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설가인 버나드 쇼가 어느 날 만찬장에서 매력적인 여성 옆에 앉았다. 쇼는 “100만 파운드를 줄테니 같이 잘 생각이 있느냐”고 물었다. 엄청난 액수에 여성이 좋다고 답하자 그는 “5파운드는 어떠냐”고 물었다. 여성이 화를 내며 “나를 뭘로 보느냐”고 대들자 그는 “당신이 무엇인지는 이미 정해졌고 우리는 단지 가격 협상을 하는 중”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원칙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일화로 서양에 쇼가 있다면 동양에는 양자가 있다. 지금은 잊혀진 인물이지만 춘추전국시대에는 맹자가 “천하가 양자와 묵자의 학설로 덮였다”고 할 만큼 이름을 날렸다. 그에게 누가 “당신 털 하나를 희생해 천하를 편안하게 할 수 있다면 내놓겠느냐”고 묻자 그는 거절했다. 내가 털 하나를 내놓으면 다음에는 팔 하나를 달라 할 것이고 팔 하나를 내주면 온 몸을 내놓으라 할 것이란 게 이유였다.
서울시 전 초등학생에게 즉각 전면적으로 무상급식을 실시할 것인지 소득 하위 50%이하 학생에게만 단계적으로 실시할 것인지를 정하는 주민 투표가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야당 쪽에서는 몇 푼 되지도 않는 애들 밥 먹는 문제를 가지고 편 가르기 하지 말자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날 투표에 걸린 것은 단지 애들 밥그릇이 아니다. 결과에 따라 앞으로의 한국 복지 정책이 필요에 의한 선별적 복지인가 아니면 무차별 평등 복지인가가 정해지기 때문이다. 아이들 점심 말고도 베풀어야 할 복지 혜택은 많다. 아침밥을 먹고 온 학생이 굶은 학생보다 학업 성적이 좋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점심을 제대로 먹지 못하는 학생이 아침을 먹을 리 없고 이왕 급식을 하는 바에 아침 밥상도 차리자는 주장이 나올 것이다.
아침밥이 해결되면 저녁도 주자고 할 것이고 저녁이 해결되면 부모는 밥을 굶는데 자식만 삼시 세끼 잘 먹을 수 없다는 주장이 나올 것이다. 그 다음에는 밥을 거저 줘도 몸이 아프면 소용없다면서 전 국민 무상 의료제를 하자 할 것이다. 나날이 치솟는 학원비와 대학 등록금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정부에서 무료로 대주면 된다.
이런 환상적인 해결책의 실현을 막는 단 하나의 장애물이 있다. 돈이다. 보편 복지를 외치는 사람들의 공통된 특징은 돈 걱정을 별로 하지 않는 점이다. 이들에게 인간의 욕망은 무한하고 재화는 한정돼 있다는 경제학의 근본은 보이지 않는다. 올해가 보편 복지를 내세우며 건국된 소련이 망한지 20주년이 되는 해라는 사실도, 한 때는 세계 유일의 수퍼파워였다 ‘요람에서 무덤까지’를 내건 사회 복지 제도를 마련했다 거덜 난 영국도, 분에 넘치는 복지혜택으로 국가 부도 위기에 직면한 그리스도 관심 밖이다.
많은 서울 시민들도 이건희 손자와 산동네 극빈자 아이가 똑같이 무료로 밥을 먹어야 한다는데 반대하고 있다. 여론 조사에 의하면 선별적 복지와 무차별 복지에 대한 지지도는 57%대 31%이다. 선거를 하면 질 것이 뻔하자 야당은 이를 ‘나쁜 투표’라 부르면서 주권을 행사하러 투표장에 가는 시민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
투표율이 33%를 넘지 못하면 던진 표는 아예 개표도 못하고 폐기되고 무차별 급식안이 시행되게 된다. 선별 급식안이 사장될 위기에 놓이자 오세훈 서울 시장은 투표 결과에 시장 직을 걸었다. 이번 주민 투표에 대해 야당은 결사적 반대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반면 한나라당은 내분으로 홍역을 앓고 있다. 괜히 쓸데없는 일을 벌여 골치만 아프게 됐다는 분위기다. 오죽하면 한 최고위원이 오 시장을 황산벌에서 외롭게 적을 맞아 싸우다 전사한 계백 장군에 비유했겠는가.
막걸리 한 사발과 고무신 한 켤레에 표를 팔던 시절이 있었다. 차라리 소박했던 그 때는 욕하면서 표를 무상 급식과 바꾸는 것은 부끄러워 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있다. 막걸리는 선거 때 한 번 먹으면 끝이지만 사회 복지 프로그램은 한번 만들어 놓으면 폐지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만약 이번 선거에서 무차별 복지안이 승리한다면 총선과 대선이 몰려 있는 내년은 ‘공짜’ 선거판이 될 것이고 서울(어원은 신라의 수도 서라벌이다)은 빠른 속도로 아테네를 닮아 갈 것이다. 서울 시민의 선택이 주목된다.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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