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직 우승 못했어도 상금은 1,000만달러 이상 챙겼기에
▶ PGA 스타 본보방문 ‘솔직-담백’ 인터뷰
전미 주니어골프 랭킹 1위에 오른 뒤 만 17세의 나이로 고교를 중퇴하고 프로로 전향했다. 너무 성급하게 프로가 된 것 아니냐는 비판과 우려가 많았지만 그는 만 20세의 나이로 ‘지옥의 관문’이라는 PGA투어 퀄리파잉스쿨을 통과해 당당히 PGA투어 카드를 따냈고 이후 8년간 한 번도 카드를 놓치지 않고 꾸준하게 좋은 성적을 올려 이젠 20대 후반의 아직 젊은 나이에도 불구, 당당한 PGA투어 베테랑 대열에 들어섰다. 한인으로는 최경주에 이어 2번째 PGA투어 멤버이며 코리안-아메리칸으로는 제1호 선수. 바로 케빈 나(27·한국명 나상욱)다.
다음달 15일에 만 28세 생일을 맞는 그는 PGA투어에서 8년간 활약하며 상금으로만 1,000만달러가 넘는 거액을 벌어들였다. 하지만 아직 우승이 없다. 출전한 208개 대회 가운데 13%가 넘는 28개 대회에서 탑10에 올랐지만 정작 우승은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 그에게 가장 아픈 구석인 것은 ‘물어보나마나’다. 하지만 그는 인터뷰 시작하자마자 첫 마디에 묻지도 않은 그 이야기부터 먼저 끄집어냈다. 올해 한 홀에서 16타를 친 ‘참사’도 그가 먼저 거론했다. 시종 쾌활하게 숨김없이 모든 것을 털어놓는 그와의 ‘솔직-담백’ 인터뷰는 1시간이 넘는 시간이 언제 지나갔나 싶을 정도로 흥겹고 유쾌했다.
프로 전향 10년이 됐다. PGA투어에서 번 상금만 1,000만달러가 넘을 정도로 뛰어난 성적을 올렸다. 그런데 아직 우승이 없다. 아직 첫 승을 못한 것에 대한 스트레스를 느끼나.
▲(PGA투어 역사상) 우승 못한 선수 중에서 내 통산 상금랭킹이 3위다. 브렛 퀴글리와 브라이니 비어드가 1, 2위로 알고 있다. 그 사실로 정말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주변에서도 워낙 많은 분들이 말씀하셔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다. 심지어는 꿈에서도 준우승하는 꿈을 굉장히 많이 꿨다. 그러면 잠에서 깨어나서 화를 냈다. “나는 꿈에서도 2등을 한다고”
지난해 베이힐 인비테이셔널에서 우승찬스를 잡았는데 비로 인해 경기가 중단되면서 모멘텀을 잃어 결국 우승을 놓쳤다. 경기를 마치고 걸어가며 캐디에게 “나는 언제 우승하냐. 또 좋은 기회를 놓쳤다”고 푸념을 했다. 그때 함께 가던 짐 퓨릭이 이런 말을 했다. “네가 가장 (우승을) 기대하지 않을 때가 될 것”이라고. 그리고 “넌 정말 잘하고 있으니 곧 차례가 될 것”이라고 해줘 위로를 받았다.
아주 친하게 지내는 용은이형(양용은)도 함께 밥 먹을 때마다 “케빈아, 우승을 하려고 하지마라. 마음을 비우면 자연스럽게 우승이 찾아올 거다. 내가 PGA챔피언십에서 우승할 때도 우승하려고 친 게 아니라 마음을 비우고 치다보니 우승트로피가 나에게 찾아왔다”고 이야기해줬다. 그러면 나는 “형이야 우승했으니까 그런 말을 하지”라고 받아치지만 그 말에 위로를 받으며 다음엔 마음을 비우려고 노력하게 된다.
-그렇다면 자신의 첫 승은 언제나 올 것 같나.
▲반드시 올 것이라고 믿는다. 어쩌면 올해에도 가능하다. 얼마전 스윙을 완전히 바꿨는데 3개월간 깊은 슬럼프를 보내다 약 2주전에 마침내 감이 왔다. 요즘에 아주 공이 잘 맞고 있다. PGA챔피언십에서 10등한 것도 그 덕이다.
-올해 (텍사스오픈에서) 한 홀에 16타를 치기도 했다.
▲그것 때문에 더 유명해졌다. 사실 15타라고 나왔는데 내가 TV 화면을 보니 헛스윙 한 것을 카운트하지 않아 내가 지적했다. 내가 한 타를 더 보탠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것은 내가 그 다음주에 9등, 2주 후에 5등을 했다는 것이다. 또 16타를 친 뒤 나머지 홀에선 3언더파를 쳤다.
-그런 악몽의 순간에 무슨 생각이 들었나. 그 다음 홀엔 경기를 포기하고픈 생각이 없었나.
▲포기할 수가 없는 것이 90타를 칠 수는 없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웃음). 망신스럽게 어떻게 90타를 치냐는 생각만 뇌리에 있었다.
-굉장히 유머러스한 면이 있는데.
▲나는 심각한 사람이 아니고 사실 굉장히 유머가 많은데 많은 사람들은 그 사실을 모른다. TV에서 보면 항상 신중하고 심각한 모습만 비춰지기 때문이다. 그래도 옛날보다는 많이 좋아졌다. 사실 예전에 나는 내 볼을 치기가 바빠 이미지는 챙길 여유가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보니 내 이미지가 별로 좋지 않더라. 그래도 이제는 마음의 여유가 생겨 TV화면에서 웃는 모습도 나온다.
