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프랑스, 독일 그리고 이탈리아. 4개국 수뇌가 뮌헨에 모였다. 한 장의 협정문에 서명하기 위해서다. 그 내용은 체코슬로바키아 영토의 3분의 1에 해당되는 수데텐 지역을 독일이 점령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이었다.
수데텐 지역은 독일인이 많이 거주하는 곳으로 히틀러는 독일계 주민이 핍박을 받고 있다는 억지 논리와 함께 이 지역의 병합을 주장해왔다. 그 압력에 결국 양보하고 만 것이다.
“크고 강력한 이웃나라와 대결하고 있는 조그만 나라에 동정하지만 그렇다고 잘 알지도 못하는 먼 나라를 위해 영국을 전쟁으로 이끌어 넣을 수는 없다.” 당시 영국 총리 네빌 체임벌린의 말이다.
이 뮌헨협정이 체결된 때가 1938년 9월30일이고 6개월 후 강대국 협상의 희생물이 된 체코슬로바키아는 세계지도에서 사라지고 만다. 이후 뮌헨협정은 실패한 유화정책(appeasement)의 대명사가 되면서 ‘뮌헨의 배신’ ‘뮌헨의 비굴’로도 기록된다.
그 뮌헨협정이 요즘 미국에서 새삼 거론되고 있다. 전 해군 장관이자 버지니아
주 연방 상원의원인 제임스 웹이 남중국해 사태와 관련해 ‘미국은 뮌헨의 순간을 맞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질타성의 질문을 던지고 나서면서다.
남중국해는 중국 남부에서 베트남, 필리핀,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등으로 둘러싸인 125만 평방킬로미터에 이르는 해역이다. 이 해역의 80% 이상을 중국은 핵심이해지역으로 선포했다.
이 해역을 침범할 경우 무력으로 응징하겠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중국은 무력행사를 해왔다. 베트남 석유탐사선의 케이블을 절단하고 유엔탐사선을 내쫓는 등. 중국의 횡포에 작은 나라들이 떨고 있다. 그러면서 미국을 바라보고 있다.
그 미국의 대응이 그런데 미온적이다. 그 정황을 빗대 웹은 미국 판 ‘뮌헨의 배신’ 가능성을 지적하고 나선 것이다. 상당히 선동적으로도 들린다 말하자면 현 중국체제를 히틀러의 나치 독일에 비유한 셈이기 때문이다.
지적하고자 하는 핵심의 포인트는 그렇지만 다른 데 있다. 남중국해에서의 영유권분쟁이 무력충돌로 비화될 경우 미국은 미국인들이 잘 알지도 못하는 동남아시아의 먼 나라를 지키기 위해 개입할 것인가 하는 것이 그 첫 번째 질문이다.
또 다른 중요 포인트는 남중국해를 둘러싼 이해다툼에서 가령 동남아 국가들이 미국의 중재로 많은 것을 양보했을 경우 현 중국체제는 그것으로 만족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남중국해뿐이 아니다. 중국은 동중국해에서는 일본과 센카쿠열도영유권을 둘러싸고 충돌했다. 이런 상황에서 남중국에서의 양보는 중국의 영토 확장의 야심만 부추길 수 있다는 지적이다.
뮌헨협정을 통해 체코슬로바키아를 양보했다. 나치 독일의 영토 욕심은 그러나 채워지지 않았다. 욕심은 오히려 더 커져 폴란드를 침공했고 결국 2차 대전을 불러왔다.
역사의 교훈이 반드시 들어맞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많은 중국 관측통들이 우려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 같은 정황이다. 지나친 유화정책은 오히려 화를 불러올 수도 있는 것이다.
미소를 짓고 있는 유연한 중국의 얼굴은 볼 수 없게 됐다. 항상 찡그리고 분노한 얼굴로 바뀐 것이다. 중국 사회 전체를 뒤덮고 있는 경직성에 많은 관측통들은 특히 우려의 시선을 보내면서 그 같은 진단을 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 공산당 집권세력의 주 우려사항은 크게 세 가지로 분류된다. 그 가장 중요한 첫 번째는 공산당의 영구집권이다. 둘째는 사회 안정, 셋째는 영토보전이다.
중국 공산당은 최근 들어 국내 안정에 노이로제에 가까운 불안감을 보이고 있다. 20년간의 경제개혁과 개방정책 결과 중국 사회가 큰 변모를 겪으면서 잠재적 정치세력의 심각한 도전에 직면해 있기 때문이다.
경찰병력만으로는 체제유지에 한계를 느낀다. 기댈 곳은 결국 군이다. 2012년 권력교체기를 맞아 군 의존도는 더 높아만 가고 있다. 그 결과 거세지기만 하는 것은 군부의 입김이다.
“글로벌리스트로 분류되는 소프트파워 지향 세력은 2008년 이후 종적을 감추었다. 들려오는 것은 군소장파 중심의 강경파 목소리뿐이다.” 중국문제 전문가 데이빗 샴부어의 말이다. 그런 중국에 대한 유화정책은 역효과만 가져올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 적지 않은 관측통들이 보이고 있는 우려다.
‘미국은 뮌헨의 순간을 맞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 질문이 어쩐지 먼 나라 동남아시아 국가들을 향한 질문만으로 들리지 않는다. 중국이 한국에도 영유권도발을 해와 하는 말이다.
제주 마라도 남쪽 이어도 인근에서 인양작업을 벌이던 한국 선박에 대해 중국이 ‘영해를 침범했다“며 작업 중단을 요구한 것이다. 더구나 한국의 해양과학기지가 건설된 이어도에 관공선(官公船)까지 보내면서.
그리고 중국주도로 열릴 6자회담을 둘러싸고 한국과 미국은 어딘가 엇박자를 놓고 있는 듯해서다.
옥 세 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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