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한국에서는 서울시가 발의한 무상급식 주민투표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선 교육감이 선거공약으로 내세웠던 무상급식제도를 실시하려고 하자 서울 시장이 이를 막으려 나섰고 급기야는 이 정책을 주민투표로 결정하자는 것이다.
정치권도 양쪽으로 갈려 여당은 서울시를 지원하기로 결정하고 야당과 시민단체들은 주민투표 반대운동에 들어가기로 했다고 한다. 또한 서울시 교육청은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 심판청구와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하겠다고 한다.
나는 한국 현지의 상황과 서울시정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기에 이러한 무상급식 논쟁에 대해 어느 한 쪽의 편을 들고자 하는 의도는 없다.
단지 내가 교육위원으로 일하는 버지니아주 훼어팩스 카운티 교육청의 무상급식 제도를 간단히 설명하자면, 우리의 학교급식제도는 일률적인 무상급식이 아니고 빈곤층에게 선별적으로 주어지는 혜택이라고 할 수 있겠다. 즉, 빈곤층 학생들 중 원하는 학생들에게만 무상이나 할인된 가격으로 식사를 제공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일률적인 무상급식제도의 실시를 원하는 측의 주장처럼, 훼어팩스의 경우에서도 중고등학교 학생들 중에서 이 제도의 혜택을 받는 비율이 초등학교 학생들에 비해 현저하게 떨어지는데, 이는 학생들이 사춘기 나이에 들어서면 가정의 재정형편이 넉넉지 못하다는 사실이 남에게 알려지는 것이 싫어 무상급식제도 활용을 꺼려한다는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한국에 비해 이곳 미국에서는 교육의 지방자치가 훨씬 잘 되어 있다. 교육의 지방자치 정도는 사실 교육재정 지원을 어디서 하느냐가 중요한데, 훼어팩스 카운티의 경우를 본다면 필요한 교육예산의 75% 가량이 카운티 정부로부터 나온다. 그러기에 연방정부나 주정부가 카운티 교육행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부분이 상대적으로 적다.
그러면 75% 정도의 예산을 책임지고 있는 카운티의 수퍼바이저 위원회에서 교육정책과 예산 집행부분에 크게 간여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물음이 제기될 수가 있겠다. 그러나 교육예산을 지원할 때 예산을 항목별로 정해 주지 않고 전체 액수를 정해 넘겨주기 때문에 아무리 카운티 전체 예산을 심의, 감독하는 수퍼바이저 위원회라 하더라도 교육예산을 심의하고 교육정책을 수립, 집행하는 교육위원회의 교육행정에 간섭할 수 없다.
그 비근한 예가 7월 1일부터 시작된 새 회계연도의 교육예산을 수립하는 과정 중에 있었다. 수퍼바이저 위원회에서는 카운티 직원들의 임금을 이번 해에도 동결시키면서 교육위원회도 같은 조치를 취해 주기를 바랐다. 즉, 교직원들의 임금을 지난 2년과 마찬가지로 동결해주기를 희망했던 것이다.
그러나 교육위원회에서는 교직원들의 사기 진작과 경제적인 필요를 고려해 전체적으로 평균 3%정도의 임금인상을 해주기로 예산을 수립했다. 교육위원회가 카운티 수퍼바이저회의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았을 때 수퍼바이저들 나름대로는 불쾌했겠지만 법적으로 자치가 보장되어 있는 교육위원회의 결정에 대해 제재를 가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그런데 최근 카운티의 지난 회계연도의 결산에서 자그마치 1억불 이상의 흑자가 있는 것으로 알려지자 수퍼바이저 위원회에서 카운티 직원들의 봉금을 1.5% 정도 인상해 주자는 논의가 있었다고 한다.
재미있는 것은 이러한 논의 내용이 알려지자 카운티 직원들이 반발하고 나섰다는 것이다. 1.5% 정도의 인상이라면 차라리 받지 않겠다는 것이다. 주위의 다른 카운티들이나 특히 훼어팩스 교육위원회가 교직원들에게 주기로 결정한 임금 인상 폭에 비해 1.5%는 너무 적다는 것이다. 결국 임금 인상에 관련해서는 교육위원회의 판단이 옳았음이 증명되었다.
한국의 무상급식제도 주민투표 논란 소식을 접하면서 훼어팩스의 교육위원으로서 우리의 뿌리 깊은 교육자치 전통이 얼마나 감사해야 할 일인지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선거와 공청회 등을 통해 주민들의 의사를 반영하고, 외부의 간섭 없이 자치적으로 교육정책과 행정을 펼쳐나갈 수 있는 이곳의 교육자치제도가 나는 무척 자랑스럽다.
문일룡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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