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월로 접어든지 몇 날이 지났는데도 아침저녁으로는 차가운 바람을 느낀다. 봄맞이 겸 몇몇 부부들이 산행을 해보자는 제의에 따라 가기로 하고 이것저것 필요한 것들을 준비하여 네 쌍의 친구 부부들이 쉐난도아 등산을 가기로 했다. 솔직히 말해서 등산이란 것은 내 생애에 두 번째의 일이다. 친구들의 등산 예찬론에 귀가 솔깃하기도 하고 권하는 말을 끝까지 거절만은 할 수가 없어 따라나섰다.
등산로 입구에는 개나리가 노랗게 피어 있어 우리를 반겨주는 것 같았고 지금 막 터질 듯한 나뭇잎들이 조금은 푸른빛을 자랑하는 듯 보였다. 이윽고 등산이 시작되어 이곳을 자주 찾는 친구의 뒤를 따르기고 하고 열을 지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조금을 걷다보니 힘이 들고 길고도 험해지기 시작한다. 숨도 차기 시작한다. 한발 잘못 디디면 가시 덩굴 속으로 구를 것 같기도 하고 조금만 미끄러지면 바위 밑으로 수없이 굴러 떨어질 것 같기도 한, 힘이 들고 조심스러운 산길이었다.
하룻길을 걷다 보면 소도 보고 말도 본다고 했던가? 바위길, 모랫길, 진흙길, 자갈길, 여러 길을 지나노라니 발을 떼어 놓을수록 힘이 더 들어 가기 시작한다. 등산이란 정상에 올라가 아래를 내려다보는 기분으로 한다는데 이렇게 힘이 들어서야 정상까지 올라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내라는 가파른 고갯길을 넘으면 반드시 행복의 푸른 평원이 전개될 텐데, 인생에 계속된 오름길만은 없을 텐데, 오로지 옆길을 잘 살피며 헛발을 디디지만 않는다면 내가 바라는 넓은 행복의 초장을 내려다 볼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두 발에 힘을 더해주는 것 같았다. 올라갈수록 길은 점점 험해지기 시작한다. 작은 나뭇가지들이 얼굴을 치고 지나가기도 하고, 걷는다는 발은 나도 모르게 돌을 힘껏 차 보기도 한다. 인내심이 절대로 요구되는 시간들이었다.
나는 한 발짝 한 발짝 떼면서 인내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인내를 하려면 끈기와 강한 의지력이 필요하지 않은가? 그래서 인내는 덕이라고 말하지 않는가. ‘덕을 쌓으라’라고 말을 많이 한다. 이 말은 모든 일에 인내를 하라는 말이 아니던가? 오른 뺨을 맞으면 왼 뺨을 내 밀어라!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들, 이것들이 다 인내하라, 그리하면 덕이 된다는 말이 아닌가.
바울 사도는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독일의 철인 쉴러는 위대한 정신은 조용히 인내한다고 말해 인내의 위대한 내면을 강조한 바 있다.
우리 인간들이 어떤 인내, 즉 어느 만큼의 덕을 쌓아가며 사느냐에 따라 세상은 달라지는 것 같다. 내 생각대로 되는 일, 되지 않는 일, 남에게 이길 때, 질 때, 성공을 할 때, 실패를 할 때, 즐거움을 맛볼 때, 시련을 당할 때, 이런 것들이 우리네 인생을 살아가는데 한 리듬이 아니던가?
그래서 인간들에게는 각자가 지고가야 할 자기 십자가가 따로 있다. 버리고 갈 수 없는, 꼭 지고 가야만 하는 이 세상의 나그네이기에 행복한 날들보다는 괴로워야할 날들이 더 많다고 한다. 그래서 불가에서는 이 세상을 ‘고해’라고 하지만 현실은 천국도 지옥도 아닌 것 같다. 그저 누가 무엇을 어떻게 생각하고 인내 하느냐에 따라 천국이냐 지옥이냐, 또는 행복이냐 불행이냐를 선택하는 차원의 세상에 살고 있는 것 같다. 내가 오늘 걷는 이 험한 산길도 정상 위에서 내려다 볼 행복의 푸른 초원을 생각하면 즐겁고 행복한 길이겠지만 정상이 보이지 않고 오직 오르막길뿐이요, 가시 넝쿨 사이로만 생각한다면 그 십자가는 얼마나 무겁고 비정할까?
세 시간여의 장고 끝에 목적지에 도착하여 한숨을 돌리며 산 밑을 내려다보니 높고 낮은 수없이 많은 능선들만이 눈에 들어온다. 넓고 아름다운 행복의 초원이 끝없이 펼쳐 보일 줄 알았던 나로서는 실망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자세히 바라보고 있노라니 맑고 푸른 초원 위에 날개달린 백마들이 평화로이 풀을 뜯는 듯한 느낌이 들지 않는가. 무슨 생각을 하든 어떤 사상을 갖든 인내로 정상에 오르면 행복의 푸른 초원이 있음을 상상하며 덕을 쌓는 하루가 되어보자고 다짐하며 하루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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