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템이 무너졌다.” “미국과 유럽이 맞은 정치?경제적 문제는 동전의 양면 같은 성격으로, 본질에 있어 다를 게 없다.” “서방의 자유민주주의체제는 자칫 붕괴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
유로존이 국가부채 위기로 흔들린다. 미국은 국가채무 상한(debt ceiling) 증액을 둘러싸고 나라가 두 동강이 나다시피 했다. 그 상황에서 들려온 소리들이다.
8월2일 데드라인을 앞두고 오바마 대통령과 하원을 장악한 공화당은 내내 극한적인 대치 가운데 힘겨루기만 해왔다. 결국 극적인 타결을 이루었지만 그동안 ‘정치 불장난’에 워싱턴 정가가 함몰되면서 일종의 민주주의 회의론이 대두됐던 것이다.
“미국은 정치적 트리플-A 시스템이 결여돼 있다.” 사상초유의 국가채무불이행 사태를 맞을 수도 있다는 우려가 팽배해지면서 오바마 대통령이 한 말이다. 미국헌법의 수호자인 대통령조차 미국의 민주주의 체제에 대해 의구심을 표명했던 것이다.
‘미국의 대의민주주의는 제대로 작동을 하고 있는가’-. 이는 일찍이 뉴욕타임스의 톰 프리드먼이 던진 질문이다.
지난 2009년 프리드먼은 “21세기로 한 사회가 나가는 데 있어 정치적으로는 어렵지만 극히 중요하고, 또 반드시 필요한 정책 결정에 있어서는 1당 체제가 더 바람직 할 수 있다”고 말함으로써 미국의 대의 민주주의체제의 비효율성을 지적하고 나섰던 것이다.
그가 언급한 1당 체제는 중국이다. 머지않아 중국이 미국을 제치고 세계 제1의 경제대국이 된다는 전망과 함께 서구 민주주의에 대한 회의론은 점차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그 분위기에 힘을 받은 게 중국의 논객들이다.
신화사 통신을 비롯해 중국의 언론은 서구국가들에서 정치경제적 위기가 발생했다 하면 항상 대서특필하고 나선다. 노르웨이에서 발생한 무차별살육 테러사건이 그 한 예다. 대대적으로 보도했음은 물론이다. 그리고 문제점을 나름으로 조모조목 파헤쳤다.
말하자면 노벨평화상을 선정하는 나라가 이 꼴이라는 식이라는 비아냥거림과 함께 달라이라마와 류시아보의 노벨평화상 수상 폄하공작을 펼친 것이다. 중국 입장에서 자유민주주의의 문제점을 파헤치기에 가장 호기를 제공한 것은 국가채무상한증액을 둘러싸고 워싱턴이 노출한 혼란과 무능력이었다.
관련해 일부에서 제기된 지적이 서구식 자유민주주의는 경제발전에 오히려 위해(危害)적인 체제가 아닌가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 대안으로 제시된 게 정치개혁 없이도 경제발전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이른바 ‘베이징 컨센서스’다. 과연 그럴까.
“민주주의가 경제적 부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독재체제하에서도 경제가 급격한 성장을 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경제를 일으키고 오랫동안 일정 수준의 이상 국가의 부를 유지해 온 나라들은 대부분이 민주주의 국가들이다.” 이코노미스트지의 반론이다.
“중국이 경제성장을 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1인당 소득수준으로 볼 때 미국의 15%에 불과하다. 인구 1000만 이상의 국가 중 1인당 GDP가 상위 랭킹에 드는 국가들은 미국, 네덜란드, 독일, 영국, 프랑스 일본, 한국 등 모두가 민주주의 국가다. 예외가 있다면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다.” 이어지는 반론이다.
중국이 민주화를 이룩하지 않고도 과연 이 대열에 낄 수 있을까. 이코노미스트지는 ‘베이징 컨센서스’에 상당히 회의적인 시선을 던지고 있다. 그러면서 중국 내부에서 들려오는 여러 가지 마찰음에 주목한다. 그 소리들은 그와 정반대의 시사를 던지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민주주의 역사가 쓰여 진다면 원저우(溫州)에서 발생한 고속철도사고는 특별히 언급될 것이다.” 사망자 수만 보면 작은 사고다. 스찬 대지진 때 8만 여명이 숨진데 비해 불과 40명이니까. 그러나 그 고속철도사고는 어쩌면 중국 민주화혁명의 발화점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진단을 내리고 있는 것이다.
다름에서가 아니다. 중국의 중산층이 격분했다. 거기다가 평소 같으면 당국의
지시에 잘 따르던 관영언론까지 공산당 지시에 반기를 들고 나섰다. 이를 심상치 않은 징후로 본 것이다.
고속철건설은 현 집권층이 체제의 운명을 걸고 추진한 국책사업이다. 그 고속철이 개통되자마자 크고 작은 사고가 잇따랐다. 그러다가 마침내 어처구니없는 사고가 난 것이다. 사고의 주범은 만연한 부정부패와 1당 독재 특유의 전시행정이다.
사고가 난 후에도 당국은 쉬쉬하며 은폐하기에 바빴다. 결국 중산층의 분노가 폭발한 것이다. ‘피로 얼룩진 경제성장을 원치 않는다’는 인민일보의 지적이 그 분노감을 대변하고 있다.
무엇을 말하나. 경제가 발전하고 중산층이 형성되면 보다 책임성이 있는 정치를 요구하게 된다. 정치적 개혁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것이다. 이는 민주화 과정의 하나의 정석 같은 수순으로, 종전의 주장이 옳았음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요약 하면 이렇다.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은 다원주의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아닌 1당 체제로 ‘베이징 컨센서스’는 어쩌면 머지않아 허구로 드러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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