합법화가 포함된 포괄적 이민개혁안의 의회통과만이 근본적 해결책이기 때문이다.
그때까진 흐르는 눈물을 “꾹꾹 눌러가며” 매일을 살고 있다는 아버지의 편지를 다시 드림법안 파일 속에 끼워놓기로 한다.
박 록
주 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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