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질서를 결정짓는 가장 강력한 정치적 요소는 무엇일까. 증권시장이다. 종교다. 민주주의와 인권이다. 핵무기다. 각양의 답이 제시된다. 한 정치학자는 내셔널리즘으로 규정했다.
어찌 보면 가장 원초적인 이데올로기가 내셔널리즘이다. 그런데도 21세기에 들어선 오늘날에도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다. 내셔널리즘이 터부시됐던 서구의 정치에서도 내셔널리즘은 키워드가 됐다. 그래서 내려진 결론인 모양이다.
유럽의 근대와 현대사는 내셔널리즘의 각축역사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그 유럽의 역사는 전쟁으로 점철됐다. 수천만의 인명을 앗아간 20세기의 양차 세계대전이 그 클라이맥스다. 때문에 내셔널리즘은 포스트 모던의 서구에서 금기어가 되고 만 것이다. 그 유럽에서 그런데 내셔널리즘이 요즘 들어 기승을 떨고 있는 것이다.
프랑스적 가치를 옹호하자.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벌이고 있는 운동이다. 고든 브라운 전 영국총리가 즐기던 화두는 ‘Britishness’였다. 영국적인 것을 되찾자는 이야기다.
유럽연합(EU)으로 하나가 됐다. 그 유럽에서 경제침체에, 이민문제가 클로즈업 되면서 새삼 제창되는 게 내셔널리즘이다. 가장 개방된 스칸디나비아 3국도 예외가 아니다.
‘PIGS’로 통칭되는 지중해연안 유럽 국가들과 독일 등 북유럽 국가들의 갈등도 바로 이 내셔널리즘의 산물이다. 하여튼 내셔널리즘이란 프리즘을 통하지 않고는 오늘날 유럽이 안고 있는 갈등, 해외정책 등은 제대로 이해될 수가 없을 정도다.
오사마 빈 라덴은 왜 실패했나. 그 답 역시 내셔널리즘에서 찾아진다. 테러리즘을 통해 반(反)서방주의를 고취시키면 국적을 초월한 이슬람이스트운동이 벌어질 것으로 기대했었다. 이는 아랍세계의 내셔널리즘을 간과한 데서 온 착각이라는 거다.
미국의 중국 전략도 같은 오류를 범했다. 세계시장으로 끌어들이면 중국은 기존 미국 중심의 국제질서에 순응할 것이라는 게 미국의 생각이었다. 중화민족주의가 중국이 지닌 세계관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을 미처 깨닫지 못한 데서 내려진 진단이었다는 게 뒤늦은 지적이다.
그 내셔널리즘이란 것이 그렇다. 식민지시대를 경험한 나라의 경우 발전의 동력 역할을 하는 것이 사실이다. 반면 일종의 마성(魔性)을 지녔다. 맹목적인, 배타적인 내셔널리즘은 증오의 확산에 유혈사태를 몰고 온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어서 하는 말이다.
그래서인지 아인슈타인은 내셔널리즘을 소아병으로 비유했다. 인류의 홍역이라는 것이다.
이야기가 길어진 것은 다름 아니다. 광복절을 전후해 올해에도 한국과 일본이 또 다시 ‘뜨거운 여름’을 맞아서다. 2000년대 들어서 하나의 기이한 현상이 대두됐다. 3.1절, 8.15 광복절 등 시기만 되면 한국과 일본의 네티즌들은 사이버 전쟁을 벌여온 것이다.
그 싸움은 이런 식으로 전개된다. 두 나라의 극단주의자들이 사건을 연출해 마찰과 긴장의 수위를 높인다. 그 긴장감은 젊은 세대 누리꾼들에게로 파급돼 서로를 비방하는 사이버전이 전개되는 것이다.
올해도 예외가 아니다. 연초부터 독도문제에서, 교과서문제 등으로 불이 붙은 양국 간의 감정싸움은 일본배우의 한류 폄하 발언 등 악재가 잇달아 터지면서 확산돼 왔다.
분위기가 더욱 험악해진 것은 3명의 자민당 의원들의 정치 쇼 때문이다. 독도문제와 관련해 울릉도를 방문하겠다며 공항에서 농성시위를 벌였던 것. 이에 자극받아 만 단위가 넘는 한국의 네티즌들이 광복절을 맞아 일본 최대 커뮤니티 사이트 공격대열에 가담한 것이다.
반일(反日)여론은 오프라인에서도 폭발할 조짐이다. 일부 단체의 일본 상품불매운동이 벌어지는 등 상황은 악화일로에 있다.
여기서 한 가지 되짚어볼 사안이 있다. 지난 5월의 한국 야당국회의원들의 쿠릴열도 방문이 그것이다. 한국의 국회의원들은 분쟁지역인 쿠릴열도의 쿠니시리섬을 러시아 영토를 경유해 들어갔다. 이는 러시아의 영유권을 인정하는 행위다. 한국국회의원들은 분쟁영토 시찰명목이란 명분을 내세웠지만 당연히 일본을 자극하는 결과가 된 것이다.
그리고 발생한 게 일본 극우파 의원들의 울릉도 방문소동이다. 무엇을 말하나. 감정싸움을 중재할 책무가 있는 정치인들이 오히려 감정싸움에 불을 붙인 것이다. 누군가의 말대로 ‘국제 감각도 없고 단세포적인 현실 인식 밖에 없는 정치인들이 빚은 희비극’이 독도사태인 것이다.
일본의 정치리더십 부재는 위험수위에 왔다. 그 결과 벌어지는 것이 일부 의원들의 ‘막가파’식의 소영웅주의 행동이다. 오직 표를 위한 표퓰리즘적인 행보에 거리낌이 없는 것이다.
한국 정치인들의 대응자세는 한술 더 뜬다. 장관이란 사람이 군복차림으로 독도로 달려가 보초를 섰다. 독도문제가 현안이 되자 정치인들은 너도 나도 독도로 달려갈 기세다. 사진에 찍히기 위해서다. 이 정도면 가히 코미디 수준이 아닐까.
“애국심은 악당의 마지막 피난처다.” 영국의 문학가 새뮤얼 존슨이 일찍이 남긴 명언이다. 내셔널리즘의 물결이 넘실대는 시대, 포퓰리즘이 날뛰는 시대에 양식 있는 참 정치지도자를 기대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무리일까.
옥 세 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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