-다시 우승이 없는 문제로 돌아가서. 우승이 없는 가장 큰 이유는 무어라고 생각하나.
▲드라이버 스윙이다. 내 드라이버 스윙은 정확한 타이밍을 요구하는 스타일이
어서 컨디션에 따라 기복이 많았다. 따라서 중요한 상황에서 페어웨이를 놓치는 일이 너무 많았다. 이런 일이 너무 많아 결국 올해 대수술을 통해 드라이버 스윙을 뜯어 고쳤다. 내 첫 코치인 부치 하먼은“너는 다른 것은 완벽한데 오직 드라이버가 수퍼 장타가 아니니 확실하게 똑바로 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내 평생의 숙제다.
-우승을 놓친 아쉬움이 가장 큰 대회가 있다면.
▲너무 많다. 우선 지난해 베이힐 대회는 비가 경기가 중단되지 않았다면 이길 수 있었던 대회였고 올해 리비에라대회(노던 트러스트오픈)도 아쉬웠다. 2005년에도 두 번 2등을 했는데 사실 그때는 내가 너무 어렸다.
-애리조나 대회에서 특히 성적이 좋은데.
▲주니어시절부터 거기선 성적이 잘 나왔다. 날씨가 건조한 것을 좋아하는 체질인 모양이다. 오죽하면 투어에서 내 별명이 ‘애리조’ 나다.
-이번에 PGA챔피언십에서 첫 메이저 탑10 입상을 이뤄냈다. 자신감 측면에서 변화가 있을텐데.
▲물론이다. 사실 그동안 메이저에선 성적이 좋지 못했고 나갈 때도 “아직 메이저는 힘들다”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이번 대회를 통해 “나도 메이저에서 찬스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다음 주부터 페덱스컵 플레이오프가 시작된다. 목표는.
▲(최종전인) 투어챔피언십에 나가는 것이다. 현재 페덱스컵 랭킹이 45위이니
30위까지 이를 끌어올려야 한다.
-지난 2001년 17세에 고교를 마치기 전 프로로 전향했다.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때 결정을 어떻게 평가하나.
▲좋은 질문이다. 예전에는 그 결정이 잘 한 것이었다고 믿었다. 하지만 얼마 전부터 “내겐 대학추억이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내가 17세때 뷰익 인비테이셔널에 아마추어로 출전했을 때 마크 오메라가 해 준 말이 기억난다. 그는 “왜 그렇게 빨리 프로가 되려하냐”면서 “PGA투어는 항상 여기 있고 너를 기다릴 것”이라고 말해줬다. 하지만 그땐 그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고 한참 시간이 지나서야 대선배의 조언이 옳았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후배들에게도 꼭 하고 싶은 말이 이것이다. 아무리 빨리 프로에 오고 싶어도 최소한 단 한 학기라도 대학을 다닌 뒤 프로로 돌라는 것이다.
-PGA투어에서 소문난 ‘슬로우 플레이어’로 알려졌는데.
▲인정한다. 사실 티박스에서 그린까지는 절대 느리지 않은 대 퍼팅 그린에서 느리다. 캐디와 꼭 상의해 라이를 잡는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하지만 노력하면서 점차 좋아지고 있다. 하지만 한 번 찍히면 그 이미지가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이제 곧 28살이다. 결혼 생각은 없나. 사귀는 여자친구나 이상형은 있나.
▲아직 3살 위의 형(조상현- 경희대 골프경영학과 교수)이 미혼이라서 별 부담이 없다. 어머니도 32살쯤에 결혼하라고 하신다. 사귀는 사람은 없다. 사실 1년에 8개월을 밖에서 돌아다녀야 하니 사람 사귀는 것은 쉽지 않다. 키 크고 마음씨 착한 한국여자면 된다.
-PGA투어를 꿈꾸는 어린 선수들에게 해줄 말이 있다면.
▲어려서부터 몸 관리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많은 어린 선수들이 연습은 열심히 하는데 몸관리하는 법은 모른다. 연습보다 몸이 중요하다. 부상 때문에 커리어를 망치는 선수들을 너무 많이 봤다.
-타이거 우즈 질문을 안할 수 없다. 그가 재기할 수 있다고 보나.
▲대부분 PGA투어 선수들은 우즈가 못치는 것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 그는 PGA투어의 얼굴이고 그가 잘해야 PGA투어도 살아나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도 타이거의 팬이다. 그가 재기할 수 있다고 믿지만 쉽지는 않을 것이다. 골프가 워낙 민감한 스포츠이기 때문이다. 그가 다시 세계 1위로 돌아오길 진심으로 원하지만 예전의 압도적인 타이거의 모습은 다시 보기 어려울 것 같아 많이 아쉽다.
-골퍼가 아닌 한 인간으로 케빈 나는 어떤 사람인가.
▲정이 많고 마음이 약하다. 잘 알면 매우 밝은 편이다. 하지만 대회 중 TV에 비친다고 해서 승부의 와중에 마냥 웃을 수는 없다. 승부가 먼저이기 때문이다.
-목표는 무엇인가. 첫째는 골퍼로서, 둘째는 한 인간으로서.
▲골퍼로는 오랜 커리어동안 꾸준한 상승세를 보이고 후배들에게 존경받는 선수가 되고 싶다. 인간으로서는 좋은 남편과 아버지가 되는 것이다.
<김동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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