갖가지 경제 악재가 터지면서 오바마 대통령의 재선 전망이 비틀대고 있지만 2012년 대선을 바라보는 공화당의 속내도 그리 밝지는 못하다. 승산의 분위기는 역력한데 믿을만한 선수가 없는 것이다. 9명이나 되는 후보가 뛰고 있지만 검증된 능력의 베테란도, 표밭의 열기를 일깨울 뉴페이스도 보이지 않아서다.
관심권 밖으로 밀려났던 공화당 대선가도에 이번 주말은 아주 중요하다. 모처럼 뉴스의 조명 속에 대선전 판도를 바꾸는 ‘운명의 주말’이 될 수도 있다.
일단 시선이 쏠리는 곳은 아이오와 주의 에임스, 인구 6만이 채 안 되는 작은 대학도시다. 이곳에서 오늘 후보들의 TV 공개토론이 열리고 이틀 후인 토요일 에임스 모의투표가 실시된다. ‘에임스 모의투표’는 그 예측성능을 믿거나 말거나 지난 30여년 공화당 경선초기 후보들의 경쟁력을 테스트하는 첫 관문으로 정착해왔다.
진짜 목적은 아이오아 주공화당의 기금모금이다. 후보들은 행사장에 텐트를 치고 지지유권자들을 버스에 태워 동원한다. 30달러짜리 입장권과 공짜 바비큐, 공짜 음료수에 공짜 밴드연주까지 제공받은 유권자들은 모의투표를 한 후 후보들의 스피치를 들어주며 하루를 즐긴다…
무료 서비스와 함께 텐트 자리 값까지 내야 하니 후보들의 출혈은 상당하다. 금년엔 9명 후보 중 3명은 텐트를 치지 않았다(투표용지엔 9명 후보의 이름이 다 올라있고 이들 외에 자신이 원하는 잠정후보의 이름을 써넣는 빈칸도 있다) 선두주자 미트 롬니는 경비 들여가며 “굳이 테스트 받을 필요가 없어서”, 존 헌츠먼은 평소 에탄올 연료개발을 반대한 자신은 “옥수수의 고장 아이오와는 어차피 포기했으므로”, 재정난이 심각한 뉴트 깅리치는 “돈이 없어서” 참석을 하지 않고 나머지 6명만 각각 1만5000달러에서 3만1000달러까지의 자리 값을 내고 텐트를 쳤다.
결국 돈 주고 표를 사는 셈인 데다 아무런 구속력도 없고 모의투표의 승자가 경선의 첫 투표인 내년 초 아이오와 코커스나 지명전의 최후승자가 된다는 통계적 확률도 낮다. 그래서 무의미한 정치적 서커스로 폄훼당하기도 하지만 관례적 비중은 여전히 크다.
성공적으로 통과하면 후보로서 입지가 강화되지만 여기서 하위권으로 처진 여러 후보가 중도하차의 결단을 내리기도 했다. 판세를 정리해주는 ‘솎아내기’도 에임스 모의투표의 역할인 셈이다.
금년의 관전 포인트는 단연 미셸 바크먼과 팀 폴렌티의 대결이다. 아이오와 코커스 승리를 타겟으로 집중 공략해온 폴렌티도, 아이오와 태생으로 티파티 후보임을 자처해온 바크먼도, 에임스에서 승리하지 못한다면 자금줄부터 마르기 시작할 것이다.
이들에겐 생사가 걸린 중대사이지만 이날 모여들 700명 취재진의 관심을 독차지하진 못 할 듯싶다. 미디어의 가장 화려한 각광은 투표용지에 이름조차 오르지 않은 ‘새 후보’에게 쏟아질 테니까.
지난 몇 달 출마설만 무성한 채 말을 아껴왔던 릭 페리가 드디어(?) 이번 주말 태도를 밝힌다. 공식 선언도 아닌 정치 컨벤션에서 출마의사를 밝히는 것이지만 페리의 등장은 일대 사건이다. 공화 대선전의 판세를 완전히 바꾸는 ‘게임체인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주말 행보도 드라마틱하다. 남의 잔치 초치기는 아니라지만 모의투표 당일인 13일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출마의사를 밝히고 뉴햄프셔로 날아갔다가 14일엔 아이오와로 입성한다. 초기경선이 실시되는 3개주를 단숨에 돌며 모의투표 승자가 받을 조명까지 공유하게 된다.
11년째 재임 중인 최장수 텍사스 주지사 페리(61)에게 거는 공화당의 기대는 대단하다. “누가 오바마를 이길 수 있나? 누가 롬니의 대안이 될 수 있나?
이 두가지 목표를 만족시킬 수 있는 최선의 후보가 페리”라고 영향력 있는 보수 블로거 에릭 에릭슨은 말한다. 바크먼 못지않게 티파티와 극우 기독교그룹 등 보수진영의 정서와 맞으면서도 롬니 못지않게 기업 커뮤니티의 인정을 받는 본선 경쟁력을 갖춘 후보라는 뜻이다.
“오바마 통치아래 미국이 고실업률과 경기불황에서 허덕일 때 페리가 통치하는 텍사스는 미 전국 새 일자리의 절반을 창출해내며 경기활성화를 이끌었다” - 이 절대적 강점을 자랑하는 그는 선거에 진 적 없고 중도에 선 적 없는 확실한 보수주의자며 “사랑과 존경보다는 두려움의 대상이 되기 원하는” 정치가다.
그가 예상대로 선두주자 롬니를 위협하는 강력한 라이벌이 될지, 처음 올라 본 전국 무대에서 실수를 거듭하며 곤두박질 칠 지는 아직 두고 보아야 한다.
한 가지, 그의 등장으로 시들시들하던 공화 경선이 긴장하며 생기를 띨 것은 확실하다. 공격적인 페리의 거침없는 펀치가 날아들면 충돌을 피해온 롬니도 뜨거운 공방전에 휘말리지 않을 수 없다. 출마도 하지 않은 그가 이미 갤럽 조사에서 롬니에 이어 지지도 2위를 기록했으며 지명전 최종승률을 예측하는 베팅 인트레이드에선 35%로 롬니의 29%를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어떤 후보도 ‘에임스 전과 후’ 같은 모습일 수는 없다고 아이오와 공화당은 장담한다. 이 ‘운명의 주말’을 통과하며 ‘롬니와 여덟 난쟁이들’이 어떻게 변할까 궁금해진다. 페리는 과연 ‘거인’이 될 수 있을까.
박 록 주 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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