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찬(부국장 대우/경제팀장)
‘경제대국’ 미국이 계속 체면을 구기고 있다. 2007년 리먼브라더스 파산 이후 금융위기를 겪고, 대공황이래 최악이라는 경제 상황으로 아직도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또다시 디폴트 문제로 흔들거리고 있으니 말이다. 구제금융이나 모라토리엄도 아닌 국가 파산 수준인 디폴트 위기의 막판까지 치달았다는 것은 사실상 큰 망신이다.
한국이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은 것은 외환 유동성의 문제 때문이었다. 모라토리엄이나 디폴트에 비유할 수준은 아니다. 하지만 구제금융을 받으면서 한국 경제는 IMF에 휘둘리고 타의에 의한 체질개선에 나서야 했다. 물론, 그 돈을 상환하기까지 전국민이 큰 고통을 겪어야 했다.
모라토리엄(moratorium)은 채무 지불 유예다. 당장은 아니지만 나중에 갚겠다는 선언이다. 1980년 멕시코, 1982년 브라질, 1987년 베네수엘라, 2009년 두바이 등이 모라토리엄을 선언했다. 디폴트는 채무상환 불이행이다. 민간기업으로 말하면 회사가 아예 파산을 하는 것이다. 실제로 채무를 아예 못갚겠다는 디폴트를 선언한 국가도 있다. 1998년 러시아, 2001년 아르헨티나 등은
부분적인 디폴트 수준으로 분류된다. 물론 이번 미국의 디폴트 사태는 직접적인 파산 수준의 문제는 아니었다. 이미 국가의 채무한도인 14조3,000억달러가 모두 차서 16조7,000억달러로 상향조정하지 않으면 국가적 디폴트상태에 빠진다는 것이다.
미국이 갖고 있는 외환보유고가 고갈돼 국가가 발행한 채권을 갚을 수가 없게 되면서 결국 디폴트가 될 수 있다는 수준의 경고인 셈이다. 그 동안 미국이 무섭게 불어나는 재정적자를 국채를 발행하여 근근이 메어왔던 것이 한계에 다다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미국이 이런 단계에 오기까지는 그다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90년대 클린턴 행정부 당시만해도 안정됐던 미국의 재정은 2001년 아프간전쟁과 2003년-2009년 이라크 전쟁 등으로 파산상태에 이르렀다.
미국의 국방비는 2000년 2,880억달러에서 2005년 5,181억달러로 2배 정도 많아졌다고 한다. 2012년에는 5,530억달러에 이른다.또 부시행정부는 ‘부자 감세’를 내세워 대기업이나 부유층에 대한 세금을 2조달러 정도 줄였고, 이로인해 세수가 줄어든 것도 부채 증가의 큰 이유로 지목되고 있다. 1998년 예산이 GDP 대비 1% 흑자 수준이었는데, 부시 행정부 말기인 2008년에는 3.2% 흑자로 돌아섰다. (대기업이나 부자들에게 세금을 깎아주면, 투자나 소비 진작으로 그 혜택이 국민들에게 돌아올 것이라는 허망한 믿음은 한국이나 미국이나 똑같은 것 같다. 부자 감세는 실제로는 부익부 빈익빈이라는 양극화를 가져오는 경우가 더 많다.)디폴트로 한바탕 소란을 떨었지만 전문가들은 실현 가능성이 높지 않았다고, 아니 거의 없었다고 예상하고 있었다. 기축통화인 달러를 발행하는 최강국의 파산이라는 것은 아직까지는 있어서도, 있을 수도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미국의 정치적, 경제적 위상에 점차 금이 가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이 정치적, 경제적인 세계 유일의 ‘수퍼파워’로서 계속 남을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증폭됐다.이번 협상 타결에 대한 실질적인 효과에 대한 의문도 있다. 약간의 시간을 버는 수준이라는 평가도 있다. 부채 상한선을 2조1,000억달러 높였고, 정부지출을 10년동안 2조5,000억달러 줄이자는 것이지만 부채 증가 속도나 이자 등을 감안하면 그다지 큰 돈이 아니라는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2년뒤 또다시 디폴트 위기가 재발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한인사회 입장에서는 미국경제 회복이 되고 있다는 믿음이 깨지는 것이 가장 아쉽다. 가장 걱정이 되는 것은 디폴트 위기에 따른 미국의 신용등급 하락이다. 신용등급이 내려가면 주식 시장이 일정 기간 불안할 것이 예상되고, 채권 가격은 올라갈 전망이다. 시장의 불안정성이 높아지면 경제 회복은 그만큼 더디어질 것이 분명하다.또 모기지 이자율도 올라갈 가능성이 높다. 고정 모기지 이자율은 10년 국채 이자율과 함께 움직이기 때문에 신용등급이 낮아질 경우 외국이 투자자들이 미 국채를 팔게 되고 이자율은 올라 갈 것이기 때문이다.
잘살아보겠다고 미국에 왔는데, 어떻게 점점 더 살기 어려워지는지 모르겠다고 푸념하는 한인들이 많다. 물을 가득 담은 어항을 들고 조심스럽게 살얼음판을 걷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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