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화당 대선후보 경선이 예상대로 한결 ‘익사이팅’ 해졌다. 텍사스 카우보이의 거침없는 행보가 판세를 흔들고 있어서다.
지난 주말 뒤늦게 출사표를 던진 릭 페리 텍사스 주지사의 첫 주는 롤러코스트를 탄 듯 보기에도 아슬아슬하다. 막말의 실언으로 “대통령 후보 맞아?”하는 구설수에 휩싸였나 하면 출마발표 사흘 만에 전국 여론조사에서 선두주자로 뛰어 올랐다.
이번 주 초 1천명 공화당 유권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라스무센 여론조사에서 페리는 29%의 지지를 받아 18%에 머문 지금까지의 선두주자 미트 롬니를 멀찌감치 따돌리고 1위를 차지했다.
무엇이 유권자들을 사로잡았을까. 민주당이 아무리 깎아내려도 경제성장과 일자리 창출이라는 눈에 보이는 ‘업적’과 공화 표밭에 어필하는 확실한 보수 성향, 롬니에게 아쉬웠던 박력과 카리스마…흥행성과 당선가능성을 동시에 갖춘, 공화당이 ‘기다리던 후보’에 그중 근접해서 일 것이다.
그러나 이제 시작일 뿐이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자기 자신은 별 노력도 없이, 오랜 기다림에 지쳤던 유권자들이 반가운김에 몰아준 지지를 어떻게 계속 유지할 것인가.
페리는 운이 좋은 정치가다. 지금까지의 선거전적은 9전9승, 한 번도 패한 적이 없다. 그 운을 이번에도 이어가려면 페리에게는 반드시 넘어야할 두 개의 높은 장애가 있다.
하나는 그의 극단적 보수 성향이다. 경선에선 현 공화당의 핵심 에너지인 티파티와 보수기독교인을 동원시키는 동력이 되겠지만 무소속이 당락을 좌우하는 본선에선 이야기가 달라진다. 아무리 오바마에 실망했다 해도 소셜시큐리티를 폐지하고 텍사스를 연방에서 분리시키자는 대통령을 원하는 유권자는 많지 않을 것이다. 그의 본선 경쟁력은 “일자리 창출에 성공한 행정경험을 바탕으로 경제를 살리는 대통령이 되겠다”는 공약이 표밭에 어필할수록 강화될 것이다.
또 하나의 장애는 ‘부시’다. 미국은 다시 ‘텍사스 카우보이 대통령’을 맞을 준비가 되었을까. 아직 그토록 진저리치며 결별했던 조지 W. 부시에 대한 기억이 생생한데…
겉으로 보면 부시와 페리는 공통점이 많다. 둘 다 막대한 선거자금을 단시간에 거두어들인 극우보수 표밭에서 인기 높은 텍사스의 공화당 주지사이며 독실한 기독교인이다. 텍사스 억양의 직설적 말투도 비슷하고 걸음걸이와 학교성적 신통치 않은 것도 닮았다. 그러나 ‘실패한 대통령’ 부시와의 비교가 페리에겐 당연히 부담스럽다.
“난 릭 페리이고 그는 조지 부시다” - 아이오와에서 기자들의 질문등쌀에 페리가 던진 선언이다. “무엇이 다른가” “그는 예일 졸업생이고 난 텍사스 A&M를 졸업했다”
페리는 부시가 아니다. 둘 다 낮은 세금, 규제 완화,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보수주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많이 다르다. 가난한 시골 농부의 아들로 바닥부터 제 힘으로 올라온 페리는 티파티의 포퓰리즘을 마음속으로 공감하지만 뉴잉글랜드의 부유한 정치명문가 태생인 부시는 준비된 환경에서 출발한 정치 엘리트, 컨트리클럽 공화당이다.
주지사 시절부터 부시는 민주당과의 타협을 모색하며 초당적 합의를 강조했지만 페리는 강경 일변도로 당파적 접근을 서슴치 않는다. 부시가 주창해온 ‘온정적 보수주의’를 ‘정부의 낭비적 지출’의 동의어쯤으로 여기는 페리는 저소득층 서비스저하에 대해 우려하면 “캘리포니아나 뉴욕으로 가라”고 몰아붙인다. 교육은 부시의 최우선 과제였지만 페리는 균형예산을 위해 교육기금 40억 달러를 단칼에 잘라버렸다. 텍사스의 한 정치학자는 민주당에게 이렇게 조언한다. “릭 페리를 만나보라, 조지 부시가 그리워질 것이다”
페리와 부시는 관계도 냉랭하다. 민주당 주 하원의원에 당선된 페리를 설득해 공화당으로 입당시킨 것은 부시의 수석참모 칼 로브였지만 깊은 우정은 싹트지 못했다. 양 진영의 갈등은 98년 부시의 주지사 재선 때 페리가 부지사로 출마하면서부터 불거졌다. 네거티브 캠페인을 하지 말라는 부시진영의 명령에 페리측이 불복한 것이다. 압승이 보장된 부시와 달리 페리는 강적을 만났기 때문인데 네거티브 선거전을 강행한 덕분인지 페리도 승리는 했다. 이때부터 표면화된 양측의 적대관계는 2007년 페리가 줄리아니의 대선 캠페인을 도우며 “부시는 재정적 보수가 아니다”라고 공개 비판하면서 더욱 악화되었다.
엊그제 페리가 벤 버냉키 연준의장을 겨냥, 그가 “정치를 위해 돈을 더 찍어내는 것은 반역적”이라면서 “텍사스에서라면 혼쭐이 날 것”이라고 협박성 발언을 쏟아내 구설수에 올랐을 때 “대선후보답지 못하다”며 강한 비판을 날린 사람 중 하나도 로브였다.
그러나 지금 부시와의 거리두기는 페리에겐 양날의 칼이다. 부시의 그늘을 벗어나는 데엔 도움이 되겠지만 아직도 공화당 내 막강세력인 부시 측근의 반감은 선거모금에서부터 사사건건 후보 페리의 발목을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본선경쟁력이든 부시의 그늘이든 페리 앞에 놓인 장애의 비중은 앞으로 10여개월 경제상황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경제가 나빠질수록, 오바마의 지지율이 하락할수록 공화후보의 ‘본선 경쟁력’ 비중은 약해질 것이다. 부시 닮은 페리의 카우보이 스타일 역시 ‘일자리 창출하는 경제 대통령’(설사 거품이라 해도)에 대한 간절한 기대 앞에선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박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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