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면 시인을 인터뷰할 기회가 종종 있다. 매년 이맘 때 문학세미나를 여는 문학단체들이 한국서 유명한 문인들을 강사로 모셔오기 때문이다. 지난 2년 동안에만 고은, 도종환, 황동규, 나태주, 문정희, 안도현 시인을 만났는데, 이런 분들을 인터뷰할 때면 꼭 빼놓지 않고 해보는 질문이 있다. 시는 무엇이며 시인은 무엇인가, 하는 본질적인 물음이다. 이에 대해 평생 시를 쓰며 살아온 이들의 답변은 그 자체로 시라고 해도 될 만큼 간단하고 명쾌하며 역시 본질적이어서 시와 문학에 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한국의 대표시인 고은(78) 선생은 “내 삶이 시이기를 바라고, 시가 나의 삶이기를 바란다”는 두 마디로 시인의 삶을 표현했다. 나태주(66) 시인은 “시인 아니면 다른 것이 될 수 없는 것이 시인”이라 했고, 문정희(64) 시인은 “시를 쓰려면 운명을 걸어야 한다”며 “나는 쓴다 고로 존재한다”고 했다. 황동규(73) 시인은 시가 무엇이냐는 물음에 “모르겠다”고 했다. 세월이 갈수록 시가 뭔지 정말 모르겠다는 것이다.
이토록 어렵고 대단한 문학 장르가 전세계에서 한국인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고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위의 시인들도 모두 동의하는 바, 우리나라처럼 시인이 많고 시를 많이 쓰는 민족이 없다고 한다. 우리는 결혼식에서도 축시를 읽고, 장례식에서도 조시를 읽으며, 교지나 문집 같은 데도 첫 장에 꼭 시를 써넣는 민족이다. 일간신문에 정기적으로 시를 싣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을 것이다. 시집 출판도 다른 나라들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많고, 시 전문지만 100개가 넘는다고 한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시를 읽는 사람보다 쓰는 사람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문정희 시인은 “요즘 한국서 시창작교실을 열면 80명 정원에 1,200명이 모여든다”고 했다. 나태주 시인은 “독자보다 시인이 많은게 지금 한국시단의 현실”이라며 “수많은 시 잡지들이 시인들을 줄 세워 문단을 권력화하고 패거리를 형성하는 도구로 변질됐다”고 개탄했다.
‘시인 인플레’ 현상의 이유는 여러 가지로 분석될 수 있겠으나 해체주의의 한 단면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너도 나도 인터넷으로 글을 써대고 퍼 나르다보니 내것 네것이 없어지고 무대와 관객의 경계도 없어져 다들 무대에 서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당연히 아마추어리즘이 대두되고, 지금 미주한인 문화예술계가 바로 이 현상의 대표무대라고 보면 된다. 특히 심한 분야가 문학이고, 문학 중에서도 시가 제일 만만하다.
미주한국문인협회의 회원목록을 보면 100여 문인 중 시인이 거의 70명으로, 수필가와 소설가보다 몇배나 많다. 매년 한국일보 문예공모 응모작 숫자를 보아도 단편소설과 생활수기는 대략 60-70편 정도인데 비해 시는 언제나 300편이 훨씬 넘게 들어온다.
왜 시인가? 짧기 때문에 쓰기 쉬워서 그런가? 그렇다면 이렇게 짧은 시는 어떤가?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못 본/ 그 꽃”(고은 ‘그 꽃’)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정현종 ‘섬’) “도대체 내가 무얼 잘못 했습니까”(이외수 ‘지렁이’)
한두 줄로 이런 감동을 주기 위해 시인들은 일년 365일 자나 깨나 앉으나 서나 시를 쓰고 있다. 올해 제11회 미당·황순원 문학상 본심 후보에 올라있는 이수명(45) 시인은 “어린 시절부터 숨쉬기와 비슷한 수준으로 글쓰기를 했다”고 한다. 문정희 시인은 “책상이 나의 우주”라며 “늘 책상에 앉아 읽고 쓴다”고 했다. 도종환 시인은 “수백편을 쓰는 동안 고르고 또 고르고, 버리고 또 버려서 좋은 시 한 편을 얻으라”고 했다.
시는 쓰는 것이 아니라 짓는 것이다. 밥을 짓고 농사를 짓고 집을 짓고 이름을 짓듯이, 나의 생각과 감정, 경험과 영감을 다듬고 걸러서 지어내는, 그리하여 소설책 한권이 구구절절 써내려간 이야기를 단 몇 줄로, 아니 그보다 더 큰 감동으로 독자를 울리기도 하는 참으로 어려운 언어의 담금질이요, 절해고도의 깊은 샘에서 퍼올리는 영혼의 외침이다.
시를 쓰는 사람이 많아지는 것은 정말 좋은 일이다. 다만 ‘시인’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시인행세, 문단정치에만 혈안이 된 사람들이 문제다.
올해 초 이곳 재미시인협회가 둘로 갈라졌다. 다들 책상에는 앉아있지 않고 나와서 패싸움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저렇게 거칠고 험악한 원망과 악다구니도 다듬고 거르면 좋은 시를 지을 수 있는지, 정말 궁금해졌다.
정숙희 특집 1부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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