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정희 논설위원
노벨 평화상 시상’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나라’ 등 좋은 소식으로 어쩌다 한번 거론되던 노르웨이가 지난 한주 전 세계 뉴스의 초점이 되었다. 삶의 질로 보나 자연경관으로 보나 ‘지상 낙원’이라고 세계가 부러워하는 노르웨이에서 지난 22일 끔찍한 참극이 벌어졌다.
자신이 세상(유럽)을 구원할 십자군쯤으로 망상에 사로잡힌 한 청년이 냉정하고도 잔혹하게 총기를 난사해 77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일주일이 지난 29일 노르웨이는 깊고 깊은 슬픔에 빠졌다. 희생자들의 장례식이 시작되었다. 너무 큰 충격으로 감각이 마비돼 그저 지독한 악몽 같았던 딸의, 아들의 혹은 친구들의 죽음이 현실로 의식에 뿌리 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찾아드는 의문은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이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어떻게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들을 무참하게 죽일 수 있을까?” “사람을 죽이고도 어떻게 저렇게 태연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은 근년 너무 자주 제기되고 있다.
9.11 참사 등 전문적 테러집단의 테러를 제외하고도 당장 떠오르는 사건들이 줄을 잇는다. 지난 1월 애리조나 투산에서 총기를 난사한 제러드 러프너 사건, 2007년 버지니아 텍 캠퍼스를 살육의 장으로 삼은 조승희 사건, 그리고 1995년 오클라호마시티 연방정부 청사를 폭파해 168명을 희생시킨 티모시 맥베이 사건 등이 대표적이다. 범인들은 하나 같이 세상에 대한 증오와 적개심에 눈이 멀어 자신이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다며 살육을 벌였다.
이번 테러 용의자 안데르스 베링 브레이빅은 존 스튜어트 밀의 말까지 인용해 자신을 정당화했다. “신념을 가진 한 사람은 이익만 쫓는 10만 명의 힘에 버금간다”는 말이다. 그에게 있어서 ‘신념’은 이슬람 증오.
테러에 앞서 올린 온라인 매니페스토에서 그는 이슬람 침략으로부터 유럽을 구원하는 전사를 자처한다. 무슬림이 유럽을 점령해 이슬람 제국을 건설하려 한다는 극우 기독교 근본주의 · 백인우월주의자들의 음모론에 세뇌된 결과이다. 그래서 무슬림 이민을 받아들이고 이슬람 문화를 포용하는 노르웨이 집권 노동당을 ‘응징’한 것이 이번 테러였다.
“왜 이런 일이…”의 답으로 유럽의 극우세력에 눈길이 쏠리는 것은 자연스럽다. 십자군, 나치 등 종교적 인종적으로 배타적인 전통이 없지 않은 것이 유럽이다. 시대가 바뀌어도 여전히 이런 배타적 유산을 이어 받는 조직들이 실제로 활동 중이다. 아랍권 이민 증가와 함께 극우조직의 활동이 강해진 현실이 분명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하지만 이슬람이 싫다고, 무슬림 이민에 반대한다고, 정부 정책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 누구나 총을 들고 나가 사람을 죽이지는 않는다. 정신의 병이 너무 깊어서 영혼이 지옥같이 캄캄한 존재들만이 할 수 있는 악의 전형이다.
지난달 뉴질랜드의 해변에 아기 황제펭귄이 나타나 화제가 되었다. 황제펭귄의 서식지는 원래 남극인데, 아기 펭귄이 어쩌다 길을 잃고는 장장 3400km를 헤엄쳐 전혀 다른 세상에 다다랐다. 사람들은 뜻밖의 방문객이 신기해서 해변으로 몰려들었지만 펭귄에게는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었다.
“남극의 펭귄은 눈을 먹어 수분을 보충하는 데 아기 펭귄은 해변의 젖은 모래를 눈으로 착각해 먹고 있다”고 한 펭귄 전문가는 우려를 표했다. 잠깐 방향을 잘못 잡은 것이 결과적으로 자신도 모르는 엉뚱한 곳에 펭귄이 홀로 서있게 된 것이었다.
브레이빅, 러프너, 조승희, 맥베이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유년기에 행복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부모의 이혼으로 인한 엄마/아버지에 대한 상실감과 버려진 느낌, 일에 매여 얼굴 보기 힘든 이민1세 부모, 혹은 학대하는 부모 등으로, 자라면서 상처가 많았다.
이런 외적 상황에 성격적 결함 등 내적 요인이 합쳐지면 종종 외톨이나 반사회적 인물이 되고, 감당할 수 없는 좌절감이 엉뚱한 대상에 대한 적개심으로 발전되곤 한다.
외로운 아이는 부모가 방치하는 사이에 혹은 미처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 잠깐 방향을 잘못 잡아 곁길로 들어서고, 사춘기를 거쳐 몇 년 세월이 흐르는 사이 부모도 상상할 수 없는, 스스로도 이해하기 어려운 엉뚱한 존재가 되어 버릴 수가 있다. 길 잃은 ‘펭귄’이 되는 것이다.
모든 사건의 핵심은 결국 ‘사람’이다. 정신적으로 망가진 한 사람이 초래할 수 있는 불행이 너무도 심대하다. 스트레스 많고 이혼이 흔한 현대는 아이들이 자라기에 좋은 환경이 아니다. 그만큼 부모의 역할이 중요하다. 모든 부모가 행복한 자녀를 길러낸다면 세상의 많은 문제가 예방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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