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모처럼 웃었다. 여자 월드컵 결승에서 세계 최강 미국을 누르고 우승 트로피를 쥔 것이다. 절대 열세였다. 그렇지만 일본팀은 끈질기게 따라붙었다. 그리고 대역전극을 연출했다.
그 감동의 드라마 앞에는 승자도, 패자도 없었다. 박수가 끝없이 쏟아져 나왔다. 미국의 반응도 우호적이었다. 일본팀을 오히려 ‘대지진 속에서 희망의 불씨를 살려낸 영웅들’이라고 추켜세웠다. 어려움 가운데에서도 불굴의 투지를 보여준 일본을 향한 격려이자 찬사였다.
축구는 축구일 뿐이다. 국가대표팀이 국제대회에서 승리를 거두었다고 정치, 경제적 현실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일본 여자팀의 월드컵 우승은 무엇인가의 전조같이 보인다. ‘다시 일어서는 일본’- 그 전조라고 할까.
‘선한 뉴스가 일본에서 들려올 수 있을까’-. 심한 표현인가. 하여튼 지난 20년 동안 밖에서 바라본 일본의 모습은 이렇게 비쳤다. 불어만 나는 국가부채. 실종된 정치 리더십. 고령화로 탄력을 잃어가고 있는 사회. 20년간 지속된 경제침체 등등.
그 와중에 덮친 게 대지진에, 쓰나미 참사다. 중국이 일본을 추월해 G2가 됐다는 뉴스가 나온지 얼마 안 된다. 그 상황에 초대형 참사가 덮친 것이다. 그 일본을 바라보는 시각은 비관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던져진 질문은 ‘일본은 저대로 가라앉고 마는가’하는 것이었다.
“잃어버린 20년의 세월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줄곧 세계 제2위의 경제대국 위치를 고수해 온 사실을 사람들은 망각하고 있다. 대지진과 쓰나미 참사 때도 그렇다. 일본의 수출 머신은 불과 수 시간 정도의 차질만 빚었을 뿐이다.”프랑스의 석학 기 소르망의 말이다.
일본 쇠망론은 일본의 저력을 몰라 하는 이야기라는 거다. 고부가가치에, 고도기술 위주의 일본의 산업과 낮은 기술단계의 중국을 비교하는 것조차가 무리라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그러면서 그는 오히려 일본은 또 한 차례 도약할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두 차례의 대각성 시기를 계기로 일본은 비약적인 발전을 했다. 그 첫 번째는 페리제독의 입항이다. 두 번째는 2차 대전 패전이다.” 일본의 역사가 이노세 나오키의 지적이다.
그 첫 번째 도전을 통해 일본은 이른바 명치유신을 이룩했다. 두 번째 도전을 맞아 이룩한 것은 전후 일본경제의 눈부신 발전이다. 끝없는 기술 혁신을 통해 ‘메이드 인 저팬’의 신화가 탄생했다. 그리고 80년대 한 때 ‘일본의 세계제패론’은 시대의 담론으로까지 굳어졌었던 것. 1989년 이후 상황은 일변한다. 일본 경제가 제자리에 멈춰 선 것이다. ‘잃어버린 20년’의 그 정황에서 그러나 한 가지 불가사의한 현상이 발견된다. 일본의 실업률은 완전 고용에 가까운 5%대를 유지해 온 것이다. 이를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일본경제가 20년 동안 정체됐다는 지적은 일본의 목표에 대한 오해다. 일본은 기업의 이윤을 희생하면서 사회의 핵심가치인 고용을 유지했다. 20년을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일본적 가치를 보전한 것이다.” 조지 프리드먼의 지적이다.
이 ‘잃어버린 20년’을 기 소르망은 일종의 ‘내부지향의 세월’로 파악한다. 엄청난 부가 쌓였다. 때문에 경제침체에도 불구하고 일본사회는 별 동요를 보이지 않았다. 일본의 젊은이들은 그 가운데 현실에 안주해 온 것이다.
내부지향의 안일한 분위기에 찬 물을 끼얹은 사건이 센카쿠열도 영유권을 둘러싼 중국과의 충돌이다. 그게 2009년 10월이다. 이후 중국은 군사, 외교적 도발을 거듭해왔다. 그리고 뒤이어 발생한 게 천안함 사태에, 연평도 포격사건이다.
이 한반도에서의 잇단 군사도발을 일본은 중국과 북한의 공모라는 시각으로 바라보면서 날로 불확실해져가는 안보환경에 불안해한다. 그 상황에서 덮친 게 대지진과 쓰나미 참사다.
위기의식이 만연돼 있다. 그 가운데 위기를 기회로 바꿔야 한다는 도전의식이 새삼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페리제독 입항, 2차 대전 패전 시와 같은 세 번째 중차대한 전환기를 맞았다는 것이 일본에서 들려오는 소리다. 관련해 주목을 끄는 게 범태평양협력체(TPP)구상안이다.
일본은 적극적으로 외부로 눈을 돌려야 한다. 이를 위해 해외유학에서 문화수출, 그리고 이민정책에 이르기까지 ‘활짝 열린 일본’을 지향한다. 그리고 중국의 위협으로부터 아시아와 자유세계를 지키기 위해 태평양지역의 민주주의체제끼리 자유무역지역을 결성하는 것이다.
이 협력체에서 중국은 제외된다. 민주화가 되기까지는. 미국은 당연히 주 파트너로 참여한다. 그리고 중국의 위협에 대비해 미국은 물론 한국과의 군사협력도 강화한다. TPP구상의 기본 아이디어다. 이 TPP구상안에 대한 공감대가 일본에서 날로 넓어져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일본은 중국을 제치고 또 다시 아시아의 진정한 파워로 부상할 것인가. 답은 아무래도 ‘예스’ 쪽으로 기우는 것 같다. 일본의 저력도 저력이지만 미국도 중국 견제에 나섰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쭐거리는 중국의 대항마로 반드시 필요한 것이 강한 일본이기에.
그렇다고 문제가 없다는 건 아니다. 일본이 적극적으로 외부로 눈을 돌렸을 때 아시아의 주변 국가들에게 복(福)보다는 화(禍)가 많았던 게 역사의 가르침이어서다. 어쨌거나 중국과 일본의 경쟁은 이제부터 다시 본격화 될 전망이다.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